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5. 26. 13:23ㆍ구약 BIBLE/창세기
<창세기 20장 줄거리>
1. 아비멜렉을 속인 아브라함
8. 아비멜렉의 책망
11. 아브라함의 이유
14. 아비멜렉의 보상
17. 아브라함의 기도
<창세기 20장 개역개정>
1. 아브라함이 거기서 네게브 땅으로 옮겨가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거류하며
2. 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갔더니
3.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데려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임이라
4. 아비멜렉이 그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그가 대답하되 주여 주께서 의로운 백성도 멸하시나이까
5. 그가 나에게 이는 내 누이라고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 여인도 그는 내 오라비라 하였사오니 나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하였나이다
6. 하나님이 꿈에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아니하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함이 이 때문이니라
7.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반드시 죽을 줄 알지니라
8. 아비멜렉이 그 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모든 종들을 불러 그 모든 일을 말하여 들려 주니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였더라
9.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불러서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느냐 내가 무슨 죄를 네게 범하였기에 네가 나와 내 나라가 큰 죄에 빠질 뻔하게 하였느냐 네가 합당하지 아니한 일을 내게 행하였도다 하고
10. 아비멜렉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뜻으로 이렇게 하였느냐
11. 아브라함이 이르되 이 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
12. 또 그는 정말로 나의 이복 누이로서 내 아내가 되었음이니라
13. 하나님이 나를 내 아버지의 집을 떠나 두루 다니게 하실 때에 내가 아내에게 말하기를 이 후로 우리의 가는 곳마다 그대는 나를 그대의 오라비라 하라 이것이 그대가 내게 베풀 은혜라 하였었노라
14. 아비멜렉이 양과 소와 종들을 이끌어 아브라함에게 주고 그의 아내 사라도 그에게 돌려보내고
15.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내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네가 보기에 좋은 대로 거주하라 하고
16. 사라에게 이르되 내가 은 천 개를 네 오라비에게 주어서 그것으로 너와 함께 한 여러 사람 앞에서 네 수치를 가리게 하였노니 네 일이 다 해결되었느니라
17.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출산하게 하셨으니
18. 여호와께서 이왕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일로 아비멜렉의 집의 모든 태를 닫으셨음이더라
<창세기 20장 성경주석>
20:1 거기서 네게브 땅으로 옮겨가
헤브론 지경 아므레 상수리 수풀(13:18)에서 장막을 걷고 남방(the south country), 곧 팔레스틴 남쪽 지방인 네게브(Negeb)로 이주한 것을 가리킨다. 이주 원인은 아마 그 무렵 헤브론 지역에 침입한 셋 족속(23장)으로부터 안전을 도모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20:1 그랄.
팔레스틴 남부, 사해 서쪽에 위치한 조그마한 성읍이다. 후일 이삭도 흉년을 피해 이곳으로 이주하였으며(26:1) 유다 왕 아사가 구스 군대를 크게 격파했던 곳이기도 하다(대하 14:13).
20:2 누이라 하였으므로.
이에 대하여 문서설(文書設, documentary hypothesi s)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12:10-20에 나오는 동일한 사건의 반복 기록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앞서의 사건은 아브라함 75세때 애굽왕 바로와 관계된 일이었으나, 본장의 사건은 아브라함 99세때 그랄 왕 아비멜렉과 관계된 일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번처럼 아브라함이 20여년 전에 저질렀던 것과 동일한 잘못을 또다시 범한 사건은 (1)그가 어떠한 이유에서든 약속의 땅 가나안을 떠나면 반드시 시험에 빠지고 말았다는 점과 (2)한번 지은 죄에 대하여선 쉽게 재범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교훈해 준다.
20:2 사라를 데려갔더니.
