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37장 성경주석

2022. 7. 1. 09:21구약 BIBLE/이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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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37장 줄거리>

1. 하나님께 호소하는 히스기야

5. 이사야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

8. 랍사게의 협박 편지

14. 하나님께 기도하는 히스기야

21. 이사야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

36. 약속을 이룸

 

<이사야 37장 개역개정>

1. 히스기야 왕이 듣고 자기의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여호와의 전으로 갔고

2. 왕궁 맡은 자 엘리아김과 서기관 셉나와 제사장 중 어른들도 굵은 베 옷을 입으니라 왕이 그들을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에게로 보내매

3. 그들이 이사야에게 이르되 히스기야의 말씀에 오늘은 환난과 책벌과 능욕의 날이라 아이를 낳으려 하나 해산할 힘이 없음 같도다

4.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랍사게의 말을 들으셨을 것이라 그가 그의 상전 앗수르 왕의 보냄을 받고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훼방하였은즉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그 말로 말미암아 견책하실까 하노라 그런즉 바라건대 당신은 이 남아 있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하시더이다 하니라

5. 그리하여 히스기야 왕의 신하들이 이사야에게 나아가매

6. 이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 주에게 이렇게 말하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들은 바 앗수르 왕의 종들이 나를 능욕한 말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라

7. 보라 내가 영을 그의 속에 두리니 그가 소문을 듣고 그의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며 또 내가 그를 그의 고국에서 칼에 죽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라

8. 앗수르 왕이 라기스를 떠났다 함을 듣고 랍사게가 돌아가다가 그 왕을 만나니 립나를 치고 있더라

9. 그 때에 앗수르 왕이 구스 왕 디르하가의 일에 관하여 들은즉 사람들이 이르기를 그가 나와서 왕과 싸우려 한다 하는지라 이 말을 듣고 사자들을 히스기야에게 보내며 이르되

10. 너희는 유다의 히스기야 왕에게 이같이 말하여 이르기를 너는 네가 신뢰하는 하나님이 예루살렘이 앗수르 왕의 손에 넘어가지 아니하리라 하는 말에 속지 말라

11. 앗수르 왕들이 모든 나라에 어떤 일을 행하였으며 그것을 어떻게 멸절시켰는지 네가 들었으리니 네가 구원을 받겠느냐

12. 나의 조상들이 멸하신 열방 고산과 하란과 레셉과 및 들라살에 있는 에덴 자손을 그 나라들의 신들이 건졌더냐

13. 하맛 왕과 아르밧 왕과 스발와임 성의 왕과 헤나 왕과 이와 왕이 어디 있느냐 하라 하였더라

14. 히스기야가 그 사자들의 손에서 글을 받아 보고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서 그 글을 여호와 앞에 펴 놓고

15.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16. 그룹 사이에 계신 이스라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에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

17.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옵소서 여호와여 눈을 뜨고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사람을 보내어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훼방한 모든 말을 들으시옵소서

18. 여호와여 앗수르 왕들이 과연 열국과 그들의 땅을 황폐하게 하였고

19. 그들의 신들을 불에 던졌사오나 그들은 신이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일 뿐이요 나무와 돌이라 그러므로 멸망을 당하였나이다

20.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사 천하 만국이 주만이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옵소서 하니라

21.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사람을 보내어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네가 앗수르의 산헤립 왕의 일로 내게 기도하였도다 하시고

22. 여호와께서 그에 대하여 이같이 이르시되 처녀 딸 시온이 너를 멸시하며 조소하였고 딸 예루살렘이 너를 향하여 머리를 흔들었느니라

23. 네가 훼방하며 능욕한 것은 누구에게냐 네가 소리를 높이며 눈을 높이 들어 향한 것은 누구에게냐 곧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에게니라

24. 네가 네 종을 통해서 주를 훼방하여 이르기를 내가 나의 허다한 병거를 거느리고 산들의 꼭대기에 올라가며 레바논의 깊은 곳에 이르렀으니 높은 백향목과 아름다운 향나무를 베고 또 그 제일 높은 곳에 들어가 살진 땅의 수풀에 이를 것이며

