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33장 성경주석
<창세기 33장 줄거리>
1. 야곱과 에서의 재회
12. 야곱과 에서의 이별
18. 야곱의 세겜 정착
<창세기 33장 개역개정>
1. 야곱이 눈을 들어 보니 에서가 사백 명의 장정을 거느리고 오고 있는지라 그의 자식들을 나누어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맡기고
2. 여종들과 그들의 자식들은 앞에 두고 레아와 그의 자식들은 다음에 두고 라헬과 요셉은 뒤에 두고
3.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의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가니
4.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
5. 에서가 눈을 들어 여인들과 자식들을 보고 묻되 너와 함께 한 이들은 누구냐 야곱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의 종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들이니이다
6. 그 때에 여종들이 그의 자식들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7. 레아도 그의 자식들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그 후에 요셉이 라헬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니
8. 에서가 또 이르되 내가 만난 바 이 모든 떼는 무슨 까닭이냐 야곱이 이르되 내 주께 은혜를 입으려 함이니이다
9. 에서가 이르되 내 동생아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니 네 소유는 네게 두라
10. 야곱이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내가 형님의 눈앞에서 은혜를 입었사오면 청하건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11.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내 소유도 족하오니 청하건대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 하고 그에게 강권하매 받으니라
12. 에서가 이르되 우리가 떠나자 내가 너와 동행하리라
13. 야곱이 그에게 이르되 내 주도 아시거니와 자식들은 연약하고 내게 있는 양 떼와 소가 새끼를 데리고 있은즉 하루만 지나치게 몰면 모든 떼가 죽으리니
14. 청하건대 내 주는 종보다 앞서 가소서 나는 앞에 가는 가축과 자식들의 걸음대로 천천히 인도하여 세일로 가서 내 주께 나아가리이다
15. 에서가 이르되 내가 내 종 몇 사람을 네게 머물게 하리라 야곱이 이르되 어찌하여 그리하리이까 나로 내 주께 은혜를 얻게 하소서 하매
16. 이 날에 에서는 세일로 돌아가고
17. 야곱은 숙곳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그의 가축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었으므로 그 땅 이름을 숙곳이라 부르더라
18. 야곱이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읍에 이르러 그 성읍 앞에 장막을 치고
19. 그가 장막을 친 밭을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아들들의 손에서 백 크시타에 샀으며
20. 거기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불렀더라
<창세기 33장 성경주석>
33:1 눈을 들어 보니.
하나님과 대면한 이후, 더 이상 전전 긍긍하며 겁에 질린 '야곱'의 눈이 아니라, 이제는 믿음과 확신에 찬 '죽으면 죽으리라'(에4:16)란 신앙으로 형 에서를 담담히 바라보는 '이스라엘'의 눈이다. 이처럼 하나님께 매달려 그분의 은혜를 체험한 자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는다. 그야말로 하나님께 무릎 꿇는 자는 사람에게 무릎 꿇지 않는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33:2 라헬과 요셉은 뒤에 두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야곱은 자식들과 아내들을 사랑하는 순서대로 배열하였으므로 라헬과 약 6살 정도 난 막내 아들 요셉은 가장 뒤에 배치되었다. 이것은 아직도 버리지 못한 야곱의 뿌리 깊은 편애 심리를 보여 준다(29:30).
33:3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얼굴이 땅에 닿을 만큼 몸을 숙여 경의를 표하는 인사를 한 곳에 머물러 서서 한 것이 아니라 차츰 가까이 가면서 계속적으로 하였음을 가리킨다. 즉 이것은 고대에 왕이나 점령자들에게 갖추던 예의로 먼 발치에서 일곱번 절하는 사이에 가까이 나아가던 방식이다. 그러나 야곱은 위선이나 비굴한 마음에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지난 날의 잘못을 뉘우치며 화해를 간구하는 뜻으로 성심성의를 다했을 것이다.
33:4 그를 맞이하여 안고.
다혈질적 성격인 에서는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형제를 보는 순간 모든 살의와 원통함이 눈녹듯 사라지고 말았다. 하나님께서 얼음보다 차가운 에서의 마음에 은혜와 사랑의 온기를 심어 주셨기 때문이다.
33:4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우애가 넘치는 재회 장면으로서 그들의 지난 이산 기간의 서러움과 지금의 만남이 한없이 기뻤기 때문에 취할 수 있었던 자연발생적인 인사와 교제였다(45:14).
33:5 이들은 누구냐.