이러한 행위는 당시의 관습에 의해 가능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일국의 통치자는 어떤 처녀라도 심지어는 그 땅의 일시적인 방문자 일지라도 마음에 들면 후궁으로 취할 수 있는 절대 권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여기서 아비멜렉이 사라를 취한 이유는 90세가 다 된 사라의 미모에 반해서라기 보다 정략 결혼을 통해 자기 영토권내로 이주한 부유하고 강력한 족장 아브라함과 동맹 관계를 맺기 위해서 였을 것이다(Delitzsch).
20:3 현몽하시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시는 계시의 방편으로 꿈을 사용하신 경우이다. 물론 택한 백성을 위해서도 하나님께선 꿈으로 계시하셨지만(28:13-15;37:5-11;왕상3-5;마1:18-24), 이러한 일은 특히 이방인에게 자주 일어났는데(31:24;41:1-13;삿7:13,14;단4:4-27;마2:12), 이는 꿈이 하나님의 현현(theophany)보다는 차원이 낮은 계시의 방편임을 시사해준다.
20:3 네가 죽으리니.
비록 왕이라 할지라도 남의 아내를 취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결혼 제도의 신성함을 부인하고 기본 인륜을 저버리는 행위이니 하나님의 진노를 면할 수 없었다. 이러한 정신은 고대 함무라비 법전에도 그대로 승계되었는데 거기에는 결혼한 여자를 범하였을 경우 쌍방 다 사형에 처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20:4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약속(17:19)에 근거한 비상 섭리의 결과이다. 만일 아비멜렉이 실제로 사라와 관계하였더라면 시기적으로 볼 때 사라가 낳은 아들 이삭(21:2,3)은 블레셋 왕 아비멜렉의 아들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나돌았을 것이다.
20:4 의로운 백성.
의로운 백성(*고이 차디크) '백성'에 해당하는 '고이'는 대개 '이방 나라', '이방인'을 가리키는 말이므로 직역하면 '죄 없는 이방인'이란 뜻이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아비멜렉과 그의 백성은 어느 정도 아브라하의 하나님을 알고 있었으며 도덕적으로도 주변 성읍과는 달리 다소 나았던 것 같다. 이는 소돔과 고모라 멸망시 그들이 함께 심판당하지 않았던 점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19:24,25). 아무튼 아비멜렉의 호소는 '구체적인 죄가 없는데도 벌주시려나이까'란 의미의 하나님의 공의에 근거한 호소라 하겠다.
20:5 이는 내 누이라.
아브라함의 이 말은 혈통 및 가계상으로는 맞는 말(12절)이라 하더라도, 신앙 양심을 거스리고 세상 사람의 눈을 속이려 한 말이었다는 데 아브라함의 잘못이 있다.
20:5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
결혼하지 않은 여인을 후궁으로 취할 수 있는 당시대의 합법적인 왕의 권한을 뜻한다. 그 중 '온전한 마음'은 사라에 대한 내적 동기를 가리키며, '깨끗한 손'은 그녀를 자기 내실로 데려오도록 시도한 외적 행위를 가리킨다.
20:7 선지자.
원 뜻은 '쉬임없이 말하다'로 신적 영감을 받아 말하는 '대언자'(출7:1)를 가리킨다. 이런 자는 하나님의 뜻을 사람에게 전하는 일차적 사명 외에 하나님과 사람을 중재하는 역할도 맡는다. 그런데 하나님ㄴ께서 아브라함을 '선지자'로 칭하신 까닭은 하나님의 뜻이 아브라함을 통하여 이루어지며 또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20:7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아브라함이 선지자인 이상, 아비멜렉이 그의 아내를 취하려고 한 것은 선지자의 거룩성과 하나님의 신성을 모독하는 범죄 행위였다. 따라서 이러한 아비멜렉의 죄는 아브라함의 중재 기도를 통해서만 용서받을 수 있었다. 한편 이 같은 아브라함의 선지자적 기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이미 소돔에 사는 조카 롯을 위한 중재 기도에서 발휘된 적이 있었다(19:29).
20:8 모든 종들을 불러.