25. 내가 우물을 파서 물을 마셨으니 내 발바닥으로 애굽의 모든 하수를 말리리라 하였도다

26. 네가 어찌하여 듣지 못하였느냐 이 일들은 내가 태초부터 행한 바요 상고부터 정한 바로서 이제 내가 이루어 네가 견고한 성읍들을 헐어 돌무더기가 되게 하였노라

27. 그러므로 그 주민들이 힘이 약하여 놀라며 수치를 당하여 들의 풀 같이, 푸른 나물 같이, 지붕의 풀 같이, 자라지 못한 곡초 같이 되었느니라

28. 네 거처와 네 출입과 네가 나를 거슬러 분노함을 내가 아노라

29. 네가 나를 거슬러 분노함과 네 오만함이 내 귀에 들렸으므로 내가 갈고리로 네 코를 꿰며 재갈을 네 입에 물려 너를 오던 길로 돌아가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30. 왕이여 이것이 왕에게 징조가 되리니 올해는 스스로 난 것을 먹을 것이요 둘째 해에는 또 거기에서 난 것을 먹을 것이요 셋째 해에는 심고 거두며 포도나무를 심고 그 열매를 먹을 것이니이다

31. 유다 족속 중에 피하여 남은 자는 다시 아래로 뿌리를 박고 위로 열매를 맺으리니

32. 이는 남은 자가 예루살렘에서 나오며 피하는 자가 시온 산에서 나올 것임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이다

33.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에 대하여 이같이 이르시되 그가 이 성에 이르지 못하며 화살 하나도 이리로 쏘지 못하며 방패를 가지고 성에 가까이 오지도 못하며 흉벽을 쌓고 치지도 못할 것이요

34. 그가 오던 길 곧 그 길로 돌아가고 이 성에 이르지 못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35. 대저 내가 나를 위하며 내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며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36. 여호와의 사자가 나가서 앗수르 진중에서 십팔만 오천인을 쳤으므로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본즉 시체뿐이라

37. 이에 앗수르의 산헤립 왕이 떠나 돌아가서 니느웨에 거주하더니

38. 자기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경배할 때에 그의 아들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그를 칼로 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도망하였으므로 그의 아들 에살핫돈이 이어 왕이 되니라

 

<이사야 37장 성경주석>

(이사야 37:1,2) 히스기야 왕이 듣고...보내매.

 본장은 그 내용상 앞장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사신들의 비통한 보고에 접한 히스기야 왕의 반응은 4가지로 나타난다. 첫째, 사신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 역시 옷을 찢었다. 이는 극심한 슬픔과 분노를 표시하는 관습적인 행위이다(삼하3:31;스9:3;욥1:20;렘36:24). 둘째, 더 나아가 그는 '굵은 베' 곧 '삼베옷'(*사크)을 입었다. '삼베 옷'은 재난 때 입는 옷이며 참회의 때에 입는 옷이기도 하다(왕상20:31,32; 21:27; 느9:1;단9:3; 욜1:13;욘3:6; 마11:21). 셋째, 그는 기도하러 여호와의 전으로 갔다. 솔로몬의 성전 봉헌 이후, 그곳은 공적인 중보 기도를 드리는 장소로, 하나님이 그 백성의 기도를 드리는 장소로, 하나님이 그 백성의 기도를 들으시는 장소로 인정되었다(왕상8:29, 33,34). 마지막으로, 그는 엘리아김과 셉나, 그리고 제사장 중 어른들을 선지자 이사야에게로 보냈다. 이는 선지자의 입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과 그 위로하심을 듣기 위한 것이다. 당시에 이미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을 해설, 전달하는 자로 높임받고 있었으며 왕으로부터도 극진한 대접을 받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왕하22:14;렘37:3을 참조하라. 그러나 왕상22:9의 경우는 정반대 되는 사례이다, Alexander). 재난의 때를 당하여 히스기야 왕이 보여준 이러한 행위는 성도가 이 세상에서 원통한 일을 당할 때 본받아 마땅한 아름다운 신앙의 본으로 남아 있다.

(이사야 37:3) 오늘은 환난과 책벌과 능욕의 날이라.

