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6. 22. 10:44ㆍ구약 BIBLE/이사야
<이사야 21장 줄거리>
1. 바벨론에 대한 예언
11. 에돔과 아라비아에 관한 경고
<이사야 21장 개역개정>
1. 해변 광야에 관한 경고라 적병이 광야에서, 두려운 땅에서 네겝 회오리바람 같이 몰려왔도다
2. 혹독한 묵시가 내게 보였도다 속이는 자는 속이고 약탈하는 자는 약탈하도다 엘람이여 올라가고 메대여 에워싸라 그의 모든 탄식을 내가 그치게 하였노라 하시도다
3. 이러므로 나의 요통이 심하여 해산이 임박한 여인의 고통 같은 고통이 나를 엄습하였으므로 내가 괴로워서 듣지 못하며 놀라서 보지 못하도다
4. 내 마음이 어지럽고 두려움이 나를 놀라게 하며 희망의 서광이 변하여 내게 떨림이 되도다
5. 그들이 식탁을 베풀고 파수꾼을 세우고 먹고 마시도다 너희 고관들아 일어나 방패에 기름을 바를지어다
6. 주께서 내게 이르시되 가서 파수꾼을 세우고 그가 보는 것을 보고하게 하되
7. 마병대가 쌍쌍이 오는 것과 나귀 떼와 낙타 떼를 보거든 귀 기울여 자세히 들으라 하셨더니
8. 파수꾼이 사자 같이 부르짖기를 주여 내가 낮에 늘 망대에 서 있었고 밤이 새도록 파수하는 곳에 있었더니
9. 보소서 마병대가 쌍쌍이 오나이다 하니 그가 대답하여 이르시되 함락되었도다 함락되었도다 바벨론이여 그들이 조각한 신상들이 다 부서져 땅에 떨어졌도다 하시도다
10. 내가 짓밟은 너여, 내가 타작한 너여, 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께 들은 대로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11. 두마에 관한 경고라 사람이 세일에서 나를 부르되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
12. 파수꾼이 이르되 아침이 오나니 밤도 오리라 네가 물으려거든 물으라 너희는 돌아올지니라 하더라
13. 아라비아에 관한 경고라 드단 대상들이여 너희가 아라비아 수풀에서 유숙하리라
14. 데마 땅의 주민들아 물을 가져다가 목마른 자에게 주고 떡을 가지고 도피하는 자를 영접하라
15. 그들이 칼날을 피하며 뺀 칼과 당긴 활과 전쟁의 어려움에서 도망하였음이니라
16. 주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품꾼의 정한 기한 같이 일 년 내에 게달의 영광이 다 쇠멸하리니
17. 게달 자손 중 활 가진 용사의 남은 수가 적으리라 하시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사야 21장 성경주석>
(이사야 21:1) 해변 광야에 관한 경고라.
'해변 광야'는 바벨론을 가리키는 상징적인 이름이다(9절) 아라비아 사막의 남단 대평원에 위치한 초기의 바벨론은 세미라미스(Semiramis)가 댐을 쌓기 전까지는, 아비데누스(Abydenus)가 '마치 바다처럼 보인다'고 말했을 정도로, 범람하는 유브라데 강물에 자주 침수되었다(Alexander). 그러나 '해변 광야'란 상징적인 이름에는 물이 잠겨 있는 바벨론의 지형 조건만이 아니라, 그 모습을 통해 선지자가 미리 내다본 바, 바벨론의 궁극적인 운명의 불길한 전조까지 내포되어 있다(14:23;렘51:14,Delitzsch). 그것이 선지자의 환상 속에서 점점 구체화된다. 적병이...남방 회리바람같이 몰려 왔도다. 바벨론에 임할 재난은 광대한 아라비아 사막에서 급속도로 불어오는 태풍에 비유된다. 이 태풍의 무서움에 대하여는 욥 1:19;37:9;렘4:11;13:24;호13:15;슥9:14 등을 참조하라. 광야 곧 두려운 땅에서 오리라고 예언된 적병은 다음절에 나오는 엘람과 메대인들을 가리킨다.
