창세기6장 성경주석
<창세기 6장>
생육하고 번성하영 땅에 충만하라(1:28)는 하나님의 축복의 결과이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범죄 이후 모두가 죽을 운명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정 기간 동안 인간에게 장수를 허용하사 많은 자녀를 갖게 하셨다(5:6-27). 하지만 인간의 악함은 홍수 심판을 피하지 못했고, 그 가운데에서도 하나님 당신께서 스스로 하신 약속을 어떻게 이어가시는지 우리는 노아를 통해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창세기 6장 줄거리>
1.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
5. 죄악 세상과 하나님의 탄식
8. 당세의 의인 노아
13. 노아 방주 준비
<창세기 6장 개역개정>
1.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4.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
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9.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10.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11.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12.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13.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14.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15. 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16.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17.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
18.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19.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되
20. 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
21. 너는 먹을 모든 양식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먹을 것이 되리라
22.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창세기 6장 성경주석>
6:1 딸들.
딸들(*바트) - '벤'(*아들)의 여성형으로 문자 그대로 '딸'을 의미한다. 그런데 '사람들에게서 딸들이 나다'라는 말은 남자에 비해 여자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였다는 뜻이 아니라 그녀들로 인해 인류에 어떤 위기가 도래케 되었다는 사실을 함축하고 있다.
6:2 하나님의 아들들.
여기에 대해서는 세 가지 견해가 있다. (1)지체 높은 집안의 아들들이라는 유대 랍비들. 그러나 지체 높은 집안의 아들들이라고 했을 때 높고 낮음의 기준이 사람에 의한 것이지 하나님의 기준과는 다르기때문에 비성경적이므로 이 견해는 틀리다고 본다. (2)성경의 일반적 용례인 '천사'라는 견해. 이 견해는 구속사적으로 봤을 때 인간의 타락사가 아니라 천사의 타락사가 되기 때문에 합당치 못하다. (3)셋 계통의 경건한 자녀들. 이 중에서 세번 째 견해가 가장 유력시 되는데 이는 신학적 의미와도 부합되며 또한 신앙인들을 지칭하는데 사용된 성경 관례에 의해서도 지지를 받는다.
6:2 사람의 딸들.
앞의 견해와 마찬가지로 이에 대해서도 세 가지 견해가 있다. (1)지체 낮은 천민 계층의 딸들, (2)인간의 딸들, (3)가인 계통의 불경건한 자녀들. 이 중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말과 자연스레 대응을 이루는 견해는 역시 세 번째 것이다.
6:2 아름다움
여기에서는 외견상의 '미모'를 의미한다(24:16; 단1:15)
6:2 보고
보고(*라아) - 단순히 보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자세히 주목하거나 인지하는 것을 의미한다(왕상20:7;시31:7).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들'이 신앙과 선한 행실, 아름다운 마음씨 등과 같은 응당 주의를 기울여야 할 내면적인 아름다움은 외면한 채, 인간의 외모에만 관ㅅ미을 집중하였다는 것은 잘못이 아닐 수 없다. 이는 곧 하나님을 아는 자든 모르는 자든 간에 당신의 모든 사람이 전도된 가치관을 갖고 있었음을 증거해 주는데 이처럼 온 사회가 타락 일변도로 흘러갈 때 그 결국은 필연적으로 패망일수 밖에 없다.
6:2 좋아하는
'선택하다','지정하다'는 뜻으로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신들의 안목의 정욕을 좇아 고르는 것을 의미한다(고후10:7),
6:2 아내
아내(*나쉼) - '이솨'(2:24;3:20;4:17)와 교체하여 쓸 수 있는 단어로 '아내''부인'(4:19;삿8:30)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여인'(신20:14;느8:3)을 뜻하기도 한다.
6:2 삼는지라
삼는지라(*라카흐) - 4:19에서는 '취하였으니'로 번역되었다. 일반적으로 결혼하는 것을 뜻하는 관용적 표현이다(출6:25;민12:1)
6:3 나의 영이...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여기에서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생명'을 뜻하는 바 본적은 인간 타락이 절정에 달했기때문에 하나님이 홍수 심판으로 그 인간들의 생명을 거두어 가시겠다는 의미이다(17절)
6:3 이는 그들의 육신이 됨이라.
