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BIBLE/이사야

이사야29장 성경주석

홍페이지 2022. 6. 27.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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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29장 줄거리>

1. 유다에 내릴 징계가 예고됨

9. 징계의 원인

17. 징계 후의 받을 축복

 

<이사야 29장 개역개정>

1. 슬프다 아리엘이여 아리엘이여 다윗이 진 친 성읍이여 해마다 절기가 돌아오려니와

2. 내가 아리엘을 괴롭게 하리니 그가 슬퍼하고 애곡하며 내게 아리엘과 같이 되리라

3. 내가 너를 사면으로 둘러 진을 치며 너를 에워 대를 쌓아 너를 치리니

4. 네가 낮아져서 땅에서 말하며 네 말소리가 나직이 티끌에서 날 것이라 네 목소리가 신접한 자의 목소리 같이 땅에서 나며 네 말소리가 티끌에서 지껄이리라

5. 그럴지라도 네 대적의 무리는 세미한 티끌 같겠고 강포한 자의 무리는 날려 가는 겨 같으리니 그 일이 순식간에 갑자기 일어날 것이라

6.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레와 지진과 큰 소리와 회오리바람과 폭풍과 맹렬한 불꽃으로 그들을 징벌하실 것인즉

7. 아리엘을 치는 열방의 무리 곧 아리엘과 그 요새를 쳐서 그를 곤고하게 하는 모든 자는 꿈 같이, 밤의 환상 같이 되리니

8. 주린 자가 꿈에 먹었을지라도 깨면 그 속은 여전히 비고 목마른 자가 꿈에 마셨을지라도 깨면 곤비하며 그 속에 갈증이 있는 것 같이 시온 산을 치는 열방의 무리가 그와 같으리라

9. 너희는 놀라고 놀라라 너희는 맹인이 되고 맹인이 되라 그들의 취함이 포도주로 말미암음이 아니며 그들의 비틀거림이 독주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

10.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그가 선지자들과 너희의 지도자인 선견자들을 덮으셨음이라

11. 그러므로 모든 계시가 너희에게는 봉한 책의 말처럼 되었으니 그것을 글 아는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그가 대답하기를 그것이 봉해졌으니 나는 못 읽겠노라 할 것이요

12. 또 그 책을 글 모르는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그가 대답하기를 나는 글을 모른다 할 것이니라

13.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14. 그러므로 내가 이 백성 중에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 그들 중에서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려지리라

15. 자기의 계획을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의 일을 어두운 데에서 행하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보랴 누가 우리를 알랴 하니

16. 너희의 패역함이 심하도다 토기장이를 어찌 진흙 같이 여기겠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어찌 자기를 지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나를 짓지 아니하였다 하겠으며 빚음을 받은 물건이 자기를 빚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총명이 없다 하겠느냐

17. 오래지 아니하여 레바논이 기름진 밭으로 변하지 아니하겠으며 기름진 밭이 숲으로 여겨지지 아니하겠느냐

18. 그 날에 못 듣는 사람이 책의 말을 들을 것이며 어둡고 캄캄한 데에서 맹인의 눈이 볼 것이며

19. 겸손한 자에게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쁨이 더하겠고 사람 중 가난한 자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20. 이는 강포한 자가 소멸되었으며 오만한 자가 그쳤으며 죄악의 기회를 엿보던 자가 다 끊어졌음이라

21. 그들은 송사로 사람에게 죄를 씌우며 성문에서 판단하는 자를 올무로 잡듯 하며 헛된 일로 의인을 억울하게 하느니라

22. 그러므로 아브라함을 구속하신 여호와께서 야곱 족속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되 야곱이 이제는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겠고 그의 얼굴이 이제는 창백해지지 아니할 것이며

23. 그의 자손은 내 손이 그 가운데에서 행한 것을 볼 때에 내 이름을 거룩하다 하며 야곱의 거룩한 이를 거룩하다 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경외할 것이며

24. 마음이 혼미하던 자들도 총명하게 되며 원망하던 자들도 교훈을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이사야 29장 성경주석>

(이사야 29:1) 슬프다 아리엘이여.

