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21장 성경주석
<창세기 21장 줄거리>
1. 이삭의 출생
8. 이삭과 이스마엘의 갈등
14. 쫓겨나는 하갈과 이스마엘
17. 하갈 모자를 보호하신 여호와
22. 브엘세바의 언약
<창세기 21장 개역개정>
1.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2.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3. 아브라함이 그에게 태어난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4. 그 아들 이삭이 난 지 팔 일 만에 그가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할례를 행하였더라
5.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이 그에게 태어날 때에 백 세라
6.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7. 또 이르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마는 아브라함의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
8. 아이가 자라매 젖을 떼고 이삭이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큰 잔치를 베풀었더라
9.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아들이 이삭을 놀리는지라
10.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므로
11.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그 일이 매우 근심이 되었더니
12.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
13.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14.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가져다가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고 그 아이를 데리고 가게 하니 하갈이 나가서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하더니
15. 가죽부대의 물이 떨어진지라 그 자식을 관목덤불 아래에 두고
16. 이르되 아이가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 하고 화살 한 바탕 거리 떨어져 마주 앉아 바라보며 소리 내어 우니
17. 하나님이 그 어린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으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이르시되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18.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가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니라
19.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셨으므로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게 하였더라
20. 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계시매 그가 장성하여 광야에서 거주하며 활 쏘는 자가 되었더니
21. 그가 바란 광야에 거주할 때에 그의 어머니가 그를 위하여 애굽 땅에서 아내를 얻어 주었더라
22. 그 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23. 그런즉 너는 나와 내 아들과 내 손자에게 거짓되이 행하지 아니하기를 이제 여기서 하나님을 가리켜 내게 맹세하라 내가 네게 후대한 대로 너도 나와 네가 머무는 이 땅에 행할 것이니라
24.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맹세하리라 하고
25.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빼앗은 일에 관하여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책망하매
26. 아비멜렉이 이르되 누가 그리하였는지 내가 알지 못하노라 너도 내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나도 듣지 못하였더니 오늘에야 들었노라
27. 아브라함이 양과 소를 가져다가 아비멜렉에게 주고 두 사람이 서로 언약을 세우니라
28. 아브라함이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으니
29.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음은 어찜이냐
30. 아브라함이 이르되 너는 내 손에서 이 암양 새끼 일곱을 받아 내가 이 우물 판 증거를 삼으라 하고
31. 두 사람이 거기서 서로 맹세하였으므로 그 곳을 브엘세바라 이름하였더라
32.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언약을 세우매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은 떠나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돌아갔고
33.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34. 그가 블레셋 사람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냈더라
<창세기 21장 성경주석>
21:1 여호와께서 그 말씀하신 대로.
여기서 '그 말씀'이란 일전에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주셨던 언약(17:19-22;18:9-15)을 가리킨다. 이제 예고하셨던 기간이 이르자(2절) 그 언약을 말씀대로 성취시키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신실성을 증거해 준다.
21:1 돌보셨고.
문자적인 뜻은 '방문하다'. 이 말은 종종 특별한 인물에 대해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 혹은 호의의 행동을 가리키기도 하고(50:24;롯1:6;삼상2:21), 반대로 심판의 행위(사24:21;렘9:25;호12:2)를 가리키기도 한다. 여기서는 전자의 의미로 사용되어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을 잊지 않고 사라를 돌보신 것을 뜻한다.
21:1 행하셨으므로.
사라가 잉태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특별히 배후에서 역사하신 것을 가리킨다. 이처럼 생명의 잉태와 죽음 등과 같은 인생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는데(사44:2) 특히 90세에 이르는 사라가 단산(斷産)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 같은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믿었기 때문이다(히11:11).
21:2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
이삭의 출생이 자신의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이루어지니라고 말씀하셨던 하나님과 아브라함 간의 언약 기간(17:21)을 가리킨다. 그런데 분명한 첫계시(15:4) 이후 13년이 지난 시점에 이르러서야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성취시키신 까닭은 (1)아브라함 나이 100세가 되어 그의 몸이 죽은 것 같은 때(롬4:19)를 기다림으로써 이삭 탄생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과 섭리에 의해 이루어진 것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며(히11:11,12) (2)언약의 일부분인 이스마엘(16:10-12;17:20)이 독립할 수 있는 나이가 되도록 기다리시기 위함이었다(13절,21절)
21:2 아들을 낳으니.
