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BIBLE/창세기

창세기32장 성경주석

홍페이지 2022. 6. 8.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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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2장 줄거리>

1. 마하나임의 하나님의 군대

3. 야곱이 에서에게 화해를 요청함

6. 에서와 400인

9. 야곱의 두려움

13. 야곱의 예물준비

21. 얍복강의 씨름

27. 야곱의 이름 개명(이스라엘)

 

<창세기 32장 개역개정>

1.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2.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3. 야곱이 세일 땅 에돔 들에 있는 형 에서에게로 자기보다 앞서 사자들을 보내며

4.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 주 에서에게 이같이 말하라 주의 종 야곱이 이같이 말하기를 내가 라반과 함께 거류하며 지금까지 머물러 있었사오며

5. 내게 소와 나귀와 양 떼와 노비가 있으므로 사람을 보내어 내 주께 알리고 내 주께 은혜 받기를 원하나이다 하라 하였더니

6. 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이르되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

7.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 한 동행자와 양과 소와 낙타를 두 떼로 나누고

8. 이르되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하리라 하고

9. 야곱이 또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10.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11.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

12.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13. 야곱이 거기서 밤을 지내고 그 소유 중에서 형 에서를 위하여 예물을 택하니

14. 암염소가 이백이요 숫염소가 이십이요 암양이 이백이요 숫양이 이십이요

15. 젖 나는 낙타 삼십과 그 새끼요 암소가 사십이요 황소가 열이요 암나귀가 이십이요 그 새끼 나귀가 열이라

16. 그것을 각각 떼로 나누어 종들의 손에 맡기고 그의 종에게 이르되 나보다 앞서 건너가서 각 떼로 거리를 두게 하라 하고

17. 그가 또 앞선 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내 형 에서가 너를 만나 묻기를 네가 누구의 사람이며 어디로 가느냐 네 앞의 것은 누구의 것이냐 하거든

18. 대답하기를 주의 종 야곱의 것이요 자기 주 에서에게로 보내는 예물이오며 야곱도 우리 뒤에 있나이다 하라 하고

19. 그 둘째와 셋째와 각 떼를 따라가는 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도 에서를 만나거든 곧 이같이 그에게 말하고

20. 또 너희는 말하기를 주의 종 야곱이 우리 뒤에 있다 하라 하니 이는 야곱이 말하기를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아 주리라 함이었더라

21. 그 예물은 그에 앞서 보내고 그는 무리 가운데서 밤을 지내다가

22.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새

23.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너가게 하며 그의 소유도 건너가게 하고

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25.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26.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29.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30.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31.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32. 그 사람이 야곱의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쳤으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까지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먹지 아니하더라

 

<창세기 32장 성경주석>

32:1 길을 가는데.

 갈르엣(31:47)을 떠난 야곱은 남쪽 곧 요단 강의 북쪽 지류인 얍복강을 향해 출발했다.

32:1 하나님의 사자들.

 고향을 떠나 올 때 벧엘에서도 나타났던(28:12) 하나님의 천사들이 귀향길 여정에서 또다시 야곱에게 출현한 것은 (1)지난 날에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던 것을 상기시켜 주며(28:15;31:13) (2)라반의 온갖 모략에서 보호하셨듯이(31:42) 장차 에서의 손에서도 무사히 지켜 주실 것이라는(히1:14) 확신을 주기 위함이고 (3)'내가 너를 그 땅으로 돌아가게 하리라'는 약속(28:15)을 재보증하기 위해서였다.

32:1 그를 만난지라.

 어떤 식으로 만났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1)이전처럼 꿈을 통해 조우하였거나(28:12;31:11) (2)엘리사처럼 영안을 통해 대면하였든지(왕하6:17) (3)아니면 아브라함이나 롯처럼 가시적인 형태로 현현한 천사를 보았든지(18:2;19:1)하였을 것이다.

32:2 하나님의 군대.

 '구부리다', '진을 치다'란 뜻을 가진 동사 '하나'에서 유래한 '원형의 진'을 나타내는 '마하네'와 '하나님'을 의미하는 '엘로힘'의 합성어로서 '하나님의 진영'(KJV;the camp of GOD)이란 뜻이다. 그런데 신약에서 '마하네'에 대한 70인역(LXX)의 번역인 '파레므볼레'는 성도들의 진인 '교회'를 의미한다(계20:9). 한편 진영을 형성한 이 천군의 주요 임무 중 하나는 진을 쳐  구원 얻을 후사들을 수호하는 일인데(시34:7;91:11;행27:23;히1:14). 그리스도께서도 이 천군의 존재를 밝히 인정하셨다(마26:53). 이제 고향 땅인 가나안으로 다시 돌아오는 야곱 일행에게 이 같은 군대가 출현한 것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1)벧엘 언약에 근거한(28:13) 가나안의 참된 계승자가 본토로 다시 돌아온 것을 환영하기 위해서였다. 이는 장차 성도의 천국 입성 때 천군 천사가 환영할 것을 예표하는 것이다(마24:31;눅16:22). (2)형 에서로부터의 보복의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야곱에게 이 군대가 친히 친위대가 되어 지켜 줄 것을 확신시켜 주기 위함이다.