 첫 번째 '화 있을진저'가 '교만한 면류관'(28:1)으로 시작했던 것처럼, 본장의 예언도 그 형식상의 유비에 의해 '아리엘'이라는 다소 모호하고 수수께끼 같은 이름으로 시작한다. 이 '아리엘'이 '다윗의 진친 성읍' 혹은 '절기가 돌아오려니와'란 말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유다의 성도 예루살렘을 가리킨다는 데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다만 그 단어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 학자들간에 의견의 차이를 보인다. 대표적인 두 가지 견해를 들면 다음과 같다. (1) 그것은 '하나님의 사자'를 가리킨다(Gesenius, Delitzsch, Ewald). 이는 유다를 '사자'라 호칭한 것(창49:9)과 왕의 보좌에 사자의 형상이 새겨진 것(왕상10:19,20), 그리고 동물의 왕 사자처럼 예루살렘이 결코 정복되지 않는 강력함을 지닌 성으로 인식되었다는 점에서 그 근거를 취한다. 그러나 이는 문맥에 어울리지 않는다. (2)그것은 '하나님의 번제단'을 가리킨다(겔43:15,16, Alexander). 이는 '절기'(1절)란 낱말과 2절 후반부의 의미와 잘 어울리므롤 많은 학자들에 의해 지지를 받는다.

(이사야 29:1) 해마다 절기가 돌아오려니와.

 더 나아가 다윗의 신성한 법궤를 이곳으로 옮긴 날로부터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중심적인 예배 처소가 되었다(삼하6:12-19). '연부년'은 '해마다'라는 뜻인데, 이곳에서 신성한 절기들이 자연의 순환 사이클처럼 아무 뜻도 없이 형식적이며 주기적으로 반복됨을 꼬집은 말이다.

(이사야 29:2) 그가...내게 아리엘과 같이 되리라.

 '희생 제물을 드리며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자랑을 삼는 네가 바로 아리엘과 같이 될 것이다.' 즉, 희생 제사의 피로 둘려있고 그 위에 놓인 모든 것을 불로 태우는 그러한 모습으로 예루살렘이 장차 변할 것이다(Oswalt). 임박한 재앙이 예루살렘에 몰고 올 고통은 '슬픔과 애통'(*타아니야 와아니야)이다. 이 두 낱말은 모두 '신음하다', '괴로워하다'는 뜻의 '아나'동사에서 파생한 방계 명사들이다(애2:5).

(이사야 29:3) 내가...너를 치리니.

 한때 다윗이 진을 쳤던 그 도성(1절)을 이제 여호와께서 공격하기 위해 진을 치신다. 이 공격은 앗수르인들에 의해 수행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내가'라는 말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분명히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에 속하는 것이다. 고대의 전쟁에 대하여는 신20:20;왕하25:1-4;겔4:2;21:22등을 참고하라.

(이사야 29:4) 네가 낮아져서 땅에서 말하며...티끌에서 지껄이리라.

 앞에서 언급된 장기간의 포위의 결과로 그들이 극도로 쇠약해질 것을 말하는 것이다. 선지자는 이것을 '땅에서 말하는 소리'와 '티끌에서 나는 소리'로 표현한다. 언급된 '땅'(*에레츠)과 '티끌'(*아파르)은 더 이상 낮아질 데가 없는 수치의 극한 혹은 주검의 세계(N.J.Tromp, J.Watts)를 가리킨다.

(이사야 29:5) 네 대적의 무리...강포한 자의 무리.

 문자적으로는 '너의 이방인들의 무리'(*하몬 자라이크)...잔혹한 자들의 무리(*하몬아리침)'타이다. '이방인'에 대하여는 1:72;5:5, '잔혹한 자'에 대하여는 13:11을 참고하라. '티끌'과 '겨'는 '나약한 것' 혹은 '무력한 존재'를 가리키는 비유적 표현이다(4절;5:24;17:13;41:15;단2:35;호13:3;습2:2).

(이사야 29:6) 우레와 지진과...맹렬한 불꽃으로.