직역하면 '이들은 너에게 있어서 누구냐'로 그 관곅를 묻는 말이다. 에서는 집을 떠날 당시 미혼이었던 야곱의 곁에 모여있는 여인들과 아이들에게로 눈길을 던지며 물었다.
33:5 하나님.
야곱은 언약의 하나님인 '여호와'를 언급함으로써 과거 에서에게 입힌 쓰라린 기억을 상기시켜 일을 그르칠까봐 하나님의 통상적인 명칭을 사용한 것 같다.
33:7 요셉이 라헬과 더불어.
다른 모자들과는 달리 요셉이 자기 어미보다 먼저 나온 이유는 확실치 않으나 아마도 아무런 사정도 모르는 철부지로 말로만 듣던 큰아버지를 막상 보자 그리움과 반가움에서 우러나온 행동이었을 것이다.
33:8 이 모든 떼는 무슨 까닭이냐.
문자적으로는 '이 모든 무리는 네게 무엇을 의미하느냐?'이다. 예상 밖의 선물을 주는 야곱의 동기에 대한 의아함의 표시이다.
33:9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니.
'있다'란 동사 '야솨'와 '...에게'를 뜻하는 전치사 '리' 그리고 '많다'란 '라브'가 합쳐진 '예쉬 리 라브'라는 말로 '나는 많이 소유하고 있다'란 뜻이다. 이는 야곱의 예물이 자신에게 필요치 않음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사실 서로간의 진정한 화해는 그 사이에 속된 이권이 오고 가는 것이 필요치 않기 마련이다.
33:10 은혜를 입었사오면...예물을.
고대사회에 있어서 선물은 각 부족간의 우의와 상호동맹에 대한 증표로 간주되었다. 그래서 상대의 선물을 받는 것은 그의 교제를 받아들이는 표로, 선물을 내치는 것은 전쟁과 불화를 표시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야곱은 에서의 용서와 화해의 증거물로 선물을 건네줬던 것이다.
33:10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의 얼굴에 나타난 따뜻하고 친절한 우애 속에서 야곱은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의 빛을 보았다. 왜냐하면 복수심에 가득 찬 형 에서의 마음을 그처럼 부드럽게 변화시켜 자신을 영접토록 주장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33:10 기뻐하심이니이다.
이에 해당하는 원어 '라차'는 '즐거워하는 것'(잠22:26)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호의를 보이며 함께 연합하는 애정(시50:18)까지 의미한다.
33:11 내 소유도 족하오니.
먼저 '족하오니'(*콜)는 모두(6:17;7:4). 여러가지(출35:22) 등 전혀 부족함 없이 풍족한 상태를 일컫는다. 따라서 직역하면 '나는 모든 것을 소유하였으므로'이다. 단지 '많이 가졌다'라고 말한 에서(9절)와는 달리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이후 하나님께서 자신과 동행 하심을 확인한 야곱의 말이다. 이처럼 하나님께 신뢰를 두는 자는 모든 것을 소유했다고 고백할 수 있다.
33:11 강권하매 받으니라.
이를 통해 야곱은 형과 소원했던 관계를 모두 청산하고 화해를 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10절).
33:13 자식들은 연약하고.
당시 맏아들 르우벤은 13세 정도였고(29:20,21;31:38) 막내 아들 요셉은 6세 정도에 불과했다.
33:13 하루만 지나치게 몰면...죽으리니.
얼마전 라반에게서 도피하면서 새끼 딸린 가축들을 지나치게 몰아 지쳐있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행군하는 에서의 군대에 보조를 맞춰 더 이상 무리하게 몰 수 없다는 말이다.
33:14 걸음대로.
직역하면 무리하지 않고 가축과 자식들의 '보조에 맞추어'가 된다. 가나안은 야곱 혼자만의 땅이 아니라 야곱 가족과 그 후손에게 약속된 복된 기업이었다.
33:14 세일로 가서.
하란을 떠날 때부터 야곱의 목적지는 아비가 살고 있는 가난안 땅 헤브론이었다(31:18;35:27). 따라서 이 말은 형 에서를 고의로 따돌리려는 속임수가 아니라 일단 헤브론에 정착한 다음 후일 세일에 있는 에서를 방문하겠다는 뜻으로 이해함이 좋다. 한편 그 후 야곱이 세일 땅을 방문하였는지에 관해서는 성경상의 언급이 없는데, 대신 아비 이삭의 장례식에서 다정하게 만난 두 형제의 모습은 기록되어있다(35:29).