(이사야 21:2) 혹독한 묵시.
이는 '묵시'(*하주트)의 내용 자체가 견딜 수 없이 무겁다(*카솨)는 뜻이다.
(이사야 21:2) 속이는 자는 속이고 약탈하는 자는 약탈하도다.
옛 주석가들은 본문을 포악한 바벨론 군주들에 대한 묘사로 본다. 이에 따르면, 바벨론이 왜 멸망해야만 하는지 그 이유를 선지자가 여기서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많은 주석가들은 본문을 바벨론의 침략자들에게 적용시킨다. 두 가지가 다 문법적으로 가능하나 후자를 취한다(Alexander).
(이사야 21:2) 엘람이여...에워싸라.
'올라가고 에워싸라'는 말은 바벨론에 대한 공격 명령이다. 이 명령은 엘람과 메대에게 주어졌다. '엘람'은 현재의 이란 남부에 해당하며 바사 제국을 가리킨다. '엘람'은 히브리인들에게 잘 알려진 반면(창14:1), '바사'는 그 때까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바사와 국경을 접하고 있던 엘람은 후에 바사에게 합병되었다. 바사와 메대는 B.C 539년 고레스 왕의 주도하에 바벨론을 정복하였다. ;메대'에 대하여는 13:17 주석을 참조하라. 이사야 선지자 당대에 엘람과 메대가 바벨론의 연합국이었음을 생각한다면, 그의 묵시가 얼마나 시대를 앞서가는 이러한 혜안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영감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임에 틀림없다.
(전절의 '혹독한 묵시'는 선지자에게 두 가지 신체적인 반응, 즉 극심한 요통(3절)과 마음의 진동(4절)을 야기시켰다. 포로기의 선지자들이 바벨론의 몰락을 환호한 데 비하면, 본문에 묘사된 선지자의 반응은 다소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하 카이저(Kaiser)는, 이 같은 표현은 선지자들이 자기 계시의 엄중함을 부가시키기 위하여 즐겨 사용하는 수사학적인 기교라고 설명한다(15:5;16:9,11;겔21:6,7;단10:2,3, Oswalt). 반면에 칼빈(Calvin)은 자기가 본 것을 백성들에게 생동감있게 전달하기 위해서 선지자가 자신을 바벨론과 동일시하여 마치 배우처럼 자신의 입을 통해 바벨론의 참상을 표현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어느 쪽을 취하든, 묵시의 혹독함이 간접적으로 강조되고 있다는 데에는 차이가 없다.
(이사야 21:3) 이러므로 나의 요통이 심하여.
본문의 히브리어 '할할라'는 '춤추다', '꼬이다'는 뜻의 '훌'에서 파생된 명사로, 몸부림치는 고통을 의미한다(겔30:4,9). 선지자는 이 고통을 '임신한 여인의 고통'(*치림)으로 비견한다(13:8).
(이사야 21:4) 희망의 서광이 변하여 내게 떨림이 되도다.
'희망의 서광'(네쉐프 히쉐키)은 직역하면 '나의 기쁨의 저녁'이니, 한 날의 근심을 벗고 안식하리라고 기대되었던 저녁 시간조차 두려움의 때로 변한다는 말이다.
(이사야 21:5) 그들이 식탁을 베풀고...먹고 마시도다.
포위 공격을 당하리라고 선언된(2절) 바벨론의 자세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본문에 묘사된 상황은 바벨론의 대연회 장면이다. (적군의 내침이 임박한 시점에서) 그들은 식탁을 베풀고 파수꾼을 세우고 먹고 마신다. 루짜토(Luzzatto)는 본절을 대립적으로 이해한다 : '그들은 식탁을 베푼다, 파수꾼을 세워야 함에도; 그들은 먹고 마신다, 일어나 방패에 기름을 발라야 함에도,' '파숫꾼을 세우고'(*차포하차피트)는 언뜻 봐서는 바벨론인들의 허랑 방탕한 연회 모습을 기록하고 있는 본문에 어울리지 않는 듯 보인다. 이 때문에 몇몇 주석가들은 이것을 '융단을 깔고'(sperad the carpets)로 번역한다(Hitzig, Knobel, Leupold, Gray, Alexander). 그러나 '차파'란 '감시하다'는 뜻이며, 더욱이 이같이 위급한 상황에서 파수꾼을 배치하는 최소한의 예방 조치도 없이 연회를 베푼다는 것은 상식에도 어긋나기 때문에 본래대로 해석함이 옳다. 본문은 다음과 같이 이해된다 : '그들은 파수꾼을 세우는 한 가지 예방 조치만으로도 모든 준비를 다했다는 듯이 안심하고서 아무 걱정없이 연회에 빠져든다.'
