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7. 25. 09:46ㆍ구약 BIBLE/출애굽기
<출애굽기 3장 줄거리>
1. 소명의 부름을 받은 모세
9. 모세의 사명
13. 하나님의 계시
16. 출애굽에 대한 하나님의 예언
<출애굽기 3장 개역개정>
1.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3.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6.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
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8.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9.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11.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13.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15.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
16. 너는 가서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돌보아 너희가 애굽에서 당한 일을 확실히 보았노라
17. 내가 말하였거니와 내가 너희를 애굽의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땅으로 올라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면
18.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너는 그들의 장로들과 함께 애굽 왕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임하셨은즉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사흘길쯤 광야로 가도록 허락하소서 하라
19. 내가 아노니 강한 손으로 치기 전에는 애굽 왕이 너희가 가도록 허락하지 아니하다가
20. 내가 내 손을 들어 애굽 중에 여러 가지 이적으로 그 나라를 친 후에야 그가 너희를 보내리라
21. 내가 애굽 사람으로 이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할지라 너희가 나갈 때에 빈손으로 가지 아니하리니
22. 여인들은 모두 그 이웃 사람과 및 자기 집에 거류하는 여인에게 은 패물과 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여 너희의 자녀를 꾸미라 너희는 애굽 사람들의 물품을 취하리라
<출애굽기 3장 성경주석>
(출애굽기 3:1) 이드로.
치더니(*하야 로예) - 이는 분사형으로서 일회적인 의미가 아니라 습관적이고 지속적으로 가축들을 돌봤다는 의미이다. 즉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할 지도자가 되기에 앞서 약 40년간 양들을 인도하는 목자로서 지속적인 훈련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요셉을 애굽 총리로 등용하기 전, 그를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종의 신분으로 가사일을 돌보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맥을 같이한다.
(출애굽기 3:1) 광야.
(양떼들을)'정렬시키다'란 뜻의 '다바르'에서 유래하였다. 따라서 '광야' 혹은 '사막'보다 '목초지'라 옮기는 것이 더 좋다. 로젠뮬러(Rosenmuller)에 의하면 이 곳은 시내 반도에서 가장 높은 지대이나 매우 비옥한 골짜기들이 있어 목초지로서 안성맞춤이라 한다. 인도하여(*나하그) - 이 말은 이스라엘을 장차 애굽에서 건져내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할 모세의 사명을 암시하는 말이기도 하다. 한 편, 이 말이 시80:1에서는 '요셉을 양떼같이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묘사하는데 사용되었다.
(출애굽기 3:1) 하나님의 산 호렙.
성경 기록에 의하면 호렙산은 종종 언약의 산으로서, 십계명을 부여받았던 시내산과 혼용되고 있다. 즉 성경은 두 산의 지리적 구별을 엄밀히 하고 있지 않다. 이런 견지에서 두 산의 관계에 대한 몇몇 견해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산의 총칭은 호렙인데 특별히 정상 부분만을 일컬어 '시내'라 한다. (2)한 산에 두 봉우리가 있어 하나는 호렙이고 다른 하나는 시내이다. (3)두 산은 동일한 산으로서 두 가지 이름을 갖는다. 이처럼 각 견해를 종합해 보더라도 두 산의 관계를 엄밀히 구분하기란 어렵다. 한편 유대 전승에 의하면 오늘날 호렙(시내)산은 시내 반도 최남단에 위치한 해발 2,291m의 '예벧 무사'(Jebel Musa, 모세의 산)에 해당한다고 전한다. 그런데 이곳을 특별히 하나님의 산이라고 명명한 것은 혹자의 줒아처럼 이곳에 '이드르' 신전이 있었기 때문(Pulpit commentary)도 아니고, 그 이전부터 거룩한 곳으로서 그렇게 불려왔기 때문(Knobel)도 아니다. 그것은 출애굽 직전 모세가 이 산 정상에서 하나님께로부터 거룩한 소명을 부여받았기 때문이고, 나아가 출애굽 직후에 하나님께서 이 산에 현현하사 언약의 증표로 율법을 수여했기 때문이다(Keil). 따라서 이 산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나시기 위해 자신을 드러내신 현현의 장소로 간주되어 이스라엘 백성에게 거룩한 산으로 성별되어 영영히 기억되었던 것이다.