그 시대의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멸망당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보여주고 있는 구절이다. 왜냐하면 여기서의 육체는 헬라어 '사륵스'와 같은 의미로 단순한 '몸(15:4;고전6:15)이 아니라 죄의 영향으로 사악하게 된 '타락한 육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롬8:6).
6:3 그들의 날은 백이십년이 되리라.
당시 모든 사람들의 수명이 백 이십년으로 한정된다는 뜻이 아니라, 그 기간이 지난 후 대홍수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예언적 경고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기한은 당시 타락한 인간들에게 주어진 심판의 유보 기간이자 동시에 그들이 회개할 수 있는 마지막 은혜의 기간이었던 것이다(벧후3:9)
6:4 네피림
'떨어지다'(fall)라는 뜻을 지닌 기본 동사 '나팔'에서 파생된 말이다. 따라서 어떤 학자들은 이러한 원어의 뜻에서 유추 해석하여 '네피림'을 하늘로부터 떨어진 타락한 천사들의 후손을가리킨다고 주장ㅎ나다. 심지어 튜크나 크노벧 같은 학자들은 이를 '괴물' 또는 '신동'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70인역은 네피림을 '장부'란 뜻의 '기간테스'로 번역했고, 벌겟역(Vulgate)과 KJV도 70인역을 따라 '용사', '거인'이란 뜻의 'giant'로 번역하여 네피림을 타락한 천사나 혹은 천사와 인간 사이의 혼혁족으로 보기보다 단순히 그 신체적 특성상 장부가 거인으로 불릴 수 있는 일단의 사람 혹은 족속을 가리키는 말로 보았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신체적 특징은 아울러 도덕적 특성까지 암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는데 대체로 훼방꾼, 무법자, 난폭꾼, 가해자 등의 속성을 가진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따라서 종합하면 노아 당시 '네피림'이란 거대한 신체를 지닌 '폭꾼들' 내지는 '침략자들' 정도의 뜻으로 이해함이 좋을 듯하다(Luther, Calvin, Keil, Murphy). 한편 이 용어는 출애굽이후 광야 여행 시대인 민13:33에서 다시 나타나는데, 이 때 이 용어가 사용된 것은 가나안 땅을 탐지하고 돌아온 정탐꾼들이 그 땅 족속들의 모습이 마치 홍수 전 노아 시대의 네피림같이 장대하고 난폭하다는 사실을 비유적으로 말하기 위한 것이다.
6:4 그 후에도
하나님꼐서 홍수 심판을 예고하신 이후에도 여전히 사람들이 이전의 타락한 행실을 담습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말이다.
6:4 용사
문자적 뜻은 '강한 자', '힘센 자', '우두머리' 당시 이들은 세상을 지배하고 힘세고 강한 영웅이었거나 아니면 많은 하수인을 거느렸던 압제자였음을 뜻한다. 즉 이들은 전쟁과 약탈, 방종과 사치 등이 난무하던 홍수 이전 시대 그 타락의 주역들이었던 것이다.
6:4 고대에
헬라어 '아이온'과 같이 '오래전', '영원'(눅1:70;고전2:7)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단어이다(3절;17:7;왕하5:27). 이는 저자(모세)의 입장에서 볼 때 본절에 기술된 의미를 얻는다.
6:5 죄악
죄악(*라) - '라아'(깨뜨리다, 상하게하다, 쓸모없게 하다)에서 파생된 말인 히브리어 '*라'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창조 질서를 어기거나 그분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인간의 모든 악한 행위를 의미한다(39:9; 사47:10)
6:5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타락한 이후 인류가 지니게 된 보편적 죄성을 증거하고 있는 구절이다. 그러므로 칼빈(J.Calvin)은 이에 근거하여 '차락한 인간은 근본적으로 그 본성이 부패하고 죄에 오염되었으므로 스스로는 아무런 영적 선도 행할 수 없다'는 '인간의 전적 타락설'(Total Depravity)을 주장하였다(롬3:9-18). 한편 여기서 마음(레브)은 갖가지 감정이 자리잡고 있는 좌소를 의미한다(17:17). 그리고 생각(마하솨바)은 어떠한 문제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고 골똘히 연구하는 것을 의미한다(삼하14:14;잠16:3;렘18:12). 또한 계획(에체르)은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의도적으로 기획하는 것을 뜻하며(8:21;신31:21) 악하다는 것은 앞에 나온 죄악과 같은 의미를 지닌 동일 단어이다.