거듭된 약속과 오랫동안의 고대 끝에 마침내 '약속의 씨'가 태어난 순간이다. 이처럼 구약의 인물 중 그 누구보다도 이삭이 대망(待望)가운데 태어나게 된 까닭은 언약의 첫 열매인 그가 부활의 첫 열매인 그리스도(고전15:20,23)를 예표하기 때문인데 그러한 그의 예표적 생애는 모리아 산 사건(22:2)에서 결정적으로 드러났다.
21:3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이 이름은 그가 태어나기 전에 하나님께서 지어 주신 이름이다(17:19,21). 히브리인들의 이름은 그 사람의 성격이나 용모, 특징, 운명 등을 반영하고 있는데 '웃다'는 뜻의 이 이름은 역시 탄생 전 수태고지 시에 아브라함과 사라가 '웃었던' 사건에 기인한다. 동시에 이 이름은 이삭이 오랫동안 고대하던 아들로서 온 가족들의 기쁨 중 태어난 것을 보여준다. 그는 단순한 한 가정의 계승자일 뿐 아니라 먼 훗날 모든 민족에게까지 미칠 언약(12:2,3)의 상속자였으니 그의 탄생은 구속사적인 의미에서도 크게 웃을 큰 경사가 아닐 수 없다.
21:4 난 지 팔 일.
하나님의 원 창조기간인 7일(2:1-3)이 지난 재(再)창조의 첫날(막16:9)로서 거듭 태어난 새 생명의 새 출발을 의미하는 날이다.
21:4 할례를 행하였더라.
당시 할례는 비단 히브리인 뿐 아니라 애굽, 에디오피아 같은 고대 이방 민족들도 시행하던 의식이었다. 그러나 이방인들의 할례는 단지 어떤 고통과 질병 따위를 제거하려는 미신적인 성격을 가졌거나 혹은 출산 능력을 증가시키고자 하는 생식 수단으로서의 의미만을 지녔지만, 히브리인들의 할례는 언약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명령에 근거한 철저히 종교적이고도 영적인 의미를 지녔다는데 그 차이가 있다.
21:5 백 세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고향을 떠난 지 25년째 되던 해이다(12:4). 이처럼 하나님의 약속은 비록 더디 이루어지는 것 같아도 결국에는 다 이루어지고 만다. 따라서 성도는 그러한 기간 동안 인내할 수 있어야 하는데(롬4:18-22) 인내는 연다나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기 때문이다(롬5:4).
21:6 사라가 이르되.
언약의 아들 이삭의 탄생을 기뻐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어머니 사라의 찬송시이다. 이것은 후일 예수 탄생을 기뻐하는 마리아 송가(Magnificat)의 전조가 되었다(눅 1:46-55).
21:6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이전 수태고지 시에 웃었던 불신의 웃음(18:12)과는 달리 이삭의 탄생을 이웃과 함께 진정으로 기뻐하는 노모의 억제할 수 없는 환희와 신앙의 웃음이다.
21:7 누가...말하였으리요.
여기서 '누가'(*미)는 인간으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한 데 대한 놀라움과 경탄을 나타낸 단어이다. 즉 사라는 미리 계획하시고 예정하신 가운데 모든 사람이 다 비웃고 불신할 만한 일을 오직 하나님께서만이 오늘날 능히 이루신 데 대하여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21:8 젖을 떼는 날에.
당시 문화권에서는 아이들이 오늘날보다 나이가 더 들어서 젖을 떼었는데 대개 3살경이었다(삼상 1:22-24). 이 때 히브리인들은 종교 의식과 더불어 이웃과 함께 큰 잔치를 베푸는 것이 관례였다. 따라서 이 때 이삭의 나이는 17세 가량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16:16).
21:9 이삭을 놀리는지라.