(출애굽기 3:2) 여호와의 사자.
여기서 '말라크'는 '파견하다'란 의미의 어근에서 유래하였다. 따라서 이 말은 일반적으로 특정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파송된 '특사'(왕하5:10),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선지자'(대하36:15), '천사'(시148:2) 등을 의미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소위 신현현(TheophanicAngel)으로서 삼위일체의 제2위이신 성육신하시기 전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Calvin, Pulpit Commentary). 자세한 내용은 창16:7 주석을 참조하라.
(출애굽기 3:2) 떨기나무.
학명은 '아카시아 닐로티카' 곧 시내 광야에서 흔히 발견되는 일종의 '가시덤불'(thron bush)을 가리킨다. 이 나무는 주위의 고상하고 당당한 나무들과는 대조적으로 앙상하고 아주 볼품없이 생긴 나무로서 곧 노예로 전락하여 곤핍하고 메마른 생활을 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의 현생활을 상징해 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나무에 거룩, 전능하신 여호와께서 임재하신 것은 이스라엘 위에 머물러 있던 모든 고통의 멍에를 끊고 해방과 기쁨을 제공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를 반영하는 계시 사건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임재 사건은 후일 죄 중에 신음하던 인류를 구원하시기위해 이땅에 육화(Incarnation)하셨던 예수의 임마누엘 사건을 예표한다(마1:21-23; 요1:14).
(출애굽기 3:2) 불꽃.
'창끝'을 뜻하는 '레바하'에 '불'을 의미하는 '에쉬'가 결합된 형태이다. 이는 모든 불의한 세력을 태워 멸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성을 상징한다(Kurtz, Keil, 사10:17). 특히 이 불꽃이 떨기나무로부터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선민 이스라엘과 영원히 함께 하실 것임을 암시한다.
(출애굽기 3:2) 나타나시니라.
이 말은 '주목하다', '제시하다'(보이다)란 의미도 내포한다. 모세는 낙심 가운데서 40년이라는 긴 세월을 보내었으나, 하나님께서는 항상 그를 지켜보고 계셨으며, 이제 때가 차매 그에게 위대한 비전을 계시하시기 위해 초자연적 환상 가운데 모세의 시선을 '주목시키시면서' 나타나신 것이다.
(출애굽기 3:3) 돌이켜 가서.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수르'는 '다시 부르다'란 의미도 지닌다. 즉 모든 양떼들을 다시 돌이키게 할 정도로 대단한 관심을 유발시켰음을 암시한다. 아마 모세는 사라지지 않는 불꽃으로부터 어떤 초자연적 전능을 감지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출애굽기 3:3)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문맥상 미완료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다. 따라서 보다 원문에 가깝게 해석하면 '떨기나무가 왜 불타서 없어지지 않고 여전히 있는고'가 된다. 한편 원문에서는 '떨기나무'란 말이 계속 반복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당시 모세가 떨기나무에서 일어난 현상에 대해 얼마나 놀랐는지를 그러한 중복강조를 통해 잘 표현했던 것이다.
(출애굽기 3:4) 여호와...하나님.
'지존자' 또는 '영원한 자'를 뜻하나 '예호와'(야웨)라는 이름과 '전능자'나 또는 '위엄을 가진 자'를 뜻하는 '엘로힘'이 동시에 사용되었다. 이는 모세에게 계시된 신이 절대 유일하신 분임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다.
(출애굽기 3:4) 보려고.
'면밀히 관찰하다', '깊은 주의를 기울이다'란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이 명사로 쓰이면 '맹금'(독수리)을 뜻하는데 이는 예리한 관찰력에서 유래한 듯하다. 한편 (하나님이)'보신지라'에 해당하는 본절의 히브리어도 이와 동일함에 유의하라.
(출애굽기 3:4) 불러.
'명하다', '초대하다', '선포하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에 참여케 하시기 위해 일꾼들을 불러 소명을 부여하심을 가리키는 말이다(삼상3:6). 특히 이 말 속에는 일꾼을 택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와 일꾼으로 부름받은 자의 고귀한 특권이 암시되어 있다.