33:15 어찌하여 그리하리이까.
약탈자가 빈번히 출모하던 당시 광야 여행에서 야곱이 강력한 에서의 호위대를 이처럼 거듭 거절한 이유는 그가 이미 하나님의 군대(32:2)에 의해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음을 확신했기 때문일 것이다.
33:15 얻게 하소서.
'발견하다'란 동사 '마차'의 미완료로서 '기원'을 뜻한다. 즉 형께서 다시 한 번 은혜를 베풀어 너그럽게 제 사양의 뜻을 이해하시고 받아달라는 의미이다.
33:17 숙곳에...집을 짓고,
'숙곳'(*속코트)이란 가축용 '우리' 또는 '장막'을 뜻하는 말로 얍복강 북쪽으로 16km 떨어진 요단 동편 계곡에 위치한 지역이다(수13:27;삿8:4-16). 이곳에서 야곱 일행은 수년을 거주했던 것 같다. 이는 어린 딸 디나가 세겜에 당도했을 때 이미 성숙한 처녀였다는 사실에 의해서도 뒷받침 된다(34:1-4). 한편 야곱 일행이 이곳에 장기간 체류한 이유는 (1)라반집에서의 20년간에 걸친 종살이에 따른 압박감 (2)급한 도피 여행 (3)얍복강 사건으로 인한 육체적 불편함 (4)형 에서와의 극적인 만남 등으로 심신이 완전히 지쳐 있어 일단은 상당 기간의 휴식이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33:17 우릿간.
가축을 위해 갈대나 풀잎으로 엮어 만든 처소를 가리킨다. 방목에 의존했던 가나안에서 이 같은 처소를 마련한다는 것은 상당히 오랜기간 한 곳에 머무를 것을 시사하는 행동이다.
33:18 밧단아람에서부터.
직역하면 '그가 밧단아람에서부터 돌아 왔을 때'이다. 이것은 오래전 하나님께서 맺으신 벧엘 언약(28:10-15)이 외삼촌 라반의 집인 밧단아람(28:5)에서부터의 귀향으로 말미암아 성취되었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33:18 평안히.
가나안 정착을 순조롭게 진행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말로서 야곱에게 절대 안전이 보장되었음을 나타낸다.
33:18 세겜성읍에...장막을 치고.
이 때 양곱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신실성에 감사하며 이 전 하란으로의 도피 중 벧엘에서 맹세한 서원(28:21,22)을 기억하고 곧장 벧엘로 내려가 감사의 단을 쌓았어야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한 야곱의 실수는 결국 세겜 땅에서 '디나 강간 사건'(34장)이라는 엄청난 비극을 불러들이고 말았다.
33:19 밭을...샀으며.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28:13)에 의거하여 언젠가는 이 가나안 땅이 자신과 자신의 후손의 터전이 될 것이라는 믿음에 근거, 그 담보로서 땅의 일부를 매입하였다(20절). 훗날 이 정신을 계승한 야곱의 후손들은 가나안 정복 직후에 애굽에서 운구한 요셉의 유해를 이곳에 장사했다(수24:32).
33:19 백 크시타.
'100개의 케시타'. 여기서 '케시타'는 일반적으로 동전으로 사용된 일정량의 은을 가리키는데, 혹자(Onkelos, Gesenius)에 따르면 '케시타'가 '새끼 양'을 의미한다고 한다. 즉 '새끼 양 한 마리 가격에 상당한 은'이란 뜻으로 해석한다.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으나 성경 최초로 주화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언급했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있다.
33:20 제단을 쌓고.
'세우다' 혹은 '만들다'란 동사 '야체브'의 3인칭 과거형과 '제물을 바치다', '동물을 희생시키다'란 동사 '자바흐'에서 유래된 명사 '미즈베아흐'(제단)가 합쳐진 말로 '그는 동물을 희생시키는 제단을 만들었다'란 뜻이다. 즉 야곱은 조부 아브라함이 처음 가나안 땅에 들어와 제단을 쌓은 그 곳에(12:6,7) 역시 같은 단을 쌓음으로써 섭리로 그를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께 자신의 첫 땅을 거룩히 구별하여 바쳤던 것이다.
33:20 엘엘로헤이스라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란 뜻이다. 야곱이 단을 쌓은 곳을 이처럼 명명한 이유는 자신과 벧엘 계약을 맺어주시고 '이스라엘'이란 새 이름을 부여해 주신 그 하나님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