'희롱하는지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메차헤크'는 '멸시하다', '비웃다'란 뜻 외에 '핍박하다'란 뜻도 내포되어 있다. 따라서 이는 장난기 섞인 단순한 희롱이 아니라 17세나 된 이스마엘이 적자(嫡子) 이삭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상속권을 상실한 자신의 존재 가치에 불만을 품고 고의적으로 동생을 멸시하고 핍박한 행위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처럼 애굽 여인의 소생인 이스마엘(16:1)이 약속의 자녀인 이삭을 핍박한 본 사건은 (1)역사적으로, 장차 애굽에서 애굽인들에게 이스라엘이 당할 400여년간의 핍박 생활(15:13)과 (2)영적으로 성령을 따라 난 신자들이 육체를 따라
21:10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사라가 하갈을 가리켜 '여종'이라고 칭한 것은 종에게서 난 자식이 주인의 아들과 함께 상속자가 될 수 없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여기서 '내어 쫓으라'(*가라쉬)는 말은 '이혼하다'(레21:7;민22:13)는 뜻도 지니고 있는 단어로 곧 법적 절차를 밟아 하갈과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에 대하여 지니고 있던 권리 및 관계를 제거시키라는 의미이다. 사라의 이러한 요구는 하갈이 여전히 그녀의 몸종이었던 이상(16:6) 당시의 관습으로서는 합법적인 것이었다(Nuzi Tablets). 그러나 한 때 사라가 자녀생산을 위해 하갈을 아브라함의 첩으로 주었던 목적(16:2)에 비추어 볼 때에는 잔인하며 이율배반적인 처사가 아닐 수 없다.
21:10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아브라함의 가계를 이으며 가산을 물려받을 수 있는 상속자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21:11 근심이 되었더니.
하갈과 이스마엘을 추방하라는 사라의 요구에 대하여 아브라함이 깊이 번민한 까닭은 (1)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래도 한 때 이스마엘을 약속의 후계자로 삼으려 했던 그의 부성애 때문이었으며(17:18) (2)또한 하갈이 비록 사라의 몸종이긴 하나 주인에게 자식을 낳아 준 여종은 함부로 추방하지 못한다는 것이 족장 당시 고대 근동 지방의 풍습이었기 때문이다(Nuzi Tablets).
21:12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14절에 의거할 때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계시가 임했던 때는 밤 시간이었으며 계시 전달 방법은 꿈이었던 것 같다.
21:12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언약의 후손에 참여할 수 있는 범주를 후손으로 제한하셨다는 거듭된 확약이다(17:21). 이러한 제한은 이삭의 두 아들 에서와 야곱 중 야곱만을 택함으로써 다시 한 번 축소되었다(25:23).
21:13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역시 이스마엘의 문제로 근심하는 아브라함을 위로하기 위하여 주신 이전 약속(17:20)의 재확인이다. 성경에 나오는 거듭된 약속이나 충고, 경고 등은 모두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깊은 배려에서 주어지는 것들이다. 한편 이같은 하나님의 약속은 후일 이스마엘에게서 12방백이 태어남으로써 실제로 성취되었다(25:12-26).
21:14 아침에 일찍이.
인간적인 갈등에 사로잡혀 한 때 번민하고 고통하던 것과는 다른 자세로 하나님의 분명한 뜻을 쫓아 순종하기를 지체하지 않으려는 태도이다.
21:14 떡과 물 한 가죽부대.
여행 길을 떠나는 데 있어서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준비물이다. 그런데 본문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으나 이외에도 아브라함이 얼마 만큼의 금품을 주었을 것으로 추정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왜냐하면 그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애정과 재산(13:2;20:14-16)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9절;16:1).
21:14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하더니.
브엘세바는 헤브론 서남쪽 약 44km지점에 위치한 팔레스틴의 국경 도시이다(삼상3:20). 그런데 하갈이 이곳 들판에서 방황하였다는 것으로 보아 그녀는 고향 애굽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애굽을 떠난지 이미 20년이 지난 뒤였으므로(16:3) 길을 잃고 헤매었던 것 같다.(Pulpit Commentary)
21:15 물이 떨어진지라.
하갈은 본시 애굽 출신의 여종으로서 사막의 열기 가운데에서도 장시간 힘든 일을 하는 것에 익숙해 있었지만 부유한 족장의 집에서 자란 이스마엘은 전혀 그런 경험이 없었으니 사막의 불볕 더위하에서 물이 떨어졌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21:16 화살 한 바탕.
'거리'(하르헤크)와 '화살 쏘기'(타하 케세트)가 복합된 말로 '화살이 미치는 거리'(bowshot), '활쏘기에 알맞은 거리'를 가리킨다. 이는 대략 300m 정도의 거리이다.
21:16 마주 앉아...소리 내어 우니.
속수무책인 상태에서 자식이 죽어가고 있는 비참한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어 멀찍이 떨어져 앉아 그저 목놓아 울고만 있는 애처로운 광경이다.
21:17 하나님이.
언약의 하나님인 '여호와'(12:1)가 아닌 능력의 하나님인 '엘로힘'으로서의 하나님을 가리킨다. 이는 하갈과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집에서 쫓겨남으로 더이상 언약적 하나님의 보호하에 있지 못하고 다만 우주 만물을 통치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보호 아래에만 있게 되었음을 시사한다(Keil).