(출애굽기 3:4) 모세야 모세야.
모세의 이름이 거듭 불려짐으로써 상황의 긴박성과 사명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삼상3:10).
(출애굽기 3:4) 내가 여기 있나이다.
초자연적 불꽃 가운데서 들리는 음성을 듣고 모세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직감했을 것이다. 따라서 본절의 대답은 지극히 초라한 자신에 대한 고백과 겸양을 내포하고 있다 하겠다(비교, 창 3:10; 삼상3:10).
(출애굽기 3:5) 가까이 오지 말라.
이 말은 죄악된 인간과 거룩하신 하나님 사이에는 좁힐 수 없는 간격이 있음을 암시한다. 에덴 범죄 이전, 인간은 하나님과 대면하여 교제할 수 있었으나 범죄 이후 인간은 자력으로는 하나님께 감히 가까이 갈 수 없는 열악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창3:24).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간격을 좁히시기 위해 구약 시대에는 예표적 의식으로서 피흘림 있는 제사 제도를 제정하셨고 신약 시대에는 그 제사의 절정이요 완성으로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희생제물로 내어 주셨다(요일4:10).
(출애굽기 3:5) 거룩한 땅.
'코테쉬'는 '성별된', '성결한'이란 뜻이고, '아다마'는 '붉다'란 뜻의 '아담'에서 유래한 말로 이는 팔레스틴 지경의 땅이 대체로 붉은 색을 띰을 반영한다. 한편 언약 백성이 정주했던 가나안 땅, 예루살렘, 혹은 하나님의 서전이 각각 성지, 성도, 성소 등으로 불리웠거니와(느11:1; 시18:2; 슥2:12), 본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바로 그곳은 어디나 거룩한 땅이라 하겠다.
(출애굽기 3:5)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여호수아에게도 반복된 명령으로(수5:15) 여기서 신(sandals)은 인간의 타락된 품성과 행위를 상징한다. 즉 죄악된 장소를 두루 다니고, 죄악된 행위를 하느라 더러워진 신에는 온갖 냄새나는 더러운 먼지나 때가 끼여있는 법이다. 따라서 그러한 신을 신은 채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거룩한 땅을 밟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상의 의미를 좀 더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1)허물과 죄로 오염된 인간은 감히 하나님의 거룩한 존전에 설 수 없으며 그의 일꾼으로 쓰임받기 위해서는 속 사람이 강건하게 무장되어야 한다는 뜻이다(엡3:15) (2)인간 스스로의 재능, 자존심 등을 과감히 버리고 겸손히 순복하는 자세를 지니라는 뜻이다-고대에 노예는 신발을 신지 않았다(눅15:22). (3)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고난도 각오하라는 뜻이다(롬8:17) (4)거룩하신 하나님께 마땅히 경외와 경배를 드려야 한다는 뜻이다. (5)부패한 인간은 중보자의 피가 없이는 감히 거룩한 하나님과 동거할 수 없다는 뜻이다.
(출애굽기 3:6) 네 조상의 하나님.
여기서 '아브'는 '아버지'(창2:24), '족장'(창24:40), '선조'(왕하14:3) 등 다양하게 사용되나 여기서는 선조를 뜻한다. 특히 본절에서는 대표적인 믿음의 조상들의 이름이 언급되었는데, 이는 하나님이 추상적 관념속에 국한된 분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분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출애굽기 3:6)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일찍이 선민을 대표하여 삼위일체(성부,성자,성령)되시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의 3대 족장들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항상 이들과 맺은 언약에 근거하여 자신을 계시하셨고 또한 백성들을 보호하셨다. 그런데 여기서 특별히 세 족장들의 이름과 하나님의 이름이 각각 연계된 것은 (1)그들 각자가 단독으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었으며, 직접 후손과 기업에 대한 약속을 얻었기 때문이다. (3)각자에게 거듭 허락하신 언약을 환기시킴과 동시에 그 언약의 계속성과 불변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창15:1-21; 26:2-5; 35:1-12). 한편 이 부분이 제공하는 중요한 의미는 천지를 지으시고 오래 전부터 이스라엘 민족과 약속하신 한 분 하나님에 의해서 모세가 부르심을 받고,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게되며, 그리고 그 백성을 통해 만방의 구원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사상을 나타내는 데 있다.
