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2. 24. 19:29ㆍ구약 BIBLE/마가복음
<마가복음 8장 흐름정리>
6장 35~44절의 유사한 맥락에서 파악될 수 있는 칠병이어 기적 사건이 서두에 나온다. 앞의 사건과의 차이점은 그 기적의 대상이 데가볼리 지방의 이방인이었다는 데 있다. 바야흐로 이방인들이 천국 복음의 전파 대상에서 기적의 수혜자로까지 인정된 것이다. 이 사건의 연장 선상에서 주님은 이적만을 구하는 세대를 책망하시고 제자들의 우둔함을 질책하셨다. 한편 베드로는 예수님을 메시아와 인자로 정확히 고백하는 믿음을 보였으나, 주님의 1차 수난 예고에 직면하여 십자가 죽음을 만류하는 인간적인 정서를 드러냄으로써 주님으로부터 혹독한 책망을 받았다.
<마가복음 8장 줄거리>
1. 그리스도가 기적적으로 사람들을 먹임.
10. 바리새인들에게 표적 행하기를 거절함.
14.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제자들에게 경고함.
22. 소경을 보게 함.
27. 그가 고난을 받고 다시 살아날 그리스도임을 고백함.
34. 복음 사역을 위하여 핍박을 받을 때에 인내하라고 권고함.
<마가복음 8장 개역개정>
1. 그 무렵에 또 큰 무리가 있어 먹을 것이 없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2.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 지났으나 먹을 것이 없도다
3. 만일 내가 그들을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 그 중에는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느니라
4. 제자들이 대답하되 이 광야 어디서 떡을 얻어 이 사람들로 배부르게 할 수 있으리이까
5.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이르되 일곱이로소이다 하거늘
6. 예수께서 무리를 명하여 땅에 앉게 하시고 떡 일곱 개를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나누어 주게 하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나누어 주더라
7. 또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는지라 이에 축복하시고 명하사 이것도 나누어 주게 하시니
8.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 일곱 광주리를 거두었으며
9. 사람은 약 사천 명이었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흩어 보내시고
10. 곧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달마누다 지방으로 가시니라
11.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를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12. 예수께서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시며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 표적을 주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13. 그들을 떠나 다시 배에 올라 건너편으로 가시니라
14. 제자들이 떡 가져오기를 잊었으매 배에 떡 한 개밖에 그들에게 없더라
15.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16. 제자들이 서로 수군거리기를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 하거늘
17.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18.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19.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열둘이니이다
20.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일곱이니이다
21. 이르시되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
22. 벳새다에 이르매 사람들이 맹인 한 사람을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손 대시기를 구하거늘
23. 예수께서 맹인의 손을 붙잡으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24. 쳐다보며 이르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가는 것을 보나이다 하거늘
25.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그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모든 것을 밝히 보는지라
26. 예수께서 그 사람을 집으로 보내시며 이르시되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 하시니라
27. .예수와 제자들이 빌립보 가이사랴 여러 마을로 나가실새 길에서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28. .제자들이 여짜와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29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30 .이에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경고하시고
31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32.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매
33.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35.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3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37.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과 바꾸겠느냐
38.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마가복음 8장 성경주석>
(마가복음 8:1) 그 무렵에.
문자적으로 ‘그 날들 동안’ 으로서 본 사건을 앞의 귀먹고 어눌한 사람을 치유한 사건(7:31-37)과 연결 시킨 것이라 본다. 마가는 지금의 장소에 관해 침묵하고 있으나, 대개 이곳이 갈릴리 호수 동편에 위치한 데가볼리로 인정되고 있다.
(마가복음 8:2) 내가 무리를 불쌍히...먹을 것이 없도다.
예수가 제자들을 부른 이유와 본 이적의 근본 동기를 말하고 있다. 즉 예수의 가르침을 듣기 위해 모여든 수많은 군중들을 불쌍히 생각하여 그 대책을 마련코자 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바로 인류를 지극히 사랑하셔서 당신의 몸을 버리기 까지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이다.
(마가복음 8:3) 만일 내가 그들을 굶겨...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느니라.
여기서 군중들을 향한 예수의 애정과 책임 의식이 구체적으로 나타나는데 마치 자상한 어머니처럼 군중들의 굶주림을 자기의 책임으로 여기며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마가복음 8:4) 이 광야 어디서 떡을 얻어.