21:17 하나님의 사자.
일전에 '술 길 샘물 곁'에서 하갈에게 현현하셨던 '여호와의 사자'(16:7)와 동일 존재인 것 같다.
21:17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일전의 여러 경우(17:1;18:1,2;19:1)와 같이 가시적으로 현현하신 경우이다.
21:17 두려워하지 말라.
아브람(15:1)과 이삭(26:24), 다니엘(단10:12), 요한(계1:17)에게도 들려졌던 것과 같은 하나님의 위로와 은총의 말씀이다(사41:10;43:1-3). 철저히 절망적인 상황 중에서도 겸손히 하나님을 바라보는 모든 자들에게는 오늘날에도 시공을 초월하여 이러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질 것이다(마10:30).
21:18 붙들라.
'강하게 하다'(신31:6), '굳세게 하다'(사35:4)는 말로 이스마엘이 성인이 될 때까지 용기를 잃지 말고 적극적으로 도와 주라는 뜻이다.
21:18 그가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미약한 시작을 위대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구속사적 사역을 증거해 주는 말로(고전1:26-29) 광야에서 길을 잃고 기갈(飢渴)중에 죽어가고 있는 보잘 것 없는 소년 이스마엘이 장차 아라비아 족속의 원조가 될 것이라는 희망찬 메시지이다.
21:19 눈을 밝히셨으므로.
기적적으로 영안을 밝혀주셨다는 뜻이 아니라, 거의 발견 불가능한 것을 섭리적으로 보게 해주셨다는 뜻이다.
21:19 샘물을 보고.
'샘물'에 해당하는 원어 '베에르'는 '보르'(저수지)와는 구분되는 말로 땅 속에 묻혀 있는 물이 솓아나는 '샘'을 의미한다(26:19;아4:15). 대게 이러한 샘물들에는 돌로 입구를 막고 특수한 표시를 해놓기 때문에 그 샘의 표시릘 모르는 자는 찾아낼 수가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하갈을 간섭하셔서 그녀로 하여금 이 같은 샘을 발견하도록 역사하셨다. 그러므로 메튜 헨리(Mattnew Henry)는 이 샘을 가리켜 '은총의 계약으로 이미 주어졌던 샘물', 즉 죄 가운데 방황할 때 발견 되어지지 않지만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에는 발견되어지는 샘물(요4:13,14)이라고 묘사하였다.
21:20 활 쏘는 자가 되었더니.
활은 광야 생활의 필수 도구로서 이스마엘이 크게 성장하여 활을 사용하는 한 부족으로 번창했음을 암시해 준다(Murphy).
21:21 바란 광야.
아카바 만과 수에즈 운하 사이에 위치한 곳으로 가데스 바네아 남쪽 지역이다. 이로 보아 하갈과 이스마엘은 브엘세바에서 기적적인 구원을 받은 후 계속 팔레스틴 남방으로 여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21:21 애굽 땅에서 아내를 얻어.
이스마엘은 애굽 여인 하갈과 히브리인 아브라함 사이의 혼혈아인데 그 역시 애굽 여인과 결혼함으로 후손 아라비아인들은 히브리, 애굽인 간의 완전한 이중 혼혈족이 되고 말았다.
21:22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
당시 아브라함이 거주하던 지역(34절)의 최고 통치자인 아비멜렉과 그의 군대 장관이 아브라함을 방문한 까닭은 상호 동맹 관계를 맺기 위해서였다. 즉 이미 하나님의 간섭(20:3-7)을 체험한 바 있는 아비멜렉은 하나님에 의해 점점 창성해 가고 있는 아브라함이 두려워 상호 불가침 조약을 맺기 원하였던 것이다. 인구도 부족하고 국가 조직도 미비된 당시 상황에서는 약자에 대한 강자들의 약탈이 빈번하였기 때문에 강력한 이웃의 세력과 조약을 맺는다는 것은 바로 생존과 직결되는 중대사였다.
21:22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후일 언약의 후손 이삭(26:28)과 야곱(30:27), 요셉(39:3)도 이방인들로부터 이와 동일한 고백을 듣는데, 바로 이 점이 성도를 불신자들과 구별지어 주는 근본적인 특징이다(마28:20).
21:23 나와 내 아들과 내 손자에게.
상호동맹 조약의 효력이 당대 뿐 아니라 자손들에게까지도 적용되기를 바라는 아비멜렉에게서 우리는 그가 얼마나 아브라함을 창대케 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있는지를 인지할 수 있다.