32:2 마하나임.

 '두 진영' 혹은 '두 군대'(RSV;two armies)를 뜻하는 고유명사이다. 야곱이 그곳을 이렇게 부른 이유는 (1)두 진영, 즉 하나님의 진영과 야곱의 진영이 서로 만난 장소였기 때문이었거나 (2)두 군대로 형성된 많은 천사들, 즉 만군의 천사가 야곱 일행의 전후 혹은 좌우에서 옹위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이곳은 훗날 갓 지경 레위 지파 성읍으로 할당되었던 곳이자(수21:38;대상6:80).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잠시 수도를 세웠던 곳이며(삼하2:8,12). 다윗이 압살롬의 반란을 피해 도망했던 곳이기도 하다(삼하17:24). 그러나 이곳의 위치는 확실치 않은데 요단 동쪽 갈르엣과 얍복사이에 위치했던 것 같다.

32:3 세일 땅 에돔 들에 있는 형 에서.

 이삭이 이미 예언한 대로이다(27:39). 그런데 에서가 호리 족속이 살던 험한 산지인 이곳 세일땅을 굳이 자신의 터로 삼은 이유는 (1)사냥꾼으로서(25:27) 수렵 생활을 영위해 나가는데 이곳이 더 적합한 장소였기 때문이거나 (2)세월이 흐름에 따라 자신을 떠나버린 야곱을 그리워하는 모친 리브가와 평소 자신의 아내들을 못마땅하게 여긴 부모와의 갈등으로 인한 가정불화롸 염증을 느낀 나머지 부모에게서 멀리 떠나 있기 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32:4 명령하여.

 이때의 야곱의 정황을 참작하여 그의 안절 부절한 마음 상태를 잘 나타내기 위해 이렇게 번역한 것 같다.

32:4 내 주 에서...주의 종 야곱.

 외교적인 상투어로 자신을 최대한도로 낮추면서 상대방을 최대로 높이는 히브리인들의 관용적 표현이다(19:2). 여기서 '내 주'(*라아도니)란 말은 에서에게 자신의 모든 권한을 위임하는 야곱의 겸양을 나타낸 말이다. 한편 야곱이 이러한 태도를 취한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 (1) 세력이 월등한 형 에서와 화목을 이루려는 생각에서(Keil) (2)하나님의 사자를 만난 이후 물질관리 축복관의 변화로 인해 자신의 모든 것을 에서에게 양보코자 하는 마음에서(Leupold) 등이다.

32:4 거류하며.

 혈족이 아닌 사람들 사이에 나그네로 잠시 머무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야곱이 항상 가나안으로 돌아갈 것을 기대하고 있었음을 나타내 준다.

32:4 있었사오며.

 '체재하다'(KJV;stay), '지연되다'(NIV;delay)란 뜻으로 잠시 외삼촌 댁에 피신코자 했던 야곱의 체류가 그의 본래 계획과는 달리 오랫동안 지체되었음을 암시해 준다.

32:5 내게 소와 나귀와...있으므로.

 야곱이 이 말을 한 것은 자기에게는 이미 재산이 있어 이삭의 재산에 대한 상속권 주장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암시하기 위함이었던 것 같다.

32:6 사백 명을 거느리고.

 칼을 믿고 살아왔던 자 답게(27:40) 강력한 전투력을 갖춘 부족의 족장으로 성장한 에서의 이 행동은 분명 화해보다는 적대감을 뜻하는 일종의 자기 과시였다(Ainsworth). 한편 400이란 숫자는 지난 날 그들의 조부 아브라함이 롯을 구출하기 위해서(14:14) 동원했던 병력 수인 318명을 훨씬 상회하는, 고대 사회에서는 대병력이었다.

32:7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절대절명의 상황에서 무엇에 짓눌린듯한 곹공과 좌절감으로 피곤해 있는 상태를 묘사한 말이다(삿2:15;욥18:7).

32:7 두 떼로 나누고.

