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49장 성경주석
<이사야 49장 줄거리>
1. 구속 주로 부르심을 받은 메시야
5. 이스라엘에 구원을 베푸실 메시야
8. 은혜의 때와 구원의 날
14. 이스라엘의 번영
24. 구원해 주시는 여호와
<이사야 49장 개역개정>
1. 섬들아 내게 들으라 먼 곳 백성들아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태에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 어머니의 복중에서부터 내 이름을 기억하셨으며
2. 내 입을 날카로운 칼 같이 만드시고 나를 그의 손 그늘에 숨기시며 나를 갈고 닦은 화살로 만드사 그의 화살통에 감추시고
3.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나의 종이요 내 영광을 네 속에 나타낼 이스라엘이라 하셨느니라
4. 그러나 나는 말하기를 내가 헛되이 수고하였으며 무익하게 공연히 내 힘을 다하였다 하였도다 참으로 나에 대한 판단이 여호와께 있고 나의 보응이 나의 하나님께 있느니라
5.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나니 그는 태에서부터 나를 그의 종으로 지으신 이시요 야곱을 그에게로 돌아오게 하시는 이시니 이스라엘이 그에게로 모이는도다 그러므로 내가 여호와 보시기에 영화롭게 되었으며 나의 하나님은 나의 힘이 되셨도다
6. 그가 이르시되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7. 이스라엘의 구속자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신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는 자, 백성에게 미움을 받는 자, 관원들에게 종이 된 자에게 이같이 이르시되 왕들이 보고 일어서며 고관들이 경배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신실하신 여호와 그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8.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를 백성의 언약으로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에게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하게 하리라
9. 내가 잡혀 있는 자에게 이르기를 나오라 하며 흑암에 있는 자에게 나타나라 하리라 그들이 길에서 먹겠고 모든 헐벗은 산에도 그들의 풀밭이 있을 것인즉
10. 그들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며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이가 그들을 이끌되 샘물 근원으로 인도할 것임이라
11. 내가 나의 모든 산을 길로 삼고 나의 대로를 돋우리니
12. 어떤 사람은 먼 곳에서, 어떤 사람은 북쪽과 서쪽에서, 어떤 사람은 시님 땅에서 오리라
13.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은즉 그의 고난 당한 자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14.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16.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17. 네 자녀들은 빨리 걸으며 너를 헐며 너를 황폐하게 하던 자들은 너를 떠나가리라
18.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그들이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네가 반드시 그 모든 무리를 장식처럼 몸에 차며 그것을 띠기를 신부처럼 할 것이라
19. 이는 네 황폐하고 적막한 곳들과 네 파멸을 당하였던 땅이 이제는 주민이 많아 좁게 될 것이며 너를 삼켰던 자들이 멀리 떠날 것이니라
20. 자식을 잃었을 때에 낳은 자녀가 후일에 네 귀에 말하기를 이곳이 내게 좁으니 넓혀서 내가 거주하게 하라 하리니
21. 그 때에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누가 나를 위하여 이들을 낳았는고 나는 자녀를 잃고 외로워졌으며 사로잡혀 유리하였거늘 이들을 누가 양육하였는고 나는 홀로 남았거늘 이들은 어디서 생겼는고 하리라
22. 주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내가 뭇 나라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민족들을 향하여 나의 기치를 세울 것이라 그들이 네 아들들을 품에 안고 네 딸들을 어깨에 메고 올 것이며
23. 왕들은 네 양부가 되며 왕비들은 네 유모가 될 것이며 그들이 얼굴을 땅에 대고 네게 절하고 네 발의 티끌을 핥을 것이니 네가 나를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24. 용사가 빼앗은 것을 어떻게 도로 빼앗으며 승리자에게 사로잡힌 자를 어떻게 건져낼 수 있으랴
25.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용사의 포로도 빼앗을 것이요 두려운 자의 빼앗은 것도 건져낼 것이니 이는 내가 너를 대적하는 자를 대적하고 네 자녀를 내가 구원할 것임이라
26. 내가 너를 억압하는 자들에게 자기의 살을 먹게 하며 새 술에 취함 같이 자기의 피에 취하게 하리니 모든 육체가 나 여호와는 네 구원자요 네 구속자요 야곱의 전능자인 줄 알리라
<이사야 49장 성경주석>
(이사야 49:1) 여호와께서...기억하셨으며.
