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26장 성경주석
<이사야 26장 줄거리>
1. 성실하심과 자비하신 하나님
11. 구원받은 백성의 결단
16. 무능력한 유다를 구원하신 하나님
<이사야 26장 개역개정>
1. 그 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르리라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구원을 성벽과 외벽으로 삼으시리로다
2. 너희는 문들을 열고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나라가 들어오게 할지어다
3.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4.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5. 높은 데에 거주하는 자를 낮추시며 솟은 성을 헐어 땅에 엎으시되 진토에 미치게 하셨도다
6. 발이 그것을 밟으리니 곧 빈궁한 자의 발과 곤핍한 자의 걸음이리로다
7.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하게 하시도다
8. 여호와여 주께서 심판하시는 길에서 우리가 주를 기다렸사오며 주의 이름을 위하여 또 주를 기억하려고 우리 영혼이 사모하나이다
9. 밤에 내 영혼이 주를 사모하였사온즉 내 중심이 주를 간절히 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땅에서 심판하시는 때에 세계의 거민이 의를 배움이니이다
10. 악인은 은총을 입을지라도 의를 배우지 아니하며 정직한 자의 땅에서 불의를 행하고 여호와의 위엄을 돌아보지 아니하는도다
11. 여호와여 주의 손이 높이 들릴지라도 그들이 보지 아니하오나 백성을 위하시는 주의 열성을 보면 부끄러워할 것이라 불이 주의 대적들을 사르리이다
12. 여호와여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평강을 베푸시오리니 주께서 우리의 모든 일도 우리를 위하여 이루심이니이다
13.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여 주 외에 다른 주들이 우리를 관할하였사오나 우리는 주만 의지하고 주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14. 그들은 죽었은즉 다시 살지 못하겠고 사망하였은즉 일어나지 못할 것이니 이는 주께서 벌하여 그들을 멸하사 그들의 모든 기억을 없이하셨음이니이다
15. 여호와여 주께서 이 나라를 더 크게 하셨고 이 나라를 더 크게 하셨나이다 스스로 영광을 얻으시고 이 땅의 모든 경계를 확장하셨나이다
16. 여호와여 그들이 환난 중에 주를 앙모하였사오며 주의 징벌이 그들에게 임할 때에 그들이 간절히 주께 기도하였나이다
17. 여호와여 잉태한 여인이 산기가 임박하여 산고를 겪으며 부르짖음 같이 우리가 주 앞에서 그와 같으니이다
18. 우리가 잉태하고 산고를 당하였을지라도 바람을 낳은 것 같아서 땅에 구원을 베풀지 못하였고 세계의 거민을 출산하지 못하였나이다
19.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들을 내놓으리로다
20. 내 백성아 갈지어다 네 밀실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깐 숨을지어다
21. 보라 여호와께서 그의 처소에서 나오사 땅의 거민의 죄악을 벌하실 것이라 땅이 그 위에 잦았던 피를 드러내고 그 살해 당한 자를 다시는 덮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26장 성경주석>
(이사야 26:1) 여호와께서 구원을 성벽과 외벽으로 삼으시리로다.
모압으로 전형화된 하나님의 백성의 원수가 몰락하는 날에 새로운 도성이 창건될 것인데, 여기선느 그 도성의 강함의 원천이 제시된다. 그것은 그 백성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다. 돌과 흙으로 빚은 성벽과 바깥벽만으로는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백성을 보호하지 못한다. 오직 하나님의 구원이 함께할 때라야 그 도성은 난공불락(難攻不落)이 된다.
(이사야 26:2) 너희는 문들을 열고...들어오게 할지어다.
하나님의 구원에 참예할 수 있는 백성들의 자질이 두 가지로 언급된다. 그것은 의로움(*차디크)과 신실함(*에무님)이다(1:26). '신을 지킨다'(*쇼메르 에무님)는 말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확고하게 유지함을 뜻하는 말이며, '의로운 나라'(*고-차디크)는 그로부터 파생되는 고귀한 영적 특성을 가리킨다(신6:25). 신구약을 막론하고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의로움은 자기 안에 선함이 없음을 깊이 인식하고 오직 하나님의 구원만을 갈망하는 내적 의존의 태도를 말하니(롬7:18), 이러한 믿음의 자세를 가진 사람들에게만 도성의 문은 열리는 것이다(32:16,17;33:15,16;시15편;24:3-10;118:19,20;호2:18-20;암5:21-24). 이것은 다음절에서 보다 명확하게 표현된다.
(이사야 26:3) 심지가 견고한 자.