(이사야 21:5) 너희 고관들아 일어나 방패에 기름을 바를지어다.
전쟁 준비를 서두르라는 말이다. 방패에 기름을 바름은 적군이 내리치는 칼날이 미끄러져 빗겨가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전쟁에 앞서 반드시 갖춰야 하는 몇 가지 선행 조처들 중 하나였다. 따라서 이 시간까지도 방패에 기름을 바르지 않았다는 것은 저들의 태만함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본문의 전체적 상황은 바벨론의 멸망을 기록하고 있는 단5장과 흡사하다. 바벨론의 마지막 왕 벧사살은 귀인 일천명과 더불어 잔치를 베풀며 놀다 고레스의 군대에 의해 몰살당했다.
(이사야 21:6) 가서 파수꾼을 세우고 그가 보는 것을 보고하게 하되.
다가오는 매대-바사 군대와 바벨론의 멸망이 선지자 자신의 눈으로가 아니라 '파수꾼'이라는 제 삼자의 시각으로 보고되고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할진데, 이 파수꾼은 선지자에 의해 객관화된 또 다른 모습이다. 파수꾼의 표상은 메시지를 보다 생생하게 만들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이사야 21:7) 마병대가 쌍쌍이 오는 것과 나귀 떼와 낙타 떼.
파수꾼이 주목해서 봐야할 내용이 소개된다. 기병대는 고레스가 자랑하는 바사의 주력 부대였다. 그 외 나귀 떼와 낙타 떼는 군수품과 식량 운반 등에 활용된 듯하다. 그러나 헤로도투스(Herodotus)에 의하면, 고레스가 리디아인들(Lydians)을 물리칠 때는 나귀 떼를 이용헀다고 한다(Gray). 이로 보건데, 나귀떼와 낙타떼는 운송 수단으로 뿐 아니라 전쟁 수단으로도 활용됐음이 분명하다. 또한 크세노폰(Xenophon)은 바사의 군대가 둘씩 짝을 지어 행군했음을 알려준다(Alexander).
(이사야 21:8) 파수꾼이 사자 같이 부르짖기를.
직역하면 '그리고 그가 외친다-사자-파수대 위에서'이다.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사자'(*아르예)가 파수꾼의 보고 내용이 아니라 보고하는 방식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 이에 대한 가장 좋은 병행구는 계10:3의 '사자의 부르짖는 것같이 큰 소리로 외치니'에서 발견된다. 파수꾼의 보고는 먼저 자신이 성실과 끈기를 다해 임무에 임했다는 것(8절)과 바벨론에서 벌어진 전쟁의 결과(9절)에 대한 것이다.
(이사야 21:9) 함락되었도다 함락되었도다.
6절에서 점진적으로 진행되던 사태의 추이가 마침내 '바벨론이 함락되었다'는 파수꾼의 환호에서 절정에 달한다. 이것은 고레스 왕이 주도하는 메대-바사-군대에 의해 바벨론이 멸망할 것을 선언하는 말인데, 영적인 의미에서 그 참된 성취는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계18:2)라고 외치는 하늘 천사들의 합창에서 비로소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한편, 본문에서 바벨론과 함께 그 우상들의 몰락이 언급된 것은 비록 이일이 직접적으로 고레스에 의해 수행되는 것이라 할지라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임을 보여주려는 의도에서이다.