 나열된 여러 현상들은 하나님의 현현을 나타내는 고전적인 표현에 속한다(출19:16-19;왕상19:11-13;겔20:47,48). 여기서 '큰 소리'(*콜 가돌)는 천둥과 지진이 일어날 때 수반되는 굉음을 가리킨다. '맹렬한 불꽃'은 문자적으로는 '삼켜버리는 불의 광휘'(라하브 에쉬 오켈라)인데, 이는 회오리 바람과 폭풍이 불 때 동반되는 벼락불을 가리킨다.

(이사야 29:7,8) 앗수르 군대에 대한 하나님의 기적적인 개입과 관련해 그 결과가 꿈의 언어로 제시된다. 대적의 모습이 7절에서는 '꿈'에 비견되고, 8절에서는 '꿈꾸는 자'에 비교된다.

(이사야 29:8) 주린 자가 꿈에 먹었을지라도...갈증이 있는 것 같이.

 '속'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네페쉬'는 '인간 자신'을 나타내는 완곡 어법(Grotius)으로 쓰이나, 여기서는 '육체적 삶의 근원으로서 주림과 목마름을 느끼는 영혼'(Delitzsch)의 의미로 쓰였다기보다는 '욕구'라는 또 다른 의미로 쓰였다고 봄이 문맥에 더 잘 어울린다(Alexander). 즉 앗수르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품고 있던 그 욕구는 '전혀 채워지지 않았으며'(*레카), 따라서 '더욱 짙은 갈증만을 남길 뿐이다'(*쇼케카).

(이사야 29:9) 너희는 놀라고 놀라라 너희는 맹인이 되고 맹인이 되라.

 5-8절에 약속된 구원을 경험하기 전에 이 백성에게 하나님의 징벌이 임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제시된다(9-16절). 본문을 직역하면 '너희는 머뭇거려라'(*히트마흐메후). 너희는 놀라라(*테마후). 너희는 즐겨라(*히쉬타아쉬우). 너희는 소경이 되어라(*쇼우)'이다(원문-Gesenius의 해석). 각각의 경우 두 번째 나오는 명령문은 앞에 나온 말의 결과로서 주어진 것이다. 즉 '믿지 말고 머뭇거려 보아라. (그 결과로)너는 더욱 놀라워하게 될 것이다. 연락 속에 빠져 즐겨 보아라. (그 결과로)그것이 너로 하여금 더욱 눈이 멀게 할 것이다'(Alexander).

(이사야 29:10) 대저 여호와께서...선견자들을 덮으셨음이라.

 백성들의 술 취함(소경됨)의 원인이 하나님께로 소급된다:'깊은 잠의 영을 부어주신 분은 바로 여호와시다.' 그러나 이 말이 그들의 책임을 면제하는 것은 아니다. 6:9,10 주석을 참고

(이사야 29:10)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덮으셨음이라.

 눈을 가리고 머리를 덮음은 전혀 볼 수 없게끔 하려는 것이다. 선지자 혹은 선견자는 백성들의 '눈'과 '머리', 즉 지도자로서 올바로 보고, 바르게 생각하여 백성들을 진리로 인도해야 할 막중한 책임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이들 스스로가 눈이 멀고, 소경이 되었으니, 누가 누구를 인도할 수 있겠는가(마15:14)!

(이사야 29:11) 모든 계시가...봉한 책의 말처럼.

 '모든 묵시'(*하주트 하콜)는 하나님께서 참된 예언자들을 통해 계시해주신 거룩한 진리의 말씀을 말하나(Delitzsch). 이 말씀들은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책'(*하세페르)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것이 이 백성들에게는 굳게 닫혀서 도무지 열 수 없는 봉함된 책과 같을 것이다. '책'이라 번역된 '세페르'는 '긁다', '새기다'는 뜻의 '사파르'동사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기록하는 것', '기록된 것', '문서', '편지'를 뜻한다. 기록된 문서는 비밀을 보장하기 위한 조처로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봉인되었다(8:16참고).

(이사야 29:11,12) 아는 자...모르는 자.