문자적으로는 '견고한 마음'이니, 하나님만을 굳게 붙잡고 의지하는 마음 상태를 말한다. '마음'(*예체르)은 사람의 내적 구조, 즉 사상과 의지의 그물로 짜여져 있는 전 태도와 습관을 가리킨다(Delitzsch). '사무크'는 '머물다, 받치다'는 뜻의 '사마크' 동사의 분사형으로서, 어떤 것을 확고하게 떠받치고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시112:8). 그 맞은편 대극에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태도'(약1:8)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는 마음'(마6:24)이 위치한다.
(이사야 26:4)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완전한 평화가 여호와를 의지함에서 주어지는 것이 확실할진대, 이 같은 사실에 근거해서 선지자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지하라고 권면한다. '의뢰하라'(*비트후)는 말은 '믿다', '확신하다'는 뜻의 '바타' 동사의 명령형이며, 그 분사형(*바투아흐)이 앞절에서도 사용되었다. 신약에서와 마찬가지로 선지자 이사야에게 있어서 믿음과 구원의 문제는 긴밀하게 연관된다(12:2).
(이사야 26:4) 영원한 반석.
하나님의 '반석'(*추르)으로 즐겨 비유된다(8:14;17:10;30:29;44:8;신32:4;삼상2:2;삼하22:2,32;시19:14;61:2;고전10:4). '반석'에는 위급할 때 사람들이 도피하는 피난처라는 의미와 흔들림이 없는 굳건한 요새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더나아가 그는 영원한 반석 곧 만세 반석이시다.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이러한 영원성이야말로 참된 신앙의 터전이 되는 것이다.
(이사야 26:5) 높은 데에 거주하는 자를 낮추시며 솟은 성.
'높은 데'(*마롬)와 병행하는 '솟은 성'(*키르야 니스가바)은 사람들의 접근을 불허하는 난공불락에 가까운 도성을 뜻한다. 이 도성은 1절의 '하나님의 도성'에 대립하는 지상의 도성인데, 이 둘은 각각 의의 원리와 악의 원리 또는 영원성과 찰나성을 대표한다. 전자의 모델이 예루살렘이라면, 후자의 모델은 아마도 바벨론(혹은 니느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을 대항해서 스스로 높아진 이 교만한 도성은 심판의 그날에 극적인 반전을 경험하게 된다(25:12).
(이사야 26:6) 발이 그것을 밟으리니...걸음이리로다.
파멸의 무더기를 밟는 '빈궁한 자'(*아니)와 '곤핍한 자'(*달림)의 발걸음에서 한 때 교만했던 높은 성의 몰락이 확인된다(말4:3). 이전에 불멸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그성은 먼지로 화하였으나, 그로부터 억압을 당하면서도 하나님으로 반석을 삼고 그를 의지한 백성들은 살아 남았다.
(이사야 26:7)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앞절에 언급된 '빈궁한 자의 발과 곤핍한 자의 걸음'에서 저들이 발고 다니는 '길'에 대한 표상으로 자연스레 전환된다. 본문을 직역하면 '의인을 위한 길은 곧다'이다. '길'(*오라흐)은 성경에서 인생의 행로를 비유하는 말로 자주 쓰인다. 곧고 평탄한 길은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의로운 길이다(욥8:13;시1:6;5:8;27:11;119:105;잠1:19;3:6;4:26;5:6,21;11:5;15:19). '오라흐'는 본서에서만 여덟번 나오며(8절;2:3;3:12;26:7,8;30:11;33:8;40:14;41:3), 다른 예언 자료들에는 나오지 않는다(J.Jensen). 본서의 단일 저작설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이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이사야 26:8) 주께서 심판하시는 길에서 우리가 주를 기다렸사오며.
이는 하나님께서 심판관으로서 속히 임하시기를 고대한다는, 다시 말해서 의로운 심판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히 드러나기를 간절히 기다린다는 말이다. '기다림'은 그것이 기다리는 대상에 대한 지극한 열망의 표출이며 동시에 기다리는 자신의 철저한 겸비심의 고백인 한에서, 그리스도인의 전형적인 삶의 방식이라 할 수 있다(25:9;33:2;40:31;49:23;51:5;59:19;60:9;시25:3;37:9;호12:6;미7:7).
(이사야 26:9) 밤에 내 영혼이...주를 간절히 구하오리니.