(출애굽기 3:6) 두려워하여.
'파하드', '구르' 등이 주로 공포심을 가리키는데 비하여(신1:17; 대하14:4), 이 말은 하나님의 존전에서 유한한 인간이 본능적으로 갖게 되는 외경심을 뜻하는 말로 많이 사용되었다(9:30; 느1:5; 시99:3).
(출애굽기 3:6) 얼굴을 가리매.
여기서 '가리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사타르'는 '숨기다', '감추다'는 뜻이다. 얼굴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임재 앞에서 허물 많은 인간이 취하게 되는 지극히 생래적인 태도이다(Keil). 엘리야(왕상19:13)도, 심지어 하나님을 호위하는 천사들조차도(사6:2) 이러한 행동을 취했다.
(출애굽기 3:7) 분명히.
이 말 역시 '보다'란 뜻이다. 이어지는 '보고'와 같은 말이다. 이처럼 같은 말이 거듭 반복됨으로써 언약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각별하신 관심이 강조되어 있다.
(출애굽기 3:7) 감독자.
히브리인들을 일선에서 직접 감독하고 그들에게 육체적으로 고통을 직접 가했던 애굽 출신의 하급 지배자들을 가리킨다(1:11;2:11).
(출애굽기 3:7) 근심.
'괴로움', '비탄', '슬픔' 등의 뜻으로서 이는 이스라엘이 당하는 고통의 정도가 극에 달한 상황을 대변해 주는 말이다.
(출애굽기 3:7) 알고
본래 의미는 (직접 보아서) '확인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 말은 단순히 지식적, 추상적으로 인지하는 데서 그친다는 것이 아니라, 뼈져린 체험을 통해 속속들이 깨닫게 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특히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당한 압제를 깊이 유념하사 도움의 손길을 베푸시고자 함을 가리킨다.
(출애굽기 3:8) 내가 내려가서.
하나님께서 인간 역사하에 친히 개입하심에 대한 신인동형동성론(Anthropomorphism)적 표현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때가 찬 경륜에 따라 역사에 깊이 개입하셔서 당신의 뜻하신 바대로 그 역사를 의끌어 가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이다. 후일 이 말은 하나님께서 이 땅 위에 당신의 특별한 처소를 두고 계신다는 '세키나 사상'으로 연결된다.
(출애굽기 3:8) 건져내고.
'회복하다', '구출하다', '고치다', '빼앗다' 등의 의미로 하나님의 구원의 성격이 어떠한 것인지를 한마디로 함축하는 말이다. 즉, 하나님은 마치 전쟁터에서 포로를 구출하듯이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으시며'(엡4:8), 죄와 허물로 말미암아 어그러진 모습을 치유하사, 성도들을 영광스러운 당신의 자녀의 상태로 회복시키신다(말4:2; 엡5:8)
(출애굽기 3:8) 인도하여.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알라'의 기본적 의미는 '오르다'이며 그 외에 '회복하다', '고무하다' 등의 뜻도 내포된다. 성경에서 흔히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으로 가는 것을 '내려간다'라고 표현했던 반면(창37:25; 사31:1). 타지에서 이스라엘로 가는 것을 '올라간다'라고 표현했다(삿11:13; 왕하17:3;24:1). 그러한 의미에서 또한 이 말은 영적으로 추악한 옛 생활을 청산하고 밝고 깨끗한 생활로 회복시킨다는 의미도 지닌다.
(출애굽기 3:8) 아름답고.
'좋은', '풍부한', '값진' 등의 뜻으로 여기서 '비옥한'이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근동의 대다수 지역은 메마르고 황량한 땅이었으나 비옥한 초생달 지대(Fertile Crescent Zone)에 속하는 팔레스틴 지역은 요단 강이 흐르고 곳곳에 샘이 있어 비교적 비옥한 축에 속했다.
(출애굽기 3:8) 광대한.