본문의 화자를 누구로 보느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뉜다. 먼저 이스라엘 혹은 고레스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 그 근거는 본절에 나오는 '부르셨고', '이름' 따위의 표현이 분명히 이스라엘이나 고레스를 가리키는 43:1; 45:3과 연관성을 나타낸다는 점이다(Whybray). 반면에 메시야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 그 근거로는 43:1;45:3과는 달리 본 문맥이 종으로 오신 메시야를 요청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들고 있다(Barnes,, Fausset, Clark). 우리는 후자의 견해를 따르고자 한다. 신약은 예수께서 그의 출생 전부터 메시야의 사역을 부여받았을 뿐 아니라 출생 전 하나님으로부터 그 이름을 부여받았던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마1:21; 눅1:31). 42장 이후 일반적인 용어들로 그 특성과 사역이 암시되었던 메시야는 본장에서부터는 하나의 인격체로서 그가 감당할 사역을 선포하고 있는데, 그 선포의 내용은 이스라엘을 넘어 이방 나라에도 구원 사역이 확장된다는 것이다.
(이사야 49:2) 내 입을 날카로운 칼 같이 만드시고.
성경에서는 하나님 말씀의 설득력과 능력을 나타낼 때 '찌르는 것', '검' 따위에 비유한다(전12:11;히4:12). 한편, 계1:16;19:15 등에서 요한은 본문을 인용하여 구세주를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는 분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사야 49:2) 나를 그의 손 그늘에 숨기시며.
바로 앞 구절과의 연관성 속에서 이해할 때 '나'는 칼과 같은 능력있는 말씀으로 볼 수 있겠다. 하나님은 망토에 칼을 숨기듯 메시야의 칼과 같은 말씀을 숨기셨다가 적절한 때 그 말씀을 내실 것이다(Hengstenberg).
(이사야 49:3) 너는 나의 종이요 내 영광을 네 속에 나타낼 이스라엘이라.
여기 '종'이 누구냐라는 질문에 대한 견해는 다양하다. (1)여호와의 종으로서의 '유대인'으로 보는 견해인데(41:8)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이라는 선포에 근거를 둔다(44:23, Rosenmuller). 이 견해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이 종에 대한 언급으로 나오는 후속절의 내용이 결코 유대인에게 적용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2)본서 저자인 이사야로 보는 견해이다(Grotius, Dathe). 이 견해는 '이스라엘'이란 호칭을 이사야에게 붙여줄 근거가 희박하다는 점에서 쉽게 반박된다. (3)메시야로 보는 견해이다. 사실 후속절들에 나오는 이 인물에 대한 묘사와 신약에 나오는 설명(마13:57;눅2:32)은 메시야와 일치하고 있는 특히 7절에 열방의 왕들이 그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언급은 메시야 외의 다른 인물을 적용시키기 힘들다는 점을 확정짓는다. 문제는 '메시야'에게 '이스라엘'이란 호칭이 붙여진 점인데 한 개인인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란 민족의 호칭이 부여되었듯이, 사탄과의 싸움에서의 승리를 통해 새로운 영적 이스라엘, 곧 교회의 머리가 되신 메시야에게 영적 의미의 이스라엘이란 호칭을 부여하는 것은 충분히 납득될 만 하다 하겠다.
(이사야 49:4) 내가 헛되이 수고하였으며.
메시야 당시 팔레스틴 땅의 인구수에 비해 결국 그의 사역을 통해 믿게 된 자의 수가 너무 적을 사실을 내다보는 언급으로 이해된다. 성경은 메시야의 부활을 믿는 수준에 이르렀던 자의 수가 대략 500여명에 불과했던 것으로 추측케 한다(고전15:6).