(이사야 21:10) 너여, 내가 타작한 너여
바벨론에 대한 경고의 마지막에서 예언된 목적이 제시된다. 그것은 바벨론에 의해 예속되어 고달픔을 겪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로하려는 것이다. 선지자가 그들에게 전하는 큰 기쁨의 소식은 바벨론이 몰락했다는 것이다. '나의 마당의 곡식'(벤-가르니)은 문자적으로는 '나의 마당의 아들'인데, '아들'은 어떤 물건에 소속됨(관련성)을 나타내는 관용적 표현이다(Alexander). 이 말은 '나의 타작한 것'과 동의어이다. 마치 농부가 알곡과 쭉정이를 구분하기 위해 곡식을 타작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바벨론이라는 징계 수단을 사용해 이스라엘을 타작하였으나 그 괴로움의 시간은 이제 곧 끝날 것이다(렘51:33;미4:12).
(이사야 21:11) 두마에 관한 경고라.
'침묵', '정적', '쓸쓸함'을 뜻하는 '두마'는 에돔의 변형으로서, 에돔의 미래 운명을 상징하는 이름이다(시94:17,115:17, Vitringa, Rosenmuller, Delitzch, Knobel). 어떤 이들은 '두마'가 이스마엘을 조상으로 하는 아랍 족속의 명칭(창25:14;대상1:30) 혹은 오늘날 '두마엘얀딜'(Dumah Eljandil)이라 불리우는 아라비아 북부의 한 지역이라고도 한다(Geseniuss, Hitzig, Michaelis, Umbreit, Ewald). 그러나 뒤에 나오는 '세일'(Seir) 자체가 에서의 자손 혹은 에돔인들의 거주지역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들의 주장은 별로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Alexander).
(이사야 21:11) 세일에서 나를 부르되.
파수꾼(선지자)를 부르는 소리는 사해의 남쪽에서 엘란 만(Elantic gullf)에 미치는 높은 산악 지대인 세일(창14:6;32:3;36:8,9)에서 들린다.
(이사야 21:11) 파수꾼이여.
본문의 파수꾼(쇼메르)은 6절의 '파수꾼'(*메차페)과 같지 않다. 후자가 주로 적의 침략으로부터 성을 방비하는 일을 한다면, 전자는 밤에 깨어 성을 지키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62:6;시127:1;130:6;아5:7). 참다운 의미에서 선지자는 세계의 밤을 지키는 사람이다. 그는 온 세상이 잠에 취해 있을 때, 홀로 깨어 어둠을 응시한다. 깨어 있는 자로서, 감시하는 자로서, 어둠의 무게를 두 어깨에 짊어진 자로서, 그는 세계의 운명에 대해 말할 것을 강요받는다.
(이사야 21:11)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
'밤'은 재난의 시간이다. 이 밤의 지겨움을 견딜 수 없어 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탄식어린 물음이 새어 나온다. 그 물음은 이렇게 풀어 말할 수 있다:'우리는 지금 밤의 어느 지점에 있는가? 밤이 얼마나 남았는가? 이 고난의 밤은 언제나 끝나는가?' 반복된 물음은 그들의 답답함의 정도를 암시해준다.
(이사야 21:12) 아침이 오나니 밤도 오리라.
파수꾼의 대답은 간결하고 모호하다. 탈굼역(Targum)은 이 말을 '의로운 자에게는 보상의 아침이 밝을 것이나 불의한 자에게는 형벌의 밤이 임할 것이다'로 해석한다. 노벨(Knobel)은 '유대인들에게는 구원의 아침이 돋을 것이나, 에돔인들에게는 고난의 밤이 계속되리라'로 해석한다. 그러나 보다 좋은 해석은 아침과 밤의 순환이 여기서 말해지고 있다고 보는 해석이다
(Gesenius). 밤이 재난의 사건이라면, 아침은 구원의 시간이다. 비록 구원의 때가 바벨론의 멸망과 더불어 도래하는 듯이 보일지라도 그것은 또 다른 어둠에 삼킴을 당할 것이니, 즉 바사제국에 의해 그들은 지배될 것이다(Delitzsch).
(이사야 21:13) 아라비아에 관한 경고라.