자신의 잘못을 다른 사람 앞에, 그것도 아랫사람 앞에서 시인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러나 아비멜렉은 자신의 잘못을 그들에게 고함으로 저들도 연대 책임을 느끼고 각성함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면하도록 하였는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그의 겸허한 마음과 참된 용기가 잘 드러나 보인다.
20:9 합당하지 아니한 일.
직역하면 '행해서는 안될 일'. 즉 아브라함은 (1) 먼저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섭리와 손길을 불신하고 (2)나아가 이웃을 실족케 하는, 행해서는 안될 일을 범하였던 것이다.
20:11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소돔, 고모라와 같은 여타 성읍처럼 이곳 거민들도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줄로 생각하고 두려워했다는 뜻이다. 물론 아브라함의 이러한 변명은 그랄 족속이 어느 정도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알고 도덕적으로도 타성읍보다 다소 나았기는 하나 이들도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족속이었다는 점에서 그럴듯한 성격의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일전의 애굽사건(12:10-20)을 통하여 신변상의 안전을 위해 자신의 잘못된 생각과 잔꾀를 의지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경험하고서도 (1)다시그 인간적인 두려움에 사로잡혔으며 (2)이를 타개하기 위해 재삼 사람을 기만하려 들었으니 큰 잘못일 수 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만일 우리의 행위를 통해 언약을 이어나가시는 분이셨다면 이러한 잘못을 빌미로 그와 맺으셨던 언약(12:2,3)을 파기하셨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하지 않으시고 그 크신 사랑과 자비로 그와의 언약을 유지시켜 나가셨다. 이처럼 아브라함이 약속을 유업으로 받아 오늘날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은 결코 그의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나의 나 된 것도 역시 동일한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것이다(고전15:10). 그러니 우리는 무슨 일에서든지 자긍하지 말고 항상 겸손한 자세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처신해야 할 것이다(롬11:18-21).
20:12 정말로 나의 이복 누이.
이에 대하여 혹자는 사라가 이스가와 동일 인물(11:29)로 아브라함에게는 조카 딸이 될 뿐이지 이복 누이가 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Lange). 즉 사라가 아브라함을 가리켜 '내 오라비'(5절)라고 한 것은 단지 서로가 그에게 부르도록 약정했기 때문이지 결코 서로가 이복 오누이 관계였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뒷받침하는 성경적 근거가 없으며 또한 '실로'(*옴나)라는 단어 역시 불변사로 '분명히', '확실히', '참으로'라는 강조적 의미이기 때문에(수7:20) 받아 들여지기가 힘들다. 따라섯 데라가 아브라함의 어머니 외에 또 어떤 여자를 취하여 사라를 낳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문자 그대로 사라는 아브라함의 이복 누이였던 것으로 보아야 한다(Keil).
20:12 내 아내가 되었음이니라.
이러한 근친 결혼은 (1)인구가 미분산되어 있고 (2)가문의 혈통 보존을 중시 여겼던 고대 사회에서는 도덕률과 무관한 자연스런 관행이었을 것이다.
20:13 내 아버지의 집을 떠나...하실 때에.
아브라함이 하란에서 하나님께 소명을 받은 사실을 가리킨다(12:1). 이 때 그는 이미 자신이 나그네와 같은 자로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게 될 운명에 처해 있음을 깨달았던 것 같다.
20:13 우리의 가는 곳마다.
아브라함이 애굽에서도 사라를 가리켜 이복 누이라 칭한 것을 상기시켜 주는 말이다(12:13). 아브라함 당시대의 고대 근동지방에서는 자신의 아내가 실제 누이가 아니라 할지라도 아내를 가리켜 누이라 칭하는 것이 관례적인 표현이었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처신이 결코 거짓말을 위한 거짓말이거나 치졸한 변명만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이 순수한 마음에서 그렇게 처신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하여 이를 자구책으로 이용하고자 했던데서부터 결국 모든 문제가 발생하였던 것이다.
20:13 은혜.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도리어 선으로 갚는 것과 같은 모든 자비,연민,사랑 등을 가리킨다. 이러한 은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 죽음에 내어 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에서 그 절정을 이루고 있다.