6:5 보시고
보시고(*야르) - '라아.'(바라보다,주목하다,발견하다/6:2)의 미완료형으로 하나님꼐서 인간들의 소위와 그 생각하는 바가 어떠한 것인지를 오랜 기간에 걸쳐 계속적으로 그리고 자세히 살펴보셨음을 의미한다.
6:6 지으셨음을
여기에 '창조하다(*바라/7절)'대신 '지으시다(*아사)'가 쓰인 것은 자신이 최고의 애정을 기울여 만든 인간을 전멸시켜야 하는데 대한 하나님의 극한 아픔을 강조하기 위함이다(5:1).
6:6 한탄하사
한탄하사(*나함)은 '후회하다'는 뜻과 함께 '위로하다'는 뜻도 지니고 있는 단어이다(5:29), 그런데 이는 문자 그대로 하나님께서도 당신이 하신 일에 대해 수회하실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인간이 아닌 전지 전능한 지존자로서 결코 변개치 않으시기 때문이다.(삼상15:29). 다만 이는 인간의 비극적 타락에 대해 갖으시는 하나님의 안타까운 심정을 인간의 측변에서 묘사한 말일 뿐이다(1-7절 강해).
6:6 마음에 근심하시고
직역하면 '그의 마음에 새기셨다'. 즉 인간의 비극적인 타락 상황을 보신 하나님께선 그것이 마음 깊숙이 새겨져 도저히 지울 수 없는 극심한 아픔으로 느끼셨다는 뜻이다(시78:40). 이상에서 우리는 범죄한 인간에 대해서조차 사랑을 쉽게 단념치 않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본심임을 알 수 있는데(눅 15:11-24), 이에 대해 우리가 취해야 할 마땅한 태도는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그것을 준행함으로 더 이상 그분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지 않는 것이다(롬12:2)
6:7 내가 창조한 사람
2절에 나오는 '하난미의 아들들'이 천사가 아니었음을 반증해 주는 구절이다. 만일 그들이 '사람의 딸들'과 함께 방종을 일삼는 타락한 천사였다면 하나님께서는 본절에서 '내가 창조한 사람과 천사를 멸절시키리라'는 심판을 선고하셨을 것이다(3:14)
6:7 쓸어버리되
문자적 뜻은 '씻다'(왕하 21:31). '지워버리다'(출32:32). '닦아내다', 하나님께서 물로서 깨끗이 쓸어 세상을 심판하실 것임을 시사해 주며 또한 그 심판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완전한 파멸이 될 것임을 의미한다(출17:14)
6:7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3:17에 이어 다시 한 번 인간의 죄책과 그 영향이 자연계에까지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인간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자연계에까지 확산된 점은 (1)자연계에 대한 인간의 주권성과 (2)인간에 대한 자연계의 예속성을 보여준다(3:14-21) 한편 여기서 가축은 본래 소나 말처럼 몸집이 큰 네 발 짐승을 가리키나, 본절에서 모든 가축을 뜻하는 집합적 의미로 쓰였다(1:24;7:14). 그리고 기는것은 '라마스'에서 파생된 말로 곧 파충류(1:24;왕상4:33)와 곤충(합1:14)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새는 날개가 있어 날아다닐 수 있는 모든 생물을 의미하나 (레11:21)성경에선 대개 '새'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다.(1:20; 호 4:3).
6:8 여호와께
직역하면 '여호와의 눈에', 이는 노아가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입게 된 까닭이 그분 보시기에 기뻐하실 만한 점이 있었기 때문임을 시사해 준다(9절).