 '유식한 자'는 문자적으로는 '쓰는 것을 아는 사람'(*요데아 하세페르)이니, 곧 글을 쓰고 읽을 줄 아는 사람(지도층 인사)을 가리킨다. 이들은 외적인 지식은 갖추었으나 영적인 통찰력은 지니지 못하였으므로 계시의 말씀을 깨달을 수 없었다(6:9참고). 이와 반대로 '무식한 자'(*-로-야다 세페르)는 '쓰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니, 곧 일반 백성을 가리킨다(요7:15).

(이사야 29:13)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공경하나.

 병행하는 두 말, '가까이하다'(*나가쉬)와 '존경하다'(*카바드)는 공적인 예배 행위를 함의하는 낱말들이다. 당시 히스기야 왕주도하에 남왕국 유다에서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여 전국적인 종교 정화작업이 진행되었다. 이교도의 관행들과 우상들은 여지없이 척결되었고 모세 때의 고유한 예배 의식이 부활되었다(왕하18:4).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어디까지나 '위로부터'일방적으로 하달되어진 것이었기 때문에 백성들의 내면까지 바꾸는 데는 이르지 못했다. 이를테면 참종교의 모양은 갖추었으나 참종교의 핵심이라고는 할 수 있는 '마음'(*레바브)와 '경외심(*이르아)은 갖추지 못했다. 하나님께서는 이 같은 입술의 종교를 혐오하신다. 신약에서 이 말은 입술과 혀로 그들의 경건을 자랑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적영되었다(마15:7,8).

(이사야 29:14) 지혜자의 지혜가...가려지리라.

 백성들이 그토록 의지하는 지도자들의 지혜와 총명을 제거해버린다는 말이다. 그 결과, 그들은 다가올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지 전혀 알지 못하게 될 것이다(5:21).

(이사야 29:15) 자기의 계획을...깊이 숨기려하는 자.

 이 백성이 징벌받을 수 밖에 없는 세 번째 이유가 제시된다. 그것은 애굽과 동맹을 체결하려는 자들의 음모 때문이다. 선지자는 오래 전부터 이 일을 탄핵해왔다(20:5-6). 따라서 그들은 선지자 몰래 은밀하게 이 일을 도모하였던 것이다. 악인은 빛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 그의 지배가 미치지 않는 어둠속으로 도피하고 싶어한다(시64:2-6;94:7;139:12;요3:19,20). 아담과 하와의 범죄 아래 인류가 계속적으로 시도해온 일이 이것이었으며(창3:8-10), 특히 하나님을 안다고 스스로 공언하는 백성의 지도자들이 하고 있는 일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그들의 영적 무지를 증명해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사야 29:16) 너희의 패역함이 심하도다.

 하나님으로부터 숨을 수 있다고 자신하는 저들의 생각의 이면에는 하나님의 전지(전능)성을 부정하는 불신앙이 전제되어 있다. 그들은 멀리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그 지으신 모든 만물을 다 관찰하시지는 못하리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그 만드신 피조물과 동일한 수준에 병렬시키는 태도이다. 선지자는 저들의 이 같은 태도를 한마디로 '패리함'(*하페카)이라 규정한다. 이 말은 '상하가 뒤바뀌어 전도되다', '가치가 전도되다'는 뜻이다.

(이사야 29:16) 토기장이를 어찌 진흙같이 여기겠느냐.

 여호와를 토기장이로 비유한 다른 예에 대하여는 45:9;64:8;욥10:9;렘18:4-6 등을 보라.

(이사야 29:17) 레바논이...여겨지지 아니하겠느냐.

 부정 의문문은 긍정의 가장 강력한 형식 중 하나이다. 본서의 여러 곳에서 '레바본의 삼림'은 권세자들의 표상으로(2:13;10:34;33:9;35:2;60:30), 또 그 삼림을 자르는 것은 비천하게 됨의 상징으로(10:34;37:24) 사용되었다. 본문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 '삼림은 경작된 평원이 될 것이며, 반면에 경작된 평원은 삼림이 될 것이다.' 즉, 권세자들은 낮아질 것이요 반대로 억압받던 백성들은 높아질 것이다. 한편, 본절 이하로부터 24절까지는 메시야 시대에 대한 예언으로 이해된다.