20:14 양과 소와 종들...사라도.
애굽 왕 바로처럼(12:16,19) 아비멜렉도 사라 뿐 아니라 예물까지도 딸려 보낸 것은 기대 이상의 친절한 호의이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지레 짐작한 모든 두려움, 불신(11절) 등이 얼마나 그릇된 것이었는지를 잘 보여 준다.
20:15 네가 보기에 좋은 대로 거주하라.
아브라함을 자신의 영토내에서 내보내었던 바로(12:20)와 대조되는 태도로 아브라함에 대한 아비멜렉의 우호적인 자세와 관대한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이러한 호의에 의거해 이후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의 영토에서 우물을 파고 지낼 정도로 장기적인 체류를 하였다(21:25,34).
20:16 은 천 개.
은 천 세겔을 가리킨다. 여기서 '세겔'(Shekel)은 히브리인들의 화폐 단위(대상21:25)가 아닌 무게 단위(삼하14:26)로 대략 11.4g(약3돈)에 해당된다. 따라서 은 천 세겔은 11.4kg에 달하는 상당한 양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아비멜렉이 사라를 아내로 취하려 했던 잘못에 대해 속죄하는 속전이자 동시에 아브라함과의 관계가 회복되기를 바라는 화해의 선물이기도 하였다(신22:28,29).
20:16 네 수치를 가리게 하였노니.
'카사'(덮다,가리다)와 '에나임'(눈)이 복합된 말로, 직역하면 '네 눈을 가리우게 하였으니'. 이는 곧 '네 눈에 베일을 씌워 보지 못하게 하였다'는 말로 사라의 순결성을 표현한 말인데 먼저 (1)사라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범하려고 한 아비멜렉의 잘못을 보지 못하게 하였으니'란 뜻이며 (2)다른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베일로 가리운 것 같이 '사라를 우정의 눈으로 보지 못하게 하였으니'란 뜻이다(Calvin).
20:16 네 일이 다 해결되었느니라.
본 절은 '네가 모든 사람 앞에 결백하다는 것이 증명될 것이다'(공동 번역)란 뜻으로 곧 사라의 순결성을 표현한 말이다.
20:17 아브라함이...기도하매.
조금 전까지만해도 아내를 누이라고 속인 일로 인해 아비멜렉 앞에서 위신이 크게 실추되었던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도움에 처해 순식간에 권위를 회복하는 장면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궁지에 몰린 아브라함이 선지자적 권위(7절)를 회복할 수 있도록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아비멜렉 집안의 우환을 치료하여 주심으로 모든 사람이 아브라함을 우러러보도록 도와주셨던 것이다(18절). 이처럼 오늘날 성도들도 자신이 잘나서가 결코 아니라 하나님께서 도와주셨기 때문에 빛 된 사명을 다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일생 빚진 자임을 자각하고 더욱 감사하며 주어진 삶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고전4:2).
20:17 여종.
여기서는 단순한 하녀(maidservant)와는 구별되는 아비멜렉의 첩들을 의미하는 것 같다.
20:18 태를 닫히셨음이더라.
이처럼 하나님께서 아비멜렉 뿐 아니라 그와 관련된 전가족을 일시적으로 불임 상태로 만드신 것은 사라를 위한 이기적인 보호이자 또한 그녀를 통해 탄생될 약속된 자녀(17:19)의 순결성 유지를 위한 특별한 보호 조처였다. 한편 여기서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은혜 가운데 주신 언약은 인간의 실수나 잘못에도 불구하고 그 효력이 상실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구약 BIBLE > 창세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세기22장 성경주석 (0) | 2022.05.27 |
---|---|
창세기21장 성경주석 (0) | 2022.05.27 |
창세기19장 성경주석 (0) | 2022.05.26 |
창세기18장 성경주석 (0) | 2022.05.26 |
창세기17장 성경주석 (0) | 2022.05.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