6:8 은혜
'하난'(불쌍히 여기다, 아랫사람에게 호의를 베풀다)에서 파생된 말로 하나님께서 경건한 자(시4:3)와 고생하는 자(시6:2)를 지켜 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사랑,은총,자비 등을 의미한다(30:27,출33:12). 그렇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본성이 곧 사랑과 긍휼, 공의임을 뜻하는 '헤세드'(렘9:24)와는 달리 먼저 은혜를 받는 자가 경건하며 의로운 자여야 한다는 조건을 필요로 하는 단어이다(9절). 여기서 우리는, 비록 하나님의 강권적인 사랑이 없다면 구원 얻을 자가 아무도 없다는 것은 기정 사실이나(롬3:10-12) 그 같은 사랑에 대한 인간측의 적극적인 반응과 노력도 결코 간과되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분명 확인할 수 있다(계3:20).
6:9 노아의 족보니라
이 말은 이 후 전개될 이야기는 인류 전체의 역사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노아를 중심하여 이루어질 '하나님의 구속사'에 초점을 맞춘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6:9 의인
여기서 '차디크'(의로운, 공정한)는 '차닥'(곧다, 올바르게 행하다)에서 온 말로 전혀 무죄하거나 흠 없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 시대적 상황에서 그래도 경건하고 정직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전7:20). 그러므로 하나님께선 노아의 이 같은 노력을 높이 평가하사 '의'로 인정해 주신 것이다.
6:9 당대에
'그의 동시대 사람들 가운데'라는 뜻, 이는 노아가 의롭고 완전한 자라는 것이 절대적인 개념에서가 아니라 상대적 개념에서 그렇다는 뜻임을 드러내 준다. 이처럼 성도도 본시 불신자와 다름없는 죄된 성품을 지닌 자요 육적 죽음이 예정된 자이긴 하나 그래도 세상과는 구별된 존재로 경건한 삶을 살아 그리스도인의 향기를 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고후2:15).
6:9 완전한 자
완전한 자(*이쉬 타밈) - '타밈'(온전한, 성실한)은 '타맘'(완성하다, 완수하다)에서 파생된 단어로 이 역시 '차디크'와 마찬가지로 모든 행위가 한 절 티도 없이 완전하다거나 전혀 죄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과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럽지 않은 자가 되기 위해 성실히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잠28:18).
6:9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노아가 '의인','완전한 자'로 불림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이다. 그는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한 가운데서도(11절) 그 분을 경외하며 그의 뜻을 따라 그의 말씀과 더불어 동행하는 곧고 바른 삶을 살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그토록 분에 넘치는 호칭을 얻을 수 있었다.(5:22)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오늘ㄴ라 우리에게도 '내가 온전한 것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5:48)고 명하신다. 따라서 우리는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딤전4:12) 등.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우리의 삶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드러내야 할 것이다(딤전4:15).
6:11 때에
원문에는 없는 말이다. 노아 당대를 가리키는 말로 당시 노아와 같은 이가 있었긴 하나 전체 시대 풍조는 부패하기 짝이 없었음을 강조하기 위해 개역 성경 편찬자가 부기한 듯 하다.
6:11 온 땅
온 땅(*하아레츠) 직역하면 '그 땅', 당시 지상에 거주하고 있는 모든 사람을 뜻하는 은유적 표현(2:1)
6:11 포악함
하나님게서 세우신 자연 질서를 파괴하는 것을 뜻하는데 곧 그러한 온갖 무법 현상이 노아 시대에 횡행하고 있었음을 증거해 준다.
6:11 충만한지라
충만한지라(*티말레)-'말레'(가득하다,채우다)의 완료형으로 더 이상 채웅ㄹ 자리가 없어 밖으로 흘러 넘칠 정도로 꽉 찬 것을 의미한다(수3:15). 이는 공의의 하나님께서 한 시도 심판을 지체할 수 없을 만큼 시대의 타락상이 무르익었음을 보여준다.