1인칭 복수에서 1인칭 단수로의 전환은 시편에서 종종 발견된다(시44:5,6). '밤'(*라옐라)은 여기서 고난의 때, 묵상하기 좋은 때를 가리킨다고 보기도 하나(Delitzsch, Leupold), '아침'과 대조되는 시간의 의미로 쓰였다고 보아도 무방하겠다. 즉, 본문은 '밤이나 아침이나 어느 때에나 하나님을 사모합니다'이다(Alexander). 이는 비록 '아침'(*보케르)이란 단어가 명시적으로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간절히 구한다'는 뜻의 '솨하르'동사에 '(아침에)찾는다', '(일찍 일어나)구한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는데서 확인된다(Young).
(이사야 26:9) 이는 주께서 땅에서 심판하시는 때에...의를 배움이니이다.
선지자가 그처럼 열심을 다해서 하나님을 구한 데에는 그 백성들이 압제로부터 벗어나기를 바라는 소극적인 이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악한 자들이 심판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를 깨닫게 되기를 바라는 적극적인 이유도 담겨 있다(시78:34).
(이사야 26:10) 악인은 은총을 입을지라도...돌아보지 아니하는도다.
여기서 '악인'은 '세계의 거민'(9절)과 동의어이다(시9:17참고).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악인을 다루실 때 왜 심판의 과정을 취해야만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준다. 그의 설명은 그가 딛고 선 경험적 현실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왜냐하면 악인들은 좋게 해서는 도무지 의를 배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사야 26:11) 주의 손이 높이 들릴지라도...사르리이다.
'쳐진 손'이 무력함을 상징한다면(삼하4:1;렘50:43), '높이 들린 손'은 활동 중인 힘을 상징한다(삼하24:16). 악인들은 주의 높이들린 손, 즉 임박한 심판이 그들의 머리 위에 준비되어 있음에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한다. 선지자를 답답하게 만드는 것이 이것이었다. '백성을 위하시는 주의 열성'은 하나님 자신의 나라를 세우기 위한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며(9:7;37:32,Delitzsch), '불'은 그의 대적을 소멸하시는 하나님의 엄중한 복수와 진노를 비유한 낱말로서(신32:22;욥20:26;22:20) 그의 백성에 대한 '열성'과 병행구를 이룬다(9:7;37:32).
(이사야 26:12)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이루심이니이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의로운 자들에게 초래될 궁극적인 결과는 포괄적인 안녕과 행복을 함의하는 '평강'(*솰롬)이다. 이 평강은 과거로부터 미래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위하시는'하나님의 일관된 행동에 전적으로 근거한다(Delitzsch).
(이사야 26:13) 주 외에 다른 주들이 우리를 관할하였사오나.
이방 나라들의 압제에서 그 백성을 해방시켜주신 일이 하나님의 일로서 첫 번째로 거론된다. 세상의 주권자들이 이스라엘을 치리하는 동안 이스라엘의 참된 왕이신 여호와는 소외된 듯이 보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주권을 회복하시는 날에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백성들의 찬송소리는 다시 울려퍼지게 될 것이다. 여기서 '다른 주들'에 관해 사사 시대(Kissane)와 제국 시대(Delitzsch)를 막론하고 이스라엘을 무력으로 억누른 이방 군주들을 가리킨다는 주장(Gray)과, 포로가 되기 전에 저들이 섬긴 우상신들을 가리킨다는 주장(Alexander)이 대립되고 있다. 전자의 견해가 우세하다.
(이사야 26:14) 그들은 죽었은즉...일어나지 못할 것이니.
하나님의 일로서 두 번째로 거론된 것은 한 때 강력한 나라를 일구었던 세상 군왕들을 하나님께서 징벌하사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죽음의 심연으로 던지신다는 것이다. 본문을 직역하면 '죽은 자들(*메팀), 그들은 살지못하겠고, 망령들(*레파임), 그들은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이다. '레파임'에 대해서는 14:9 주석을 참조하라. 14:9-11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죽음이 인간의 헛된 교만을 비웃는 최후의 조롱꾼으로 등장한다.
(이사야 26:15) 주께서 이 나라를 더 크게 하셨고 이 나라를 더 크게 하셨나이다.
하나님의 일로서 세 번째로 거론된 것은 그가 이 나라를 더 크게 확장시켜 주셨다는 것이다. '나라를 더 크게 함'은 하나님의 축복의 결과로 인구가 번성하고 그에 따라 국토의 경계가 더욱 확장됨을 뜻한다(9:3;54:2,3;미7:11). 한편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가장 넓은 세력을 형성하였던 다윗과 솔로몬 시대를 회고하는 듯하다(Dillmann, Kissane).
(이사야 26:16) 그들이 환난 중에...주께 기도하였나이다.