'터전을 만들다', '넓히다'란 뜻의 동사에서 유래하였다. 팔레스틴 본토의 크기는 대략 지금의 벧기에의 크기와 비슷하다. 모세 당시의 상황으로서 이만한 땅은 굉장히 넓은 곳으로 이해되었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내의 특정 지역 내에 국한된 생활을 한 것을 생각하면 자유의 땅 가나안은 더욱 광대한 느낌을 준다.
(출애굽기 3:8)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이는 성경 곳곳에서 가나안 땅의 대명사처럼 자주 사용된 말이다(민13:27; 신31:22; 렘32:22). 이 말을 문자적으로 풀어보면 젖을 생산하는 소와 양을 많이 사육할 수 있는 풍부한 목초지와, 꿀을 채취하는 양봉이 가능할 정도로 꽃과 화초가 많이 자라 살기 좋은 땅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 말은 결코 1차적인 자연 조건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 말 속에 내포된 진정한 의미는 영적의미로서 곧 하나님의 축복과 언약이 임하는 곳이란 뜻이다.
(출애굽기 3:8) 가나안...여부스 족속.
가나안 원주민을 대표하는 6족속의 이름이 열거되었다. 이들이 거주하던 땅은 하나님께서 이미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바대로(창15:19-21),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어질 기업이었다. 한편 가나안 원주민을 나타낼 때 성경은 그 필요에 따라 7족속(신7:1), 3족속(23:28), 10족속(창15:19-21) 등 다양하게 묘사하였다.
(출애굽기 3:9) 이제.
'이제부터는', '곧장'이라는 뜻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역사에 개입하셔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시고자 하는 적극적 의미를 담은 표현이다. 이렇듯 하나님은 당신의 주권적 경륜에 따라 당신의 때에 개인적으로든 민족적으로든 한 때를 마감하고 새로운 때를 여시는 바, 그 경륜의 가장 두드러지는 구획선은 예수의 강림이다. 그러므로 히9:26에는 이러한 사실이 '이제', 곧 '그러나 이제는'(but now)이란 말로 나타난다.
(출애굽기 3:10) 보내어.
'임명하다', '특별한 사명을 부여하여 멀리 파송하다'란 뜻으로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파송하신다는 표현으로도 사용된 말이다(사6:8; 렘7:25). 한편 여기서 모세가 보내어져야할 곳은 모세의 생명을 찾던 왕이자 고대 최고의 권력을 행사하던 애굽의 바로 왕 앞이었다. 따라서 그는 온 세상을 대표하는 세속적 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권력자에게 가는 것은 일개 목사인 모세 혼자만이 아니라, 그 목사의 배후에서 역사하시며 온 세상의 왕들을 폐하기도, 세우기도 하시는 권력과 힘의 원천이신 하나님과 함께 가는 것이다(대상29:12; 시22:28; 단2:21; 롬13:1).
(출애굽기 3:11) 내가 누구이기에.
'...이기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키'는 겸양과 자기 비하의 뜻을 담고 있다. 40년 전 모세는 자신을 스스로 이스라엘의 구원자요 재판관으로 내세웠으나(2:14), 이제는 초라한 한 목자로서 자기 자신에 대한 무능감을 절실히 통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그는 미디안이라는 학교에서 겸손의 덕을 배웠던 것이다(Keil). 한편 또한 이 말은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던 바로에 대한 모세의 두려움과 의기소침을 반영한 탄식이기도 했다. 그러나 당신의 일을 함께 함에 있어서 하나님은 철저히 자아를 부인하는 자를 들어 귀하게 쓰시는 역설적 방법을 많이 사용하신다(욥5:11; 고전1:27).
(출애굽기 3:11) 가며.
여기서 '엘레크'는 '알라크'의 강의형 능동으로서 '내가 가야만 한다'(KJV; 'I Should go')는 뜻이고, 접속사 '와우'와 함께 쓰인 '키'는 '게다가', '더군다나'의 뜻이다. 따라서 이 말은 사지로 가서 애굽왕을 만나는 일만 해도 몸소리 쳐지는데 거기다 이스라엘 자손을 출애굽시키는 사명까지 감당해야 한다니 도대체 내게 무슨 능력이 있어 그러한 일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란 뜻이다.