21:23 이제...맹세하라.
그 즉석에서 상호 불가침 조약이 체결되기를 염원하는 아비멜렉의 간청이다. 한편 '맹세'(*솨바)란 말은 '세바'(일곱)에서 파생된 말로 맹세의 엄중성 및 신성성을 강조해 준다. 그 까닭은 히브릴인들에게 있어서 '7'이란 숫자는 천지 창조 기간과 관련하여 더하거나 감할 수 없는 성수 및 '완전 수'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구속사적 맥락에서 이 맹세와 일곱의 관계는 그리스도의 가상칠언(架上七言,마27:46,47;눅23:34,43;요19:26-30)에서 결정적으로 나타났다.
21:23 내가 네게 후대한 대로.
아내 사라에 대한 아브라함의 거짓말로 인해 곤경에 빠질뻔한 상황 중에서도 아비멜렉이 그에게 각종 예물과 거주지를 제공하였던 일(20:14-16)을 가리킨다.
21:24 내가 맹세하리라.
화평의 사람 아브라함(13:9)이 아비멜렉의 화친 제의에 기꺼이 응한 것은 참된 신앙 인격이 결코 독선적이거나 배타적인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성도들도 세상적인 것을 피한다는 이유로 무조건 이웃이나 친구를 멀리해서는 안될 것이다(고전5:9-13).
21:25 우물을 빼앗은 일.
팔레스틴 남부 사막 지대의 유목민들에게 있어서 우물은 생활의 필수 요건이자 가장 큰 재산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우물을 장악하기 위한 분쟁이 종종 일어나곤 하였는데(26:17-22) 심할 때는 대대적인 전쟁으로 비화되기까지 하였다.
21:25 아비멜렉을 책망하매.
아비멜렉의 영토 안에 살고 있던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의 종들이 텃세를 부리며 자신의 우물을 강제로 빼앗는 일을 당하면서도 지금까지 참아 왔었다. 그러나 이제 우정의 동맹 조약을 맺게된 마당에서 이 문제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으니 이에 항의를 표한 것이다.
21:27 양과 소를...주고.
동맹 체결을 확정하는 의미에서 주는 선물이다. 즉 고대 근동에 있어서 국가나 개인간에 선물을 수납하는 것은 화친을, 거절은 불화와 전쟁을 의미하는 행위였다(사30:6;39:1).
21:28. 일곱 암양 새끼.
'7'이란 상징수를 통하여 맹세의 엄중성을 강조하려 한 '일곱 의식'이다. 즉 아브라함은 앞으로의 권리 침해에 대비하여 특별히 일곱 마리의 짐승을 아비멜렉에게 선물함으로써 자신의 우물 소유권에 대한 왕의 공식적인 인정을 받으려 한 것이다.
21:31 브엘세바.
일곱 암양 새끼로 맺은 맹세를 기념하는 명칭으로 '일곱의 우물' 또는 '맹세의 우물'이란 뜻이다.
21:32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돌아갔고.
34절과는 일견 모순되는 듯한 구절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블레셋 땅 뿐 아니라 여러 족속, 국가에 오늘날과 같은 뚜렷한 국경 개념이 없었다. 따라서 본적은 아비멜렉과 비골이 그들의 통치권이 미치는 지역으로 돌아갔다는 의미이다. 한편 아비멜렉이 그랄 왕임에도 불구하고(2절) 그의 통치령을 '불레셋 족속의 땅'이라 칭한 까닭은 그 곳에 블레셋인들이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21:32 에셀나무.
위성류로서 사막의 모래 언덕이나 염분이 많은 늪지대에서 잘 자란다. 아브라함이 단단하고 수명이 긴 이 나무를 심은 이유는 아비멜렉과 맺은 언약의 공고성과 지속성을 기원하는 마음에서였다.
21:32 영원하신...이름을 불렀으며.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그분께 찬양과 예배를 드렸다는 뜻이다. 한 편 아브라함은 일찍이 여호와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엘 엘욘)으로 불렀으며(14:22), 할례 언약시에는 '전능하신 하나님'(*엘 솨다이)으로 불렀다. 그런데 이제는 '영생하시는 하나님'(*엘 올람)으로 부름으로써 하나님은 오고 오는 세대에 걸쳐 자기 백성을 돌봐 주시는 분임을 고백하고 있으니 그의 신지식(新知識)이 더 한층 깊어졌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