(이사야 49:4) 나에 대한 판단이...하나님께 있느니라.
'나의 심판이 여호와와 함께 있고 나의 상급이 하나님과 함께 있다'가 원문 직역이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은 메시야의 사역을 공의로 판단하시고 상급을 내리신다는 의미인데, 이것은 메시야의 수고와 고통이 결국에는 목적할 만큼의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그는 결코 낙심하거나 부끄러움을당하지 않을 것이다(42:4;50:7-9). 메시야의 고난과 십자가 사역은 실패하지 않았다. 그의 사역을 통하여 얻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게 되었다(53:10-12;벧전2:23).
(이사야 49:5) 야곱을 그에게로 돌아오게...모이는도다.
양치기가 그의 흩어진 양들을 혹은 암탉이 그의 병아리들을 다시 모으는 장면에서 따온 비유이다 :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로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마23:37). 메시야 예수께서 땅에 오신 목적 중의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시기 위함이었다.
(이사야 49:6)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이르게 하리라.
혈통적 이스라엘을 회개시키는 일은 메시야가 궁극적으로 이루실 과업에 비해서는 너무 작은 일이라는 뜻이다. 이스라엘의 거듭된 반역으로 한 혈통적 민족으로서의 이스라엘의 구원은 막을 내렸고 이제 그 사역은 이스라엘을 포함한 온 세계를 대상으로 하되 메시야를 구세주로 믿는 개개인들을 받아들이는 식으로 구우너 사역은 이어질 것이다.
(이사야 49:7)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는 자.
종으로 오실 메시야의 특징을 한마디로 잘 요약하고 있는 구절인데, 좀더 자세한 묘사는 53장에 나온다.
(이사야 49:7) 왕들이 보고 일어서며.
메시야를 통해 이루어질 하나님 약속의 성취를 보고 모든 이방 권세자들이 그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을 가리킨다. 종말롡거 성격을 지닌 표현이다.
(이사야 49:8)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갑자기 시제가 완료형이 되었다. 메시야께서 죄인들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장면이 선행되어 있음을 짐작케 하는 표현이다. 은혜를 구하는 장면이란 다름 아닌 메시야의 대속적 죽음을 가리킨다. 메시야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근거를 마련하셨다. 이와 같은 메시야의 대속 사역을 하나님이 받으시고 은혜를 베푸실것을 확신하는 의미에서 저자는 완료형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사야 49:9) 잡혀 있는 자.
영적 우매에 사로잡혀 있는 자를 가리킨다. 메시야께서 대속적 죽음을 죽으시고 인간의 죄를 속하신 1차적 이유는 영적 우매에 사로잡혀 있던 자들을 해방시키기 위함이었다(42:7).
(이사야 49:9) 길에서 먹겠고...풀밭이 있을 것인즉.
여기 '길'이란 광야를, '자산'이란 나무, 풀 한 포기 없는 민둥산을 각각 가리키는데, 그곳에 푸른 초장이 있다는 묘사는 후속절에 나오는 그 양떼를 먹이시는 목자되신 메시야의 이미지와 조화를 이룬다. 비록 메마른 광야를 다닐지라도 참목자이신 그리스도가 있으면 그 양떼들은 목마르거나 굶주리지 않는다는 영적 의미가 숨어있다.
(이사야 49:10)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니.
이것은 사막을 여행하던 대상이 쉴만한 그늘이나 수풀을 만나게 되는 것을 연상케 한다(4:6; 14:3; 25:4; 32:2). 목자되신 메시야를 통해 부여되는 보호, 쉼, 기쁨 등을 가리키는데, 신약에서도 동일한 이미지가 나온다 :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계7:16).
(이사야 49:11) 모든 산을 길로 삼고.
여기 '산'은 장애물을 상징하는 바, 본문은 그 장애물을 제거한다는 의미이다. 혹자는 여기 '산'을 복음 전파를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역사적으로 로마라는 한 나라에 복속되었던 애굽, 시리아와 같은 큰 나라들로 보기도 한다(Vitringa).