바벨론의 파멸은 에돔뿐 아니라 인접한 아라비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아라비아'(*아라브)라는 이름에는, '해변광야', '두마'와 같이 그 나라의 운명을 암시하는 '저녁'이라는 상징적 뜻이 담겨 있다. 그의 구성은 대단히 기교적이다. 세일 산지를 뒤덮는 어둠(12절)은 아라비아에도 이어져 뜨거운 태양 아래 대상들이 자유로이 왕래하던 나라 아라비아는 이름 그대로 저녁의 땅이 될 것이다.
(이사야 21:13) 드단 대상들이여...유숙하리라.
선지자의 경고는 먼저 사막을 횡단하는 드단의 대상들에게 향한다. 이들은 에돔과 이웃한 족속들(창10:7;25:3;렘49:8;겔25:13;27:20)로 낙타를 이끌고 두로를 오가는 원거리 상업에 종사하였다. 이들이 평상시에 통행하던 길에서 쫓겨나 수풀에서 은신처를 찾을 것이라는 말은 심각한 전쟁 상황을 암시하는 것이요 아라비아 땅이 적에게 유린될 것을 시사한다.
(이사야 21:14) 데마 땅의 주민들아...도피하는 자를 영접하라.
선지자의 다음말은 드단 대상들의 숲속으로 도망한 곳 근처에 있는 데마(아라비아 북부에 있음)주민들에게 주어진다. 도피자들에게 물과 빵을 가져다 주는 것은 최소한의 인간적인 동정심을 표시하는 행위이다(신23:4). 이 말은 데마 주민들의 동정심이나 또는 아라비아 땅의 나머지에는 그래도 몸을 쉴 곳이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피자들의 비참함을 강조하기 위해서 덧붙여진 것이다.
(이사야 21:15) 그들이 칼날을 피하며...도망하였음이니라.
드단 대상들이 왜 그토록 서둘러 몸을 피해야 했는지 그 이유가 설명된다. 한편, 본문은 '앞에서'(*미프네)라는 말을 4번이나 반복하고 있는데-'칼날 앞에서..., 뺀 칼에서, 당긴 활 앞에서, 전쟁의 무거움 앞에서'(원문)-, 이는 13절에 암시된 전쟁의 참상을 묘사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사야 21:16) 일년 내에 게달의 영광이 다 쇠멸하리니.
'게달'(*카다르)은 이스마엘의 둘째 아들인데(창25:13), 여기서는 아라비아 유목 민족을 대표하는 뜻으로 쓰였다(42:11;60:7;시120:5;렘2:10;49:28;겔27:21). 지금도 유대 랍비들은 아라비아어를 '게달의 언어'라고 부른다(Alexander). 두로와의 상거래를 통해 축적된 많은 부와 풍부한 가축들, 그리고 활달한 용사들로 넘치는 게달의 '영광'(*케보드)은 가까운 장래에 전쟁의 '무거움'(*코베드)에 눌려 붕괴되고 말 것이다(Oswalt). '일 년 내에'란 말은 '품군의 정한 기한같이'예정된 파멸의 시간이 결코 늦춰지지 않을 것을 암시하는 말이다.
(이사야 21:17) 게달 자손 중 활 가진 용사의 남은 수가 적으리라.
그 조상 이스마엘 이래(창21:20) 게달 자손들은 활을 잘 쏘는 것으로 유명하였다(시120:4 참고). 그러나 전쟁의 참화를 겪은 뒤에 저들의 수는 현저히 줄어 극소수만 남게 될 것이다.
(이사야 21:17)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경고는 아라비아를 징벌하시는 분이 결국 하나님이시며 그는 무한한 능력으로써 선지자의 입을 통해 예언된 이 모든 일을 기필코 이루실 것임을 확인, 공표하는 말로 끝맺는다.
'구약 BIBLE > 이사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사야23장 성경주석 (0) | 2022.06.23 |
---|---|
이사야22장 성경주석 (0) | 2022.06.22 |
이사야20장 성경주석 (0) | 2022.06.21 |
이사야19장 성경주석 (1) | 2022.06.20 |
이사야18장 성경주석 (0) | 2022.06.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