예수의 제안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은 무기력했으며 부정적인 것이었다. 이유는 5,000명 급식 기적때의 금전 문제와는 달리 장소 문제 였다. 즉 집회 장소가 ‘이 광야’ 곧 내륙 한가운데로서 인가와 마을로 부터 상당한 거리에 있는 외진 광야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자들은 그 많은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공급한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였을 것이다.
(마가복음 8:5) 일곱이로소이다.
제자들의 불가능한 대답을 듣고 예수는 희망적인 암시를 갖고 남아있는 음식에 대해 묻고 있다(6:38주석 참조). 여기서추측할 수 있는 것은 군중들이 오랫동안 굶주렸다면 음식이 남아있을리 없기 때문이다. 7이라는 수는 하나님의 수, 완전한 숫자로 보아 하나님으로 부터 주어지는 충만한 축복을 상징한다는 주장도 있다.
(마가복음 8:6) 땅에 앉게 하시고...축사하시고.
예수는 6:41에서와 같은 형식으로 급식 기적을 행한다. 그러나 6:39,40과 많은 차이점이 나타나는데, 6:39에서는 무리들을 푸른 잔디위에 앉도록 했다고 언급하고 있으나 여기서는 그냥 땅에 앉게 했다고만 한다. 이는 분명 장고적 차이뿐 아니라 시간적 차이를 여실히 증명해 주는 것이라 본다.
(마가복음 8:7) 작은 생선 두어 마리.
여기서는 6:41과 달리 물고기 숫자가 불분명하게 언급되고 있는데 ‘생선 두어마리’는 헬라어 ‘잌뒤디아 올리가’ 를 번역한 것으로서 ‘생선 몇마리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공동번역).
(마가복음 8:8) 남은 조각 일곱 광주리.
이처럼 주님께서는 필요한 바에 넘치도록 채워 주시는 분이시다(눅6:38). 왜냐 하면 하나님께서는 만우의 주로서(대상29:11)지극히 충만하신 분이실 뿐만 아니라 (요1:16)성도의 필요를 먼저 아시기 때문이다(마6:32).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환난과 궁핍에 처했을때, 하나님께 의뢰하여 해결책을 찾으려 하기 보다는 스스로 고민하고 좌절하는 등 매우 근시안적이고 즉각적인 반응으 보이는 경우가 있다.
(마가복음 8:9) 사람은 약 사천 명이었더라.
6:44에서는 남자가 오천명이었다고 언급하는데 여기서는 그러한 구분이 없고 사람이 4,000명 이라고 말한다.
(마가복음 8:10)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달마누다 지방으로.
6:45에서는 벳세다로 갔다고 언급하지만 여기서는 ‘물통’이란 이름의 뜻을 지닌 ‘달마누다’지방으로 갔음을 밝히고 있다.
마가복음 8:11-13 이 이야기의 발생 장소가 어디인지 알 길이 없고 앞에서 언급된 급식기적과도 아무런 관계가 없어 전혀 다른 사건의 이야기가 삽입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8:1-10주석에서도 언급했듯이 6:31-7:37에 포함되어 있는 7:1-23과 평행을 이루는 부분을 8:1-30에 서도 만들기 위하여 마가가 이곳에 본사건(11-13절)을 하나의 독립된 부분으로 기록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7:1-23과 본사건은 모두 바리새인과 예수와의 충돌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본 사건의 주제는 하늘의 표징에 대한 것이다. 이와 같은 형태의 논쟁이 복음서에서 여러 곳 나타나고 있다(마12:38-42;16:1-4;눅11:29-32)
(마가복음 8:14) 떡 가져오기를 잊었으매.
여기서 말하고 있는 떡이 어디에 필요한 떡인지 또는 어디에 있는 떡을 가져오지 않았는지 불분명하다. 그러나 본문을 1-10절의 급식 기적과 연결시켜 이해한다면 4,000명을 먹이고 남은 떡을 말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떡은 예수와 그의 제자들의 활동에 필요한 식사였을 것이다.
(마가복음 8:15) 경고하여 이르시되.
여기서 ‘경계하여’란 미완료 중간태를 취하고 있어, 예수께서 몇 번이고 계속해서 지시하시고 당부하셨음을 보여 주고 있다.
(마가복음 8:16) 이는...없음이로라.
헬라어 원문상으로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호티’(왜냐하면)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제자들의 말을 직접 인용문으로 전달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이를 그대로 옮기면,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기 때문에 하시는 말씀이다’.이 된다. 그리고 이를 보다 자연스럽게 옮기면, ‘하지만 우리에게는 떡이 없는 걸’로 된다.