 유목민들을 위험에 직면할 때 가축을 몇 떼로 분산시켜 곧 잘 희생을 최소 한도로 줄이곤 한다.

32:8 피하리라.

 '탈출하다', '구하다'란 뜻을 가진 동사 '팔라트'에서 파생한 단어로 '도피시켜 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유목민들의 불의의 습격에 대비한 자구책이다.

32:9 내 조부...여호와.

 일찍이 나의 조상에게 신실했던 하나님께서 오늘의 나에게도 은혜를 베풀어 달라는 간절한 야곱의 기도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약속과 신실하심을 의지하고 간구하는 것이야말로 바른 기도 자세이다.

32:10 진실하심.

 '확증하다', '실실하다'란 뜻을 가진 동사 '아만'의 파생어로 하나님의 품성의 한 특징인 '성실성'(24:27) 혹은 '진실함'(출34:6)을 의미한다. 즉 단순한 개념이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 확인된 진실을 가리킨다. 이는 야곱이 지난 20년간의 삶의 여정 가운데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몸소 경험한 데서 비롯된 고백이다.

32:10 나는...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작은'(삼상9:21;15:17). '약한'(사60:22)이란 뜻인 '카톤'의 완료형으로 '나는 여태껏 미천하고 보잘것 없었듯이 지금도 부족함 투성이다'는 의미이다. 이는 곧 자신의 간교했던 행적에 비해 너무나 크신 하나님의 긍휼을 생각하며 감격에 찬 심정으로 현재의 곤고함에서도 자신을 넉넉히 구우너하실 것을 믿는 감사와 확신에 찬 기도이다.

32:10 지팡이만 가지고.

 20년전 급히 도피하던 처량한 자신의 모습을 강조한 말로서 하나님이 내리신 현재의 축복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32:11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야곱의 절박한 기도 제목이다. 같은 뜻의 말이 중복된 것은 결코 중언 부언이 아니라 과거에 지은 죄로 인한 두려움에서 거의 애원조로 몸부림치며 하나님께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특히 이러한 간절한 기도를 즐겨 받으신다(시34:18;51:17;욜2:12).

32:11 처자들.

 '어머니'를 뜻하는 '엠'과 '아이들'을 나타내는 '바님'에 '위에'를 의미하는 전치사 '알'이 합쳐진 말로 직역하면 '자녀들 위의 어머니'(mother upon the children)이나 그 뜻은 '자녀들을 거느린(감싸안은) 어머니'(KJV;mother with the children)이다. 이는 위험이 닥칠 때 어린 자식들을 본능적으로 자기 품에 품고 감싸는 어머니의 희생적인 모습을 생생히 묘사한 히브리인들의 독특한 관용적 표현이다.

32:12 네 씨로...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절대절명의 위기 앞에서 이제 야곱은 후손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22:17;28:14)을 붙들고 구원을 호소한다. 실로 죄인인 인간은 어떤 경우에라도 자신의 소원을 하나님께 간구할 권리가 없으나, 하나님은 당신의 자비로 또 독생자 예수의 이름으로 우리의 기도에 분명히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요15:7).

32:13 그 소유 중에서.

 '그의 손에 온 것으로부터'(KJV;that which to his hand)란 뜻이다. 밤중이란 상황하에서 더구나 적의에 불탄 에서가 다가오고 있었으므로 속히 그에게 환심 살 예물을 필요로 한 나머지 야곱이 자기 손에 잡히는 대로 가축들을 모은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자기 소유 중에서 예물에 합당한 것만을 선택했다는 뜻을 함축한 개역 성경의 번역은 적절치 않다.

32:16 각 떼로 거리를 두게.

 일정한 거리를 두고 예물의 양이 많아 보이게 하는 효과를 노림과 동시에 세 번의 선물을 줌으로써 급한 성격의 소유자인 에서의 격한 감정을 완화시키려 한 야곱의 지혜였다.

32:17 너를 만나 묻기를.

 황급한 상황 속에서도 종들에게 예상 질문과 답변을 준비시키는 야곱의 임기 응변적인 모습에서 그의 타고난 책략가로서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19절).

32:18 야곱도 우리 뒤에 있나이다 하라.

 물질적 보상 뿐 아니라 몸소 죄에 대한 용서까지도 빌겠다는 전갈로서 행여 도주할 의도나 딴 속셈을 전혀 품지 않고있음을 에서에게 확인시켜 안심을 주기 위한 말이다(Kalisch).

32:19 떼를 따라가는 자.