 사신들이 전한 히스기야의 말을 통해 그가 현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환난'(*차라)은 '누르다', '억압하다'는 뜻의 '차라르'에서 파생되는 말로서 외부적인 괴로움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복합적인 영적인 짓눌림까지도 함의하는 말이다(Vitringa). 이 단어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참회의 시편에 나온다(시20:1;50:15;77:2;86:7). '책벌'(*토케하)은 호5:9의 '견책하는 날'과 동일하게 쓰였다. '환난'과 '책벌'은 앗수르를 통해 유다에게 주어진 것이긴 하나 엄밀한 의미에서 볼 때,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징계인 것이다. '능욕'(*네아차)은 '조롱하다', '멸시하다'는 뜻의 '나아츠'에서 파생된 것으로 여기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앗수르인들이 '훼방한다'(신성 모독)는 의미이다(4절, J.Watts).

(이사야 37:4)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본문은 '혹시', '아마도'(*울라)라는 말로 시작된다. 이는 하나님께서 랍사게의 말을 듣지 못하실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고 있는 히스기야 자신의 겸허한 자세를 나타내는 말이다. 그의 경건함은 그가 나라의 생존보다도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힘받지 않으며 그 이름에 합당한 영광이 주어지기만을 우선적으로 간구하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Oswalt).

(이사야 37:4)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훼방하였은즉.

 하나님에 대한 이러한 모독은 그들이 하나님을 이방신들과 혼동한 데서 연유한 것이다(대하32:19). 따라서 히스기야는 생명없고 무기력한 우상들과 대조, 구별하기 위해 이스라엘 하나님을 적절하게 '사시는 하나님'이라고 부른다(신5:26; 수3:10; 시42:2; 84:2; 렘5:2; 10:10; 23:36; 단6:26; 마16:16; 26:63 참고, Alexander).

(이사야 37:5) 그리하여...나아가매.

 본문은 히스기야 왕의 전갈이 끝나고 이사야 선지자의 답신이 곧 시작됨을 알려주는 구실을 한다.

(이사야 37:6) 앗수르 왕의 종들이...두려워하지 말라.

 이사야의 메시지는 '두려워 말라'는 강한 권고로부터 시작된다. 전에 아하스 왕의 마음이 두려움으로 떨릴 때도 선지자는 이와 비슷한 권고를 해준 바 있다(7:4). 여기서 '(앗수르의)종들'로 번역된 단어는 앞절의 '(히스기야) 신하들'과 같은 말이 아니다. 이 말은 문자적으로 '어린 것들', '풋내기들'(*나아레)을 뜻하며, 경멸적인 어감을 나타내기 위해 선지자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선택된 말이다.

(이사야 37:7) 보라 내가 영을 그의 속에 두리니.

 앞으로 전개될 사태의 주도권을 쥐고 계시는 이는 바로 하나님이시니, 그는 앗수르인들의 마음 속에 두려움을 불러일으켜 그들로 하여금 예루살렘으로부터 철수하게 하실 것이라는 말이다. 여기서 '신'(*루아흐)은 '악인들을 멀리 날려버리는 강한 바람'(Calvin)이나 '악인들을 파괴하는 천사'보다는 '사람의 마음을 좌우하는 경향성, 태도, 혹은 기질'(19:14;민5:14;호4:12; 슥13:2; 딤후1:7 참고)을 가리킨다(Alexander, Oswalt, Leupold).

(이사야 37:7) 그가 소문을 듣고.

 앗수르 군대의 퇴각은 그들이 듣게 될 '소문'과 깊은 연관이 되어있다. 이것은 에디오피아 왕 디르하가 앗수르를 치기 위해 나아온다는 소문을 가리킨다(9절 이하, Delitzsch, Lenge).

(이사야 37:8) 랍사게가 돌아가다가...만나니.