(이사야 29:18) 못 듣는 사람이...맹인의 눈이 볼 것이며.

 이는 분명 귀가 뚫리고 눈이 열리는 치유의 역사가 있을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신체적 치유만 가리키지는 않는다. 그들이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한 것은 바로 '책의 말'(*디브레-세페르), 곧 선지자를 통해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11,12절). 이제 그토록 단단하게 굳었던 백성들의 마음이 부드럽게 변화될 날이 오리라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다.

(이사야 29:19) 겸손한 자에게...즐거워하리니.

 이처럼 변화된 새로운 미래의 상속자들은 '겸손한 자'(*아나윔)와 '빈핍한 자'(에브요님)이다(11:4;14:30,32;암2:6-8). 이들은 물질적으로 가난하고 사회적으로 천대받지만, 영적으로 경건하다. 이들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힘이 없으므로 오직 여호와의 손에 자신들의 송사를 맡긴다(21절).

(이사야 29:20) 강포한 자가...다 끊어졌음이라.

 반면에 지금 웃는 자들, 곧 '강포한 자'(*아리츠)와 '경만한 자(*레츠)에게는 정반대의 운명이 예정되어 있다. 즉 그들은 '끝장나며'(*아페스), '소멸된다'(*칼라). 그들은 힘없는 백성을 착취하며(13:11;25:3-5;29:5;49:25) 진리를 조롱하고 가치를 전도시키며 공동체의 정신을 부정하는 사람들이다(28:14;잠1:22;13:1).

(이사야 29:21) 그들은...억울하게 하느니라.

 첫째, 그들은 거짓 증거로써 무고한 사람을 죄인으로 조작한다. 둘째, 그들은 시시비비를 가리는 재판관을 올가미를 씌워 넘어뜨린다(암5:10). 셋째, 그들은 의인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정당한 권리를 박탈한다(10:2;출23:6;암5:12).

(이사야 29:22) 아브라함을 구속하신 여호와께서...말씀하시되.

 본문을 직역하면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야곱의 집에게, 아브라함을 구속하신'이다. 이 때 문법적으로만 해석하자면 아브라함을 구속하신 자가 야곱이 되어버린다. 이를 피하기 위해 현대의 많은 학자들은 본문을 다음과 같이 수정해서 읽는다 : '...야곱의 집의 하나님, 아브라함을 구속하신'(Lowenthal, Lowth, Lluzzatto). '야곱 족속', 즉 '야곱의 집'은 그 조상 아브라함으로부터 기원한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을 가리킨다. 그 옛날 아브라함이 우상 숭배에 빠졌던 사람들로부터 구별되어 하나님의 백성의 조상이 되었듯이 이제 여호와를 저버린 많은 사람들로부터 구별된 남은 자들도 새로운 공동체의 바탕이 된다(Delitzsch).

(이사야 29:23) 내 이름을 거룩하다 하며...경외할 것이며.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구원의 역사를 보게 될 때, 그들이 보일 반응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다 하는 것'(*히크디슈)과 그를 '경외하는 것'(*야아리추)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함은 그의 본성을 참되게 인식하는 것이며 피조 세계와 구별된 유일무이한 절대자로서 그의 주권을 온 세상에 널리 선포, 찬양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려움'(경외)은 여호와의 거룩하심을 바르게 인식함에서 비롯된다(8:13;마6:9).

(이사야 29:24) 마음이 혼미하던 자들도...교훈을 받으리라.

 새로운 이스라엘을 특징짓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열심과 깨달음이다. 선지자는 미래에 약속된 변화상을 좀더 충격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극적인 반전 기법을 사용한다 : '영이 방황하던 자, 곧 이전에 소경 같고 귀머거리 같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도무지 알지 못하던 자들이 깨닫게 될 것이다. 또한 불평하던 자, 곧 이전에 완악하고 패역하여 하나님의 교훈을 거부하던 자들이 지식을 배우게 될 것이다'(원문), 14절과의 대조에 유의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