선지자의 사고는 다시 현재로 되돌아온다. 하나님의 궁극적 승리를 믿는 신앙이 확실하다 할지라도 일상에서 겼는 경험적 현실 - '환난'과 '징벌'로 표현된 - 앞에서 신자들은 거듭거듭 심각한 무력감에 사로잡힐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전폭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그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기도밖에 없는 것이다(Oswalt).
(이사야 26:17) 잉태한 여인이...부르짖음같이.
이스라엘을 가위 누르는 현재의 어려움이, 부르짖음으로 극대화된 임산의 고통으로 비유되고 있다(13:8;21:3;42:14;호13:13;미4:10). 이런 극한 상황 속에서도 임산부가 견뎌내는 것은 오직 한 가지, 이 고통의 때가 지나면 소망했던 결과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이사야 26:18) 낳은 것 같아서.
그러나 그 지난(至難)한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거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허망함을 선지자는 '바람을 낳음과 같다'고 표현한다(41:29;전1:14). 아무것도 낳지 못하는 여인의 산고, 그것이 이스라엘의 배반적 현실이었다.
(이사야 26:18) 세계의 거민을 출산하지 못하였나이다.
본문은 크게 두 가지로 해석된다. (1)새로 태어나는 생명들을 떨어뜨리지 못하였다(즉, 생산하지 못하였다, Delitzsch). 이는 해산의 고통을 강조한 문맥에 더 적합한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 경우 '떨어진다'는 뜻의 '나팔'이 결코 해산의 뜻으로 쓰인 적이 없다는 사실이 약점으로 지적된다. 따라서 다음 해석을 취소한다. (2)이스라엘에 적대적인 세력들을 떨어뜨리지 못하였다(즉, 패배시키지 못하였다. Gray). 이 경우, 본문은 앞의 '땅에 구원을 베풀지 못하였고'와 평행을 이룬다.
(이사야 26:19) 주의 죽은 자들은...일어나리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실패가 하나님의 실패일 수 없으며, 그들의 헛됨이 하나님의 헛됨이 될 수 없다. 인생의 최대 비극인 죽음마저도 정복하시는 생명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계신다. 이 믿음이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침울한 절망의 애가가 부활의 환호로 돌변한다. 거듭되는 환난과 징벌에 눌려 사망의 그늘 가운데 누워있던 신실한 신자들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생명이 부어진다. 그리스도 안에서 먼저 죽은 신실한 성도들이 마지막날 부활의 영광에 그리스도와 더불어 참예할 것이다. 본문은 부활 교리를 가르쳐주는 구약의 몇 안되는 구절 중의 하나이다(25:8;겔37:1-14;호6:2).
(이사야 26:19)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내놓으리로다.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생명의 능력이 '이슬'로 비유된다(시133:3;잠19:12;호14:5). 비 한방울 내리지 않는 건기에 밤에 흡족히 내려 땅을 적시는 이슬은 팔레스틴 땅의 농작을 위하여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 불가결한 것이었다(창27:28;삼하1:21;왕상17:1;슥8:12). '빛난 이슬'(*탈 오로트)은 문자적으로는 '빛의 이슬'(Targum, Vulgate, Ewald, Grotius, Gesenius)이다. '빛'과 '이슬'은 공히 팔레스틴에서 생명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이사야 26:20) 내 백성아 갈지어다...잠깐 숨을지어다.
세상을 뒤엎은 대홍수로부터 노아와 그 가족들이 방주 속에 몸을 숨겼던 것처럼, 또한 애굽 땅을 뒤엎은 죽음의 천사로부터 히브리 백성들이 집으로 돌아와 몸을 숨긴 것처럼, 온 땅을 뒤엎게 될 하나님의 분노 앞에서 성도들에게 '밀실에 들어가 문을 닫고 잠깐 숨으라'는 권면이 주어진다. 밀실에 들어가서 그것도 부족해서 문을 닫고 숨으라는 말은 대환난 날에 성도가 취해야될 몸가짐을 언급하는 듯하다. 즉, 그날에 성도들은 세상과의 분주한 거래를 단절하고 하나님과의 은밀한 기도 시간을 가져야만 된다. 그러나 그 혹심한 심판의 순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이사야 26:21) 땅이 그 위에 잦았던 피를 드러내고.
그날에 땅은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한다. 즉, 그동안 말없이 들이삼켰던 무죄한 자들의 피를 땅이 일순간에 토해낸다. 땅을 붉게 물들였던 피가 복수를 호소하며 일제히 부르짖는다(창4:10;37:26;레17:13;욥16:18;시9:12;겔24:7,8;계6:10). 뒤따르는 구절은 순교자들의 호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앞절의 평행으로 이해된다(Gr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