 랍사게가 돌아간 이유는 나와 있지 않다. 추측컨데, 아마도 예루살렘 주민들로부터 아무런 반응이나 응답도 얻어내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왕으로부터 후속 조처에 관한 의견을 듣기 위해서 그리했을 것이다(Lange, Leupold). 예루살렘 남서쪽에 위치한 '라기스'는 르호보암 왕이 세운 15개 요새중의 하나로서(대하11:5-10) 훗날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침략해 왔을 때, 끝까지 맞서 싸운 '견고한 성읍'으로 유명한 곳이다(렘34:7). '립나'는 레위인이 거하던 성읍으로 도피성 가운데 하나(수21:13)인데, 라기스보다 북쪽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왜 앗수르 왕이 라기스를 떠나 이동하였는가도 명확하지 않다. 어쩌면 산헤립으로서는 에디오피아 군대가 자신을 치러올 경우를 대비해서 립나를 먼저 장악하는 것이 필수적이며, 그렇게 하는 것이 군사 전략상 보다 좋은 위치를 확보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구스 왕 디하르가'가 앗수르 군대를 치러 올라온다는 소식이 산헤립의 귀에 들린 것은 이때였다(Oswalt, Leupold).

(이사야 37:9) 사자들을 히스기야에게 보내며.

 산헤립이 랍사게에 이어 다시 사자들을 보낸 까닭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히스기야를 위협, 굴복시킴으로써 앞뒤로부터 적을 맞는 불행한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사야 37:11) 앗수르 왕들이...받겠느냐.

 본절은 '보라'(*힌네)라는 말로 시작된다. 개역성경에 생략되어있는 이 말 속에 앗수르인의 잘아과 오만이 함축되어 있다.

(이사야 37:12,13) 나의 조상들이 멸하신...어디 있느냐.

 랍사게가 산헤립의 업적으로 돌려말한 모든 일들(36:18-20)을 산헤립은 그의 선조들의 업적으로 돌려 말한다. 그는 히스기야도 익히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되는 지명들을 골라 자신의 말을 뒷받침하는 예증을 전개한다. '고산'은 티그리스 강의 왼쪽 지류인 하불 강 동쪽에 있는 '수산'(Zuzan)인데,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망한 뒤 그 포로들이 이주한 곳이기도 하다(왕하17:6). '하란'은 아브라함이 그의 부친과 더불어 고향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땅을 향하여 가다가 머물러 살던 곳(창11:31;행7:2,4)으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있다. '레셉'역시 메소포타미아에 있는 성읍인데 유프라테스강 서쪽에 있고, '들라살'은 갈그미스 너머 북쪽에 있으며, '에덴 자손'은 스바와 거래하던 상인들이다(겔27:23). '하맛'과 '아르밧', 그리고 '스발와임'에 대하여는 10:9 주석을 참조하라. '헤나'와 '이와'의 위치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이사야 37:14,15) 그 글을 여호와 앞에 펴놓고...기도하여 이르되.

 히스기야의 반응은 같은 지경에 처했던 아하스와 크게 대비된다. 아하스는 그를 도와주겠다는 하나님의 요청과 징조를 구하라는 권고마저 거부한 반면(7:11,12), 히스기야는 하나님께만 도움이 있음을 믿고 그에게 간구하는 것이다. 왕은 산헤립이 보내온 편지들을 읽은 뒤, 성전에 올라 그것들을 여호와 앞에 펼쳐 놓았는데 이는 하나님이 모르는 그 무엇을 알려드리기 위함이 아니라 그가 감당할 수 없는 비통함과 충격을 당하여 하나님께 그 솔직한 심정을 토로하기 위함이었다(Alexander, Oswalt).

(이사야 37:16) 이스라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히스기야의 기도는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룹 사이에 계신...'(원문)으로 시작된다. 그가 하나님의 이름을 이처럼 길고도 장엄하게 부르는 까닭은 하나님의 엄위하신 이름이 앗수르인들의 입을 통해서 더럽혀졌기 때문이다(겔36:20-32참고). 그는 먼저 하나님께서 전체 피조물들을 다스리시는 분, 곧 '만군의 여호와'임을 고백한다.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만물을 다스리시는 왕이기시도 하다. 그럴진데, 왕의 통치에서 제외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비록 앗수르의 힘이 지상에서 강력하다 하나 그들 또한 만군의 여호와의 통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천지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은 동시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다. 이는 하나님께서 친히 주도하신 언약 관계 속에서 이스라엘과 독특한 유대를 맺고 계심을 지시해준다. 

(이사야 37:17) 여호와여...보시옵소서...들으시옵소서.