(출애굽기 3:12)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문자적으로는 '내가 너와 함께 있는 한에는'이다. 출애굽은 단지 피지배 민족이 자유를 찾아 탈출하는 단순한 역사적 사건일 수는 없으며 또한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 성취될 성질의 것도 아니었다. 요컨대,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친히 모세에게 '임마누엘'의 약속을 해주신 것이다(수1:9). 실로 이 약속이야말로 막강한 100만 대군을 얻는 것보다 더 확실한 보장으로서 그 어떤 세력에도 담대하며 능히 무찌를 수 있게 하는 힘이 된다(사35:3; 고전1:27; 히12:12).
(출애굽기 3:12) 섬기리니.
(하나님께) '예배드리다'(말3:14), '종살이하다'(렘27:7), '봉사하다'(창29:15)등 다양하게 사용된 말로서 신앙 생활 전반을 일컫는다. 진정 인간이 섬겨야 할 분은 오직 한 분, 곧 만주의 주이신(사28:22) 하나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이스라엘은 애굽 땅의 우상 숭배에 깊이 물들어 있었다(32:1-18). 이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신앙을 회복시키기 위해 그들의 해방을 주도하셨던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제 일 목적은 그들로 하여금 섬김받으시기 위함이다.
(출애굽기 3:12) 증거
'신호', '표시'란 뜻이다. 당신의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언약)이 역사상 구체적인 성취로 나타난 것은 당신의 신실하심에 대한 확실한 증거라 할 수 있다.
(출애굽기 3:13)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이름'은 단순한 호칭 이상의 의미로서 그 사람의 기질과 성품과 지위와 생애를 반영한다. 특히 고대 세계에서 권력자들은 자기의 사신을 타인에게 보낼 때 그 사신에게 자신의 권위를 위임한다는 의미에서 자신의 호가 담긴 도장, 편지 내지는 그 사신에게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게 하였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모세가 자신을 애굽에 파견하시는 절대자의 이름을 확인한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한편 신약 시대의 사도들도 복음 사역에 있어서 자신의 권위로서가 아니라 자신을 사신으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함으로써, 자신이 행하는 이적과 기사의 출처를 사람들에게 분명히 제시하였다(행4:7-12). 한편 혹자(Pulpit commentary)의 견해에 따르면, 다신교를 신봉하는 애굽인들은 당시 개개의 신들에게 다양한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따라서 애굽 우상들에 익숙했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이름도 물어볼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모세가 자기를 보내는 분의 이름을 확인했다고 한다. 물론 이 견해도 나름대로의 타당성이 있으나 전자의 견해가 더욱 환영할 만하다.
(출애굽기 3:14) 나는 스스로 있는 자.
여기서 '아쉐르'(who)는 관계 대명사로서 '나는 존재한다'(i am)는 뜻인 '예흐웨' 성호를 결합시켜 자존성을 강조한다. 즉 시작과 끝이 없으신, 언제나 존재하는 지존자란 뜻으로 피조된 존재들과는 달리 능동적으로 영원전부터 영원까지 스스로 계시는 분(I am who I am)이심을 강조한 표현이다(계1:4,8). 이는 절대 완전하고, 독립적이시며 우주 안의 모든 인과 법칙을 초월한, 모든 존재의 근거와 기반이 되시는 하나님의 본질과 속성을 그대로 반영한 말이다. 더욱이 이 말 속에는, 하나님은 존재에 있어서 변함없으시며 그 말씀하신 바를 온전히 성취하신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특히 이 말이 언약과의 관계에서 쓰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구속주로서(6:6) 언약의 주체자가 되사 그 언약하신 바를 변개치 않으시며 영원히 성취해 가시는 분임을 강조하는 말이다.
(출애굽기 3:15) 여호와.