(마가복음 8:17) 수군거리느냐.
평행구인 마16:8에서는 ‘서로’라는 말을 추가 함으로서, 본절의 의미를 더욱 명확히 드러 내었다. 즉 제자들은 근심되거나 의혹스렁ㄴ 문제에 봉착하여 먼저 주님께 진실하게 의뢰하기 보다는 그들끼리 왈가왈부함으로써 해결의 실마리를 놓쳐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형제들끼리의 교제가 신앙생활에 있어 필수적이긴 하지만, 자칫하면 서로를 비신앙적인 방향으로 흐지부지 하게 끌고 가는 합리화의 도구로, 전락될 우려가 있다. 따라서 후자의경우에 직면했을 때에, 우리는 혼자서라도 과감히 진리를 위해 설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잠4:27)
(마가복음 8:18)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마태의 평행 본문에는 없는 말인데 이 구절은 4:12 에서 군중들을 향해 했던 말과 비슷하다. 아마도 이 구절은 사6:9,10을 인용하여 책망한 것으로 보인다. 이 택망은 17절의 책망보다 더 강도 있게 들리는데 제자들에게만 내리는 책망이기 보다는 미련하고 돌이킬줄 모르는 백성과 하나님의 뜻을 배반하기를 일삼는 유대 백성들을 향한 심판적 탄식으로 들린다. 아마도 예수는 제자들을 나무라면서 실은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탄식적인 책망을 하였을 것이다.
(마가복음 8:19,20) 몇 바구니...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예수는 격한 책망과 더불어 제자들에게 질문을 통해 그들의 깨닫지 못함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을 내비치셨으며, 또 그들에게 바른 깨달음을 주시기 원하셨다. 예수를 따르는 것은 육적인 해방과 함께 7광주리, 또는 12광주리의 떡만큼이나 넉넉한 영적 풍요함을 준다는 암시적인 메시지를 제공하고 있다.
(마가복음 8:21)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여기서 예수가 제자들에게 되묻는 말로 이야기의 끝을 장식하고 있는데(제자들이 깨달았는지 못깨달았는지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이 없다)평행 본문인 마16:11,12에서는 예수의 반문이 더 친절하게 묘사되고 있다. 즉 제자들에게 깨닫지 못하느냐고 반문한 후 자신의 이야기가 단순히 누룩에 관한 것이 아니라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에 관한 것임을 밝히면서 급식 기적과 15절의 교훈을 연결 시키고 있다.
마가복음 8:22-26 벳세다에서 소경을 치유하신 본 사건은 다른 복음서에서는 소개 되지 않은 마가만의 이야기인데 내용 전개가 7:31-37과 비슷한 점이 많다. 즉 환자의 환부에 침을 바른다거나 제자들에 대한 언급이 없는점, 그리고 은밀한 곳에서 치유하는 모습이 그렇다. 그래서 이 두 이야기는 같이 전해져온 이야기라고 보면서 오히려 이 본문이 7:31-37보다 앞선 이야기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본문의 위치가 정확히 어딘지는 알 수 없다.
(마가복음 8:27) 빌립보 가이사랴.
이곳은 갈릴리 호수 북방에있는 헤르몬산 기슭에 위치하여 요단강의 수원지가 있는 경치 좋고 비옥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마가복음 8:28) 세례 요한...선지자 중의 하나.
제자들이 파악한 여론을 통해 대중들은 예수에 대해서 다양하면서도 신화적 인물로 상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미 예수를 세례 요한으로 언급하고 있음을 6:14에서 헤롯의 입을 통해 밝혔고, 뿐만 아니라 예수를 엘리야나 선지자 또는 옛 선지자 중의 하나와 같다는 평을 6:15에서 대중들의 여론으로 밝힌 바 있다(6:14,15주석 참조).
(마가복음 8:29)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께서 지금껏 던지신 질문들은 바로 본문의 이 질문에 귀착되고 있다. 즉 예수는 비록 당신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은 차치하고서라도 당신과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믿을만한 제자들은 과연 당신을 누구라 생각하고 믿고 있느냐는 것을 묻고 싶으셨던 것이다.
(마가복음 8:30)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여기서 예수는 베드로의 대답에 대해 옳다, 그르다 하는 일체의 반응 없이 늘 하던 것처럼 침묵을 지시 하고 있다. 예수의 침묵 명령은 아직 자신의 신분과 목적을 공개적으로 노출시킬 시기가 아님을 말하면서 한 쪽으로는 간접적인 암시를 통해 자신의 신분을 나타낸다고 볼 수있다.