 눈은 있으나 보지 못하고 귀가 있으나 듣지 못하는 우상들(43:8 참조)과 대조하여, 히스기야는 천지 만물을 감찰하시고 들으시는 '사시는 하나님', '살아계시는 하나님'께 호소한다(Oswalt).

(이사야 37:18,19) 앗수르 왕들이 과연...불에 던졌사오나.

 히브리어 원문에는 서두에 '진실로', '과연'(*암남)이란 말이 나온다. 주변 열국들을 정복하고 그들의 신(우상)들을 불에 던져 파멸시켰던 앗수르의 군사적 업적에 관해서 히스기야는 '과연'이란 말로써 시인한다. 그러나 곧 이어서 그는 산헤립이 모르고 있는 한 가지 사실, 즉 산헤립이 멸망시킨 다른 나라들과 이스라엘이 결정적으로 구별되는 차이점을 말한다.

(이사야 37:19) 그들은 신이 아니라...멸망을 당하였나이다.

 우상들은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역시 사람의 손에 의해서 멸망을 당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이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는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형상에 따라 사람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이사야 37:20)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알게 하옵소서.

 히스기야의 기도는 본문에서 그 핵심에 이른다. 그는 하나님께서 앗수르의 위협으로부터 그와 그의 나라를 구원해주시기를 기도한다. 그러나 이렇게 기도할 때 조차 그의 관심은 하나님과 그 영광에 향해 있다. 이 점에서 히스기야의 기도는 철저한 하나님 중심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이사야 37:21) 이사야가 사람을 보내어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이사야는 히스기야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그에게 '보냈다'. 즉, 그의 제자들 중 한명(혹은 종)을 보내어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사야 37:22) 처녀 딸 시온이...머리를 흔들었느니라.

 현재와 같이 위축된 상황(3절)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유다가 앗수르를 조롱하며 멸시할 날이 미구에 이를 것이라는 예언이 시적으로 주어진다. '머리를 흔드는 것'은 경멸하는 몸짓(시22:7;44:14;109:25;렘18:16;애2:15;마27:39)이다. 앗수르 군대가 예루살렘으로부터 퇴각하는 날, 유다 백성들은 그들의 '등을 향하여'(*아하레카) 머리를 흔들어 댈 것이다. '처녀'란 말은 예루살렘 성이 위협을 당했을지언정 아직 정복되지 아니하였음을 상징하는 말이다(Michaelis, Hitzig).

(이사야 37:23) 네가 훼방하며...누구에게냐.

 예루살렘에 대한 앗수르의 위협은 그 오만함과 방자함으로 인하여 단순한 군사적 의미를 넘어 감히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훼방하여 능욕하는 신성 모독의 차원에까지 미쳤음을 지적하는 말이다.

(이사야 37:24) 내가 나의 허다한 병거를 거느리고...이를 것이며.

 이하에서 산헤립이 말한 되풀이로 이해되는 본절은 고대의 왕들이 남겨놓은 기념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과장된 어투와 매우 흡사하다. 산헤립이 교만하게 '감히 우리를 막을 자는 아무도 없으며 우리가 가고자 한다면 어디든지 못갈 데가 없다'고 호언하는데, 그의 교만은 전적으로 '병거'(*레케브)로 대표되는 앗수르의 무력에 근거한 것이다.

(이사야 37:25) 내가 우물을 파서 물을 마셨으니...말리리라.

 앞절에서처럼 본문은 과거형으로 시작해서 미래형으로 끝난다. 이는 지금까지 그의 원정이 성공적으로 수행되었던 만큼 앞으로의 원정도 성공적으로 완수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을 보여주는 것이다(Alexander). 앞서 레바논의 우거진 삼림들이 앗수르 군대의 나아감을 막지 못했던 것처럼 ,머나먼 원정길에서 피할 수 없이 따라오는 목마름조차도 역시 문제가 못 될 것이다. 그는 물이 없는 곳에서는 우물을 파서 물을 마셨다고 노래한다. 그의 허풍은 앗수르 군대가 수효가 엄청나기 때문에 그들이 단지 걸어가는 것만으로도 애굽의 모든 강들이 다 말라버릴 것이라는 말에서 그 절정에 이른다. 산헤립(B.C 705-681)은 애굽 델타에까지 결코 원정하지 못하였다. 실제 애굽 공격은 그의 후계자 에살핫돈(B.C 670년)과 앗술바니팔(B.C 668년) 때에 이르러서야 수행되었던 것이다(Leupold).