 평소 가축보다 목자가 앞서 가는 것이 관례이나(요10:4), 야곱은 목자들로 가축 떼를 뒤따르게 함으로써, 다혈질적이며 물질에 약한 에서의 품에 예물을 안겨 그의 마음을 회유시키려 의도하였던 것 같다.

32:20 감정을 푼 후에.

 '카파르'(덮다)의 미래형과 '파님'(얼굴)에 3인칭 접미어가 합쳐진 말로 '내가 그으이 얼굴을 덮으리라'란 뜻이다. 여기서 '덮다'는 '용서하다'는 뜻의 상징적 표현이다. 피해를 입은 자에게 선물을 안겨 그 얼굴을 가림으로써 자신에게 가해진 해를 보지 못하게 하는 일종의 유화정책이다. 야곱은 불같이 흥분했다가도 금방 수그러드는 형 에서의 호탕한 성격을 익히 아는지라 여기에 기대를 걸은 듯 하다.

32:20 나를 받아 주리라.

 여기서 '나를'을 뜻하는 히브리어 '파나'란 '나의 얼굴'(my face)란 의미이다. 한편 얼굴은 그 사람의 온 인격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나를 받으리라'는 '나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모두 인정하고 용납하리라'는 뜻이다.

32:22 얍복.

 갈릴리 호수와 사해 중간에 위치한 요단 강의 동쪽 지류로서 우기에만 집중적으로 물이 흐르는 간헐천이다. '싸우다'란 의미를 지닌 '야바크'에서 유래한 '싸름꾼'이란 이 개천의 이름은 이곳에서 겪은 야곱의 신비한 경험을 기념하며 후대 사람들이 붙인 것 같다. 오늘날에는 '맑고 푸른 강'이란 뜻인 '와디 젤카'(Wadi ez Zerka)로 불리운다.

32:22 나루를 건널새.

 요단 동편 험준한 산악 지대를 흐르는 얍복강은 물길이 세기 때문에 특별히 잔잔하고 얕은 곳을 골라 가족과 가축을 이동시켰을 것이다. 따라서 '나루'란 강을 건넌 곳에 대한 일반 명칭으로 봄이 좋다.

32:24 어떤 사람.

 천사장 미가엘일 것이라는 견해도 있으나 (1)야곱은 그를 하나님이라 불렀고(30절) (2)선지자 호세아는 하나님과 천사를 교차하여 사용한 점(호12:3,4)으로 미루어 볼 때 이 사람은 단순한 천사(an angel)가 아니라 여호와의 천사(the Angel of the God)가 아니라 여호와의 사자로도 표기되는(22:11;출3:2;삿6:12) 성육신 이전의 그리스도로 보는 것이 무난하다.

32:24 씨름하다가.

 이 말은 (1)'먼지를 일으키다'란 뜻의 '아바크'에서 유래했다는 견해가 있다. 즉 땅에 먼지가 일어날 정도로 격렬하게 몸싸움을 한 것으로 보았다. (2)'단단히 붙잡다', '껴안다'란 뜻의 '하바크'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즉 필사적인 싸움을 암시한다. 여기서는 이 두 견해를 모두 수용할 수 있는데, 실제 씨름하듯 영육간의 모든 힘을 쏟아(눅22:44) 눈물로 붙들고(호12:4) 필사적으로 간구하는(마26:39) 야곱의 기도 모습을 생생히 묘사해 준다.

32:25 야곱을 이기지 못함.

 성도가 하나님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도, 즉 하나님의 은총을 받기 위해서는 오로지 기도밖에 없음을(시91:15;막9:29;눅11:9) 역설적으로 암시해 주는 말이다.

32:25 허벅지 관절.

 문자적으로 '엉덩이의 우묵한 구멍', 곧 넓적다리 부분의 움푹패인 곳을 가리킨다. 원래 환도뼈는 둔부 아래쪽에 있는 좌골로 엉덩이의 골반을 형성하는 좌우 한 쌍의 뼈를 뜻한다(24:2).

32:25 어긋났더라.

 환도뼈는 사람의 몸을 받쳐주는 물리적 힘의 생성부분으로 종종 생명과 힘의 근원을 상징한다(35:11;46:26;히7:10). 따라서 하나님께서 야곱의 이 뼈를 치신 것은 (1)지금까지 육적 수단에 의지해 왔던 야곱을 완전히 꺾으심으로 이후로는 하나님만을 의지케 한 것이며 (2)또한 예표적으로는 장차 그의 허리에서 나올 이스라엘의 운명 역시 인간적 수단에 의지하게 될 때 이처럼 무력해 질 수 밖에 없다는 경고와 아울러 오직 그 허리를 치신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된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기 위한 것이었다. 즉 이것은 바울의 고백처럼 '약할 때 강해진다'(고후12:10)는 역설적 진리를 예표한 사건이다.