6:12 하나님이 보신 즉
하나님은 인간과 같은 육체를 지니지 않은 영이시다(요4:24). 그러나 성경은 우주와 인간을 섭리하여, 조금도 쉬지 않고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요5:17)을 생생하게 묘사하기 위해 이처럼 의인적 표현을 많이 쓴다(출15:17;신11:12;왕상8:42;시8:6). 그 가운데 본절과 같은 표현은 (1)하나님이 인간의 외면과 더불어 그 중심을 꿰뚫어 보시므로 인간은 그 앞에서 결코 변명하거나 거역할 수 없다는 점과 (2)그분의 판단은 정확하며 한 치의 오류가 없다는 점을 강조해준다.
6:12 행위
행위(*데레크)-'다라크'(걷다,밟다)에서 파생된 말로 습관적으로 굳어진 '행동 양식'을 의미한다(겔20:30). 이는 당시 사람들의 생활 습속이 타락 일변도로 고정되어 있어 갱생시키기 매우 힘든 상태였음을 나타내 준다.
6:13 노아에게 이르시되
후일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을 알려 주시는 것처럼(18:17) 하나님이 노아에게 장차 있을 대홍수 심판을 미리 일러 주시는 부분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경외하느 자들에게 자신의 계획과 비밀을 계시하여 주시는데(시25:14) 이는 (1)환란 가운데서 그를 구원하시기 위함일 뿐 아니라 (요17:12)(2)그로 하여금 세상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게 하여 악인이라도 그 경고를 듣고서 돌이켜 회개하고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겔33:11). 오늘날 하나님의 계시는 성경에 기록된 것 이외에는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6:13 끝 날
원어 '케츠'는 원래 어떤 물건이나 장소의 '테두리','가장자리'를 의미하나 여기서는 시간에 있어서의 끝, 즉 '멸망의 때'를 가리킨다(욥6:11;단11:40).
6:13 내 앞에 이르렀으니
어떤 사건이나 때가 임박했음을 뜻하는 히브리인들의 관용적 표현(삼하22:6; 시18:5; 요7:6)
6:13 멸하리라
멸하리라(*솨핫) - 11,12절에서는 '패괴하다'로 번역된 단어. 이는 하나님 앞에서 타락하거나 부패한 자의 결국은 멸망일 수 밖에 없음을 교훈해 준다.
6:14 방주
홍수 심판 가운데에서도 노아와 그 가정을 구원하기 위해 예비된 방주는 그 기원과 기능에 있어 신약 시대 '교회'에 자주 비유된다. 즉, 둘 다 그 기원에 있어 '신적'이며, 그 기능에 있어 '구원'이기 때문이다.(11-22절 강해)
6:14 칸들을 막고
'여러 칸의 방들을 만들라'는 뜻. 둥우리 같은 작은 방들을 말하는데 이러한 방은 노아의 식구들을 위한 것일 뿐 아니라(18절) 각종 짐승들을 그 종류대로 구분, 유치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였을 것이다(19,20절).
6:17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
인간뿐 아니라 땅 위에 사는 모든 생물을 가리킨다. 여기서 물고기는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에서 제외된 것을 알 수 있는데 그 까닭은 분명치 않으나 죄로 오염된 땅(3:17)에 거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인 듯 하다.
6:18 언약
언약(*베리트) - '바라'(자르다,끊다,새기다)에서 파생된 말로 위반시에는 죽음 및 관계 구절이 뒤따르는 하나님과 인간간의 엄정한 약속, 계약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선 일찍 아담과도 이러한 언약을 맺으셨는데(2:16,17;3:15) 구체적으로 이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여기서부터이다. 이외에도 성경에는 아브라함(15:18;17:9-14;22:15), 이삭(26:24), 야곱(28:13,14)등과 맺은 언약이 나오는데 이것들은 모두 구속사에 있어서 최고의 정점인 예수 그리스도 및 그의 구속사역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6:22 다 준행하였더라
120년에 걸친 노아의 인내와 믿음과 소망이 응축되어 있는 구절이다. 전력을 기욱여 방주를 짓는 그 오랜 기간 동안 노아는 당대 사람들에게 갖은 조롱과 희롱을 당하고 또한 미치광이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노아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명하신 것을 다 준행하여(약2:17), 그 결과 자신과 가족, 짐승들을 구하였는데 이는 오늘날 각종 불법과 불경건이 난무하는 현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에게도 역시 절실하게 요구되는 자세이다(눅 21:19; 약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