(이사야 37:26) 네가 어찌하여 듣지 못하였느냐...되게 하였노라.

 앗수르 왕의 교만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 1인칭으로 기술된다(26-29절). 하나님은 앗수르왕이 내세운 공적을 부인하지 않으며 그 사실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지도 않는다. 본문에서 그 초점은 '(네 말이 다 사실일진대) 땅에서 되어진 그 모든 일의 참된 주체가 과연 누구냐?'에 모아진다. 하나님은 앗수르가 거두었던 놀라운 군사적 성공도 당신께서 태초부터 이미 작정하셨던 신적인 계획 속에 포함된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말하자면 앗수르는 하나님의 뜻을 지상에서 실현시켜 나가는 신적인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10:5).

(이사야 37:27) 그러므로 그 주민들이 힘이 약하여 놀라며...되었느니라.

 앗수르 군대 앞에서 평평한 지붕 위에 돋아나서 햇볕이 들면 쉬어 시들어버리는 약한 풀이나 아직 영글지도 않아서 낫을 댈 필요조차 없는 곡식과도 같았다(시129:6). 그들은 이 모든 현상이 자기들의 위압적인 힘에서 기인된 것이라 자부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착각이며 이마저도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일 중에 포함됨을 그들은 알지 못하였다.

(이사야 37:28) 네 거처와 네 출입과 네가 나를 거슬러 분노함을 내가 아노라.

 대부분의 학자들은 본문이 '인간 생활의 모든 측면을 가리켜 말한 것'이라고 이해한다. '앉고 일어섬'에 대하여는 시139:2, '나가고 들어옴'에 대하여는 신28:6;시121:8 등을 보라(Alexander).

(이사야 37:29) 갈고리로 네 코를 꿰며...돌아가게 하리라.

 '코에 갈고리를 꿰고 자갈을 먹이는 것'은 말 안 듣는 짐승을 다룰 때 사용하는 수법이다(욥41:2;겔19:4;29:4;38:4). 하나님은 분노와 교만으로 길길이 날뛰는 앗수르를 강제적으로 유다로부터 철수시켜 고국으로 돌아가게 만드신다는 말이다.

(이사야 37:30) 왕이여 이것이 왕에게 징조가 되리니...먹을 것이니이다.

 오만한 정복자에 대한 하나님의 준엄한 응징의 말씀에 이어 선지자가 히스기야 왕에게 말한다. 발언의 핵심은 한 '징조'는 사건에 앞서 믿음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서 주어지는 어떤 기적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일이 이루어진 다음에 '하나님께서 진실로 역사하셨구나!'하는 것을 확인하게끔 하는 그런 종류의 것이다(출3:12,18 참고).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전쟁의 참상과 흔적이 남아있는 금년과 제2년에는 정상적인 파종과 수확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며 그때까지 백성들은 땅에서 절로 자라나는 것만을 먹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전쟁으로부터 자유로운 제3년이 되면 백성들의 생활은 정상으로 회복되고 자신이 뿌린 씨에서 수확을 거두고 그 열매를 먹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현재의 포위 상태로 인해 유다의 농업 경제의 기초가 다 훼파되었다 할지라도 그 상처가 아물어 흔적조차 볼 수 없는 날이 곧 이르리라는 것이다.

(이사야 37:31,32) 남은 자는...이를 이루시리이다.

 앞절의 농사 비유를 확대하여 선지자는 그것을 유다가 예루살렘의 구원에 적용한다. 즉, 전쟁으로 황폐해진 땅이 온전히 회복되듯이 포위된 성읍으로부터 '남은 자'가 나와 다시 번성하게 될 것이다. '남은 자'의 주체가 다시 등장한다(4:3; 6:13; 10:21,22; 11:11, 16 참조). '남은 자'와 동의어로 쓰이는 '피하는 자'(*펠레타)의 문자적인 뜻은 '피난', '구출'인데, 여기서는 '피신한 사람들'이라는 집합 명사로 사용되고 있다(Alexander, Calvin). '여호와의 열심'은 이 모든 일의 절대적 확실성을 보증하는 근거로서 덧붙여진다(9:7).