32:26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얼마든지 야곱을 뿌리치고 떠나실 수 있는 하나님께서 굳이 이렇게 요청한 이유에 대해서는 네 가지 견해가 있다. (1)아침이 되면 다른 사람들이 목격함으로써 헛된 호기심만 자극하기 때문에 (2)결사적인 기도로 얻어진 야곱의 승리를 확인시켜 주는 하나님의 애정어린 표현으로 (3)야곱에게 새 날에 걸맞는 새 일(에서와 대면하여 사죄하는 일)이 있음을 암시하기 위해 (4)하나님을 보고 살 자가 없기 때문에 아침이 되기 전에 떠나시기 위함이다(출33:20).

32:27 네 이름이 무엇이냐.

 히브리인에게 이름이란 한 존재의 속성과 전인격을 대표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이러한 질문은 야곱에게 새 이름을 주기 직전 교만과 사기 그리고 속임수로 점철된 옛 이름을(27:36) 고백시킴으로써 새 이름의 의미와 가치를 부각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이해되어진다.

32:28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그 삶과 신분과 인격에 극적인 변화가 주어졌음을 암시한다. 특히 그 이름을 명명하는 자는 그 대상에 대한 소유권과 주도권을 가진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므로 이처럼 야곱의 이름이 바뀐 것은 (1)인간적 실패의 이름이 영적 승리의 이름으로 축복받은 것을 뜻하며 (2)벧엘 언약(28:10-15)에 근거하여 야곱이 실질적 언약의 후계로서 하나님에 의해 정식 비준(比準)된 것을 의미한다. 한 편 '이스라엘'이란 '우세하다', '싸우다', '왕비'라는 뜻의 '사라'와 전능자이신 하나님을 의미하는 '엘'이 결합된 형태로서 '하나님이 통치하신다'(Kalisch)는 뜻도 \있으나 대체로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긴 자'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32:28 겨루어.

 힘, 능력 등을 총동원하여 대치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인간으로서 동원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과 집념을 기울인 상태를 가리킨다.

32:29 이름을 알려주소서.

 히브리인들이 생각하던 이름의 중요성(28절)에 비추어 볼 때 이 제의는 존재 신분과 성품성을 동시에 요구하는 복합적 요청이다.

32:29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여호와의 사자'의 이름을 물은 마노아에게 주어졌던 것과 도일한 방법으로(삿13:17,18)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1)야곱이 이미 그 자사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음을 전제하여 더 이상 무엇을 알기 원하느냐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2) 또한 한계성을 지닌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다른 이해할 수 없는 신비롭고 놀라운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이름임을 시사하기 위한 것이다.

32:30 브니엘.

 '하나님의 얼굴'이란 뜻으로 뒤이어 나오는 말에서 설명하였듯이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 교제하고 은혜를 체험한 사실을 기념하는 지명이다.

32:30 하나님과 대면하여...생명이 보전.

 아담 타락 이후 죄로 오염된 인간은 그 누구도 하나님의 얼굴을 정면으로 보고 살 자가 없다(출34:20,23;딤전6:16). 그러나 이 말은 제 1위 되신 성부 하나님께만 적용되는 말이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사자(16:10)로도 표기되는 성육신 이전의 하나님, 즉 2위 되신 성자 그리스도를 보았지만 하갈이나 양곱 그리고 기드온이나 마노아처럼 산 자가 있었기 때문이다(16:13;삿6:22;13:21-23).

32:31 절었더라.

 '첼라'(절뚝거리다)의 분사형으로 계속해서 '절뚝거리는 모습'을 가리킨다. 즉 이제 야곱의 몸에도 바울처럼 은혜의 흔적이 새겨진 것이다(고후12:7-10;갈6:17). 다시 말해서 이는 과거의 인간적인 자신 만만함과 교만을 깨쳐 버리고 베드로처럼 주님이 이끄시는 대로 가야 할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화시키는 은혜의 가시인 것이다(요21:18).

32:32 먹지 아니하더라.

 지금도 히브리인들은 피처럼(9:4) 환도뼈의 큰 힘줄도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과의 접촉을 통하여 거룩히 바쳐진 것으로 믿기 때문에 먹지 않고 있다. 물론 이것은 성경이 금하는 바가 아니나 히브리인들은 탈무드 등에 이같은 규례를 두어 엄격히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