(이사야 49:12) 시님.
성경에 한번만 등장하는 용어이므로 이곳이 정확히 어딘지를 규명하기란 불가능하다. 70인역(LXX)은 '페르시아'로, 갈대아역은 '남부'로, 또 다른 학자는 '팔레스틴의 남부'로 각 각 보고있다. 특이할 만한 견해는 오늘날의 '중국'으로 보는 견해인데 이 견해는 당시 아라비아나 시리아 사람들에 의해 오늘날의 중국은 '시님'과 그 음역이 비슷한 '신', '친', '치니'등으로 불리웠다는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Gesenius). 이렇게 견해가 엇갈리지만 분명한 것은 이곳이 팔레스틴으로부터 먼 곳이라는 사실이다. 이방에 흩어졌던 이스라엘 백성 혹은 이방인이 메시야의 복음을 듣고 영적 이스라엘, 곧 교회의 구성원으로 소속될 것이다.
(이사야 49:13) 하늘이여 노래하라...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은즉.
이것은 하나님께서 무생물인 자연을 그의 성가대로 부르신 이유이다. 그런데 여기 '위로'란 문자 그대로 억울하거나 힘든 경험을 한 사람에게 그 마음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서 베푸는 정도의 선한 말이나 행동이 아니다. 본서의 특징은 동일한 사상을 계속 반복 심화시킨다는 점인데, 이곳과 유사한 사상을 피력하고 있는 44:21-23에 의하면 '위로'란 죄사함이다. 또 본서는 '의'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하고 있는데, 본서에서 '의'란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는 그 무엇이다. 그런데 본서는 동시에 그 '의'가 메시야의 대속적 죽음을 통하여 만족될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런 맥락을 고려할 때 여기 '위로'란 메시야의 대속적 죽음을 통한 죄인들의 죄사함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이 놀라운 사실 때문에 자연까지도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것을 본문은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께서 죄인인 그 백성을 메시야를 통ㄷ하여 구속하시는 근거는 그의 언약이다. '그 백성'이 언약적 용어라는 사실이 그것을 뒷받침한다.
(이사야 49:14) 시온.
이스라엘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포로지에서의 이스라엘 백성이 마치 하나님이 그들을 그곳에 영원히 버려두시고자 한 것처럼 불평할 사실이 기록되고 있다. 본서이 집필 시점은 포로로 잡혀가기 100여년 전인데, 그 성취의 확실성을 강조하기 위해 완료형이 사용되었다.
(이사야 49:15)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그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보다 훨씬 승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표현은, 없는 사실을 일부러 가정한 것이 아니다. 인륜이 땅에 떨어지는 오늘 날의 세태에서도 가끔 볼 수 있거니와, 당시 이방 부모들 가운데는 형편상 그의 어린 자녀를 버려서 죽어가게 하는 자들이 있었다고 한다(롬1:31, Barnes).
(이사야 49:16) 손바닥에 새겼고.
손바닥은 자주 들여다볼 수 있게끔 가까이에 있는 것이란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사야 49:16)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이 표현도 계속 시선을 떼지 않겠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결국 본절은, 하나님이 이스라엘로부터 멀리 계시거나 무관심하지 않다는 사실을 밝힌다.
(이사야 49:17) 네 자녀들은 빨리 걸으며.
원문 직역은 '네 자녀들은 서두를 것이다'이다. 무엇을 하기 위해 서두르느냐를 알아내는 것이 중요한데 여기 '자녀들'로 번역된 '바나이크'는 '너의 아들들'로 또는 '너의 건축자들'(70인역)로 번역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미루어 볼 때, 서두르며 하는 일이란 건축에 관한 것이라는 암시를 추측케 한다. 그렇다면 본 구절은 포로 이스라엘이 그 무너진 성벽과 성전을 수축하기 위하여 서둘러 귀환할 사실에 대한 암시로 볼 수 있다.