(이사야 37:33,34) 그가 이 성에 이르지 못하며...이 성에 이르지 못하리라.

 앞에서 대체적으로 말해졌던 앗수르 왕의 장래가 현재의 상황에 비추어 보다 명확하게 예언된다. 그 요지는 '그 왕이 이 성에 결코 이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본문에서 2번 반복되고 있다. '방패'(*마겐)는 화살과 창을 막을 뿐 아니라 성벽에 접근했을 때, 위에서 떨어지는 돌이나 역청을 막는데도 사용되었다. '흉벽'으로 번역된 '솔렐라'는 돌을 들어 던지는 전쟁무기(Calvin)가 아니라 언덕 위에 있는 도성을 공략하거나 포위할 목적으로 쌓아 올린 작은 토성을 가리킨다(렘32:24, Delitzsch, Oswalt).

(이사야 37:35) 내가 나를 위하여 내 종 다윗을 위하여...구원하리라.

 예루살렘이 앗수르의 손에서 구원받은 것은, 첫째로 산헤립에 의해 모욕되고 더럽혀진 당신의 이름(23절)을 보존하고 그 영광을 천하 만국에 증거(20절)하시려는 하나님 자신의 명예를 위한 것이며, 둘째로 하나님께서 그 종 다윗과 맺은 언약을 지키시기 위한 것이다. 다윗 언약의 핵심은 '다윗의 나라와 그 위가 그의 자손들로 더불어 견고케 되며 영원히 보존된다'는 것이다(삼하7:12,13,16). 이 약속은 후에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써 영적으로 참되고 온전하게 성취되었다(9:7;11:1;55:3;렘30:9;겔37:24;호3:5 참고, Oswalt. Calvin).

(이사야 37:36) 여호와의 사자가 나가서.

 선지자는 앗수르 왕 산헤립이 하룻밤 사이에 185,000명의 대군을 잃고 비참한 모습으로 고국으로 퇴각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상황을 보도한다. 이러한 패배는 그가 하나님과 더불어 대적하고 싸운 데서 연유한 것이다. 이것은 본문에서 두 가지로 지적될 수 있다. 첫째로, 앗수르 군대의 몰살은 단 하룻밤 사이에 기적적으로 발생한 사건이다. 이 사건의 '기적적인 성격'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어떤 이들은 헤로도투스(Herodotus)의 기록에 근거해서, 여기서 하나님의 사자가 사용한 치명적인 살육의 도구는 쥐가 옮기는 페스트 전염병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나,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일 만한 결정적인 단서는 없다. 설혹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하룻밤 사이에 전염병으로 인해 엄청난 숫자의 대군이 몰살당한것 역시 기적이라고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둘째로 이 기적의 주체는 '여호와의 사자'였다. 이 '여호와의 사자'는 유월절의 밤에 애굽의 장자들을 단번에 살육했던 '죽음의 천사'를 연상시킨다(출12:12).

(이사야 37:37) 떠나 돌아가서.

 직역하면 '(야영지를) 해체하고(*이사), 떠나서(*옐레크) 돌아왔다(*야솨브)'이다. 연속적으로 배치된 이들 세 동사는 그들이 혼란 중에 서둘러 퇴각하였음을 보여준다.

(이사야 37:38) 자기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경배할 때에...그를 칼로 죽이고.

 산헤립의 최후는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되었다(7절). 그는 그의 두 아들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에 의해 암살되었다. 암살은 그가 신전에서 '니스록'신에게 경배할 때에 일어났다. '니스록'은 '결합자'라는 뜻인데 아마도 산헤립의 개인 수호신인 듯하다. 앗수르의 대표적인 신들 이름에는 '니스록'이라는 이름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히스기야가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그는 대적의 손에서 구원받는 놀라운 은총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산헤립이 그의 신에게 기도했을 때, 그에게 주어진 것은 구원이 아니라 아들들의 손에 의한 비참한 죽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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