마가복음 8:31 본절은 본서 가운데 유일하게 ‘메시야적 비밀’이 공개 되고 있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사실 예수께서는 당시의 메시야임을 좀처럼 밝히려 하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메시야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고난. 죽음, 버림받음등의 수모를 감수해야 하는데, 당시 유대인들이 고대 하던 메시야관은 그것에서 완전히 벗어났기 때문이다. 즉 당시 유대인들은 고난 받는 메시야상을 제쳐놓고 오직 영광의 메시야상만을 고대해 왔기 때문에 만약 예수가 자신의 메시야성을 공개 하게 된다면 분명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메시야적 사역을 성취하는데 방해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가복음 8:32)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여기서 드러내놓고 라는 말은 ‘파르레시아’인데 ‘숨김없이’. ‘명백하게’ 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자유롭게 말하는 언론의 자유라는 의미도 있다.
(마가복음 8:33)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마태는 예수께서 베드로에게로 돌아서신 것만을 언급하는데 비해(마16:23) 마가는 베드로 이외의 제자들까지를 향해 서신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즉 마가는 예수께서 꾸짖으시고자 하신 대상을 베드로 한 사람에게만 국한시키지 않고 모든 제자들에게도 주의를 환기시키고 계심을 묘사하고 있다.
(마가복음 8: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27절에서는 길가는 중에 제자들에게 말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제자들과 무리에게로 그 대상이 확장되고 있다. 따라서 그 대상은 12제자들에게만 국한된것이 아니라 예수를 따르기로 결심한 모든 신자들에게로 확장 되는 것이다.
(마가복음 8:35)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역설의 극치를 아루는 이문장은 ‘왜냐하면’이라는 말로 시작되고 있는데 34절의 선언을 설명하기 위한것으로 보인다. 즉 자기 부인과 고난과 죽음을 요청한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고 자기 집착이나 이기심에차 자기 존제 보호에철저히 집착해 있다면 궁극적 측면에서 그는 영원한 생명에서 멀어져 있다는 뜻에서 자기 목숨을 살리려하면 잃게 될것이라고 경고하는 것이다.
(마가복음 8:3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여기서는 문장이 반문하는 형태로서 격언적인 어투인데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지거나 당연한 결론을 이끌어내는 형태의 질문을 통해 34,35절에서 언급한 내용을 이해시키고자 한다.
(마가복음 8:37)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과 바꾸겠느냐.
이 말은 단순하게 생각하면 앞절의 결론구, 즉 이 세상에서 생명과 맞바꿀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자명한 대답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목숨과 맞바꿀만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대답해 보라는 질문으로 이해 할 수 있다. 그 대답은 35절에서 이미 언급된 것이기 때문에 자명해진다. 즉 참으로 목숨과 맞 바꿀 수 있는 것은 ‘예수’와 ‘복음’이다. 따라서 예수의 가르침과 질문의 내용은 죽지 않고 사는 길에 대한 것이 아니라 참된 삶을 위한 참된 죽음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와 복음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용기를 촉구하는 것 이다. 결국 예수를 따르는 제자가 되기 위해서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지고 목숨까지 내어 놓을 수 있는 결단을 촉구 하고 있는 것이다(마1:38; 눅9:23).
(마가복음 8:38)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
예수는 자신의 입장을 결정적으로 밝히면서 이 시대를 음란하고 죄많은 세대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음란과 죄는 예수와 복음을 부인하고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를 모독하고 교회를 업신여기는 세대를 말한다. 이 본문의 핵심은 33-37에서 언급한 제자됨과 그리스도인됨을 위한 예수의 요구의 필연성과 정당성을 종말에 임할 심판묘사로 명백하게 밝히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같은 희망찬 종말 언급을 통해 박해받는 제자들과 추종자 곧 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을 각오한 용기와 믿음으로써(요16:33)예수 자신의 길을 따라오라고 촉구하는 것이다.
개역개정,39 (없음)
새번역,39 (없음)
우리말성경,39 (없음)
가톨릭성경,39 (없음)
영어NIV,39 (없음)
영어NASB,39 (없음)
영어MSG,39 (없음)
영어NRSV,39 (없음)
헬라어신약Stephanos,39 (없음)
라틴어Vulgate,39 et dicebat illis amen dico vobis quia sunt quidam de hic stantibus qui non gustabunt mortem donec videant regnum Dei veniens in virtute
히브리어Modern,39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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