(이사야 49:18) 내가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원문 직역은 '살아있는 내가 말하노니'이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맹세의 중요한 한형태인데, 이것은 이 맹세에 따르는 예언이 반드시 성취될 것에 대한 엄중한 확신을 내포한다(렘22:24;겔5:11; 14:16,18,20; 16:48).
(이사야 49:18) 네가 반드시...신부처럼 할 것이라.
성경에서 시온은 흔히 신부에, 개심자들은 신부의 장식품에 각각 비유되고 있다(62:3; 말3:17). 여기서 시온의 자녀들이란 1차적으로 포로 귀환할 이스라엘 백성을, 2차적으로는 그리스도에게로 개심할 영적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킨다. 이 후자의 이스라엘은 이방인의 완전한 회심을 이루는 수단이 될 것이다(미5:7,8; 롬11:12-15).
(이사야 49:19) 주민이 많아 좁게 될 것이며.
1차적으로는 귀환할 백성으로 인해 그 땅이 붐비게 될 것을 가리키나, 영적으로는 하나님 나라의 구성원이 될 진정한 개심자들이 무수히 많을 것에 대한 암시이기도 하다. 본 암시는 아브라함에게 처음으로 주셨다(창12:1-3;13:14-17 등).
(이사야 49:20) 자식을 잃었을 때에 낳은 자녀.
원문 직역은 '너희의 사별의 아들들'이다. 이는 남편과 사별한 사실보다는 자녀와 사별한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본문은 1차적으로 전쟁과 기근으로 말미암아 많은 자녀들을 잃어버린 예루살렘이 이제는 각처에서 돌아온 백성들로 크게 붐비게 될 것을 예언하는 말이다(Whybray). 그리고 영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 덕분에 믿음을 지니게 될 성도들에 대한 암시로도 이해된다.
(이사야 49:21) 누가...생겼는고.
이것은 1차적으로는 예기치 못한 회복을 목도한 시온의 즐거운 비명이며, 2차적으로는 영적 이스라엘의 행렬이 이방 각처에서 교회로 이어질 사실에 대한 암시이다. 이러한 사실에 따른 탄성, 비명은 행 10:45에서 가장 먼저 성취되었다 :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Fausset).
(이사야 49:22) 뭇 나라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손을 쳐든다는 것은 환영의 표시이다. 하나님은 이방인이 메시야를 받아들이는 복된 대열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그들을 부르고 환영하신다는 것이다(11:11).
(이사야 49:22) 그들이 네 아들들을...올 것이며.
어느정도 자란 아이는 어깨에 올려 놓고 아주 갓난 아이는 가슴에 안은 모습을 연상케 하는 이 표현은, 이방인들이 혈통적 이스라엘과 함께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에 구성원으로 가입할 것을 암시하고있다.
이사야 49:23 본절의 이미지들은 보호, 복종 등을 그리고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교회가 땅 위의 권세잡은 자들에 의해 보호받고 또 그들을 복속시킬 것을 가리키는 것 같다. 일례로, 이는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공인된 사실이나 기독교의 영향력이 로마 전체에 미쳤던 사실은 생각하면 이해에 도움이 되겠다.
(이사야 49:24) 용사가...있으랴.
바로 뒤에 강한 긍정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된 부정의 문구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의 포로된 백성을 해방시킬 뿐 아니라 나아가 신약 교회 시대에 핍박 받는 그의 성도들을 핍박으로부터 보호하실 것에 대한 강한 암시이다(Fausset, Clark).
(이사야 49:25) 대적하고...구원할 것임이라.
문자적인 뜻은 '싸워서...구원할 것이다'이다(54:17). 전쟁을 연상케 하는 표현이다. 그런데 세상 군왕들과는 달리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무기는 초라하기 짝이 없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 바로 그것이었다. 그 무력해 보이는, 그러나 진정 강한 그 무기를 가지고 하나님은 그의 택한 백성들을 구원하셨다.
(이사야 49:26) 자기의 살을 먹게 하며...자기의 피에 취하게 하리니.
적의 자중지난을 암시하는 말이다. 하나님의 대적은 서로 치고 받아 스스로 멸망할 것이다(계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