'나는 스스로 있는 자'(14절)란 말과 같은 뜻을 지닌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이다. 즉, 이 이름은 '존재하다'란 뜻의 히브리어 '하야'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말로서 하나님의 자존성과 영원불변성을 강조한 이름이다(14절). '여호와'의 히브리형 '예호와'는 원래 자음만으로 구성되었는데 영어식으로 표현하면 4개의 자음 곧 'YHWH'가 된다. 따라서 발음하기에 곤란하나 통칭 '야웨'(야훼), '예호와' 등으로 불려져 왔다. 그런데 히브리인들은 하나님의 성호에 대한 경외심에서 이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고 '아도나이'(*나의 주님)라는 명칭으로 대신했다. 따라서 성경을 옮겨 기록하거나 낭독하는 일을 맡고 있던 서기관들은 이 단어가 나오게 되면 '야웨' 대신 '아도나이'라 발음했다. 따라서 결국 '여호와'(Yehowah)라는 명칭은 '야웨'의 히브리 자음에 '아도나이'의 모음이 합쳐져 구성되었다. 한편 우리말 '여호와'는 헬라어 및 라틴어를 거쳐 정착된 영어 'Jehovah'의 음역이다.
(출애굽기 3:15) 나의 영원한 이름.
하나님에게 가장 합당한 이름이자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 속성과 본질을 지니신 당신의 영원 불변의 이름이란 뜻이다. 실로 이름의 영원성은 그 존재의 영원성을 강력히 시사한다.
(출애굽기 3:15) 칭호.
'표하다', '기억을 되살리다'는 동사에서 유래한 말로서 곧 '기념물'이란 의미를 지닌다. 여기서는 '표시가 되는 이름', 곧 그 이름만 들어도 그분의 품성과, 이뤄 놓으신 놀라운 사건들과, 미래에 완성하실 원대한 계획까지 생각할 수 있을 그러한 기념비적 이름이란 뜻이다.
(출애굽기 3:16) 반오.
'나이 먹다'란 뜻의 동사에서 유래한 말로서 문자적으로는 '노인'을 가리키나, 여기서는 한 가문의 어른으로서 추앙받을 만한 재덕을 겸비한 자를 가리킨다(6:14,25). 체계적 행정 체제가 미비하였던 당시대에 이들은 백성의 대표자 역할을 폭넓게 감당하였다.,
(출애굽기 3:16) 돌보아.
'방문하다'(KJV:'visited'), '감시하다', '보살피다'(RSV:'observed), '판단하다' 등의 뜻이다. 요셉이 임종시에, 때가 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권고하실 것이라던 예언의 말과 같은 표현으로서(창50:24). 영감된 예언의 필연적 성취를 보여준다. 실로 하나님은 요셉의 말을 기억하시고 신음하는 이스라엘을 보살피시기 위해 지금 이 땅에 방문하실 것을 모세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출애굽기 3:17) 고난.
'위협하다', '괴롭히다', '강탈하다'의 뜻을 지닌 동사 '아나'에서 유래한 말로서 곧 애굽의 압제를 집약한 말이다. Living Bible은 이를 '고역'(drudgery)과 '굴욕'(humiliation)등 구체적으로 번역했다.
(출애굽기 3:18) 들으리니.
'순종하다', '경청하다'란 뜻으로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의 요구에 순볷하리라는 의미이다. 한편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유명한 신앙 지침인 '쉐마'(들으라) 부분도 동일한 말로 시작된다(신6:4). 실로 애굽의 강력한 압제하에 신음하였던 이스라엘 백성이 일개 초라한 망명객의 말에 순복하리라고는 누구도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결과는 인간의 생각과 판이했다(4:31).
(출애굽기 3:18) 장로들과 함께.
모세는 여호와의 권능에 찬 이름과 더불어 백성의 장로들과 함께 바로 앞에 서서 담대히 말해야 했다. 즉 그에게는 하늘과 땅의 많은 후원자들이 있었다(5:1).
(출애굽기 3:18)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아브라함을 우상의 땅 갈대아 우르에서 유프라테스 강 '건너편으로' 불러내 그와 언약을 맺으신 그 하나님(창12:1,7; 14:13)을 특별히 지칭하는 말이다. 따라서 여기서 이 말이 사용된 것은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또 한번의 '건너는'(히브리, 창14:13) 역사(홍해사건)를 통해 그들의 구원을 주도하시겠다는 의미이다.
(출애굽기 3:18)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실제로는 모세에게만 나타나셨으나, 임하신 목적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과 관련된 것이다. 따라서 모세가 그들의 대표격이었으므로 '우리'라는 복수형이 사용된 것이다.
(출애굽기 3:18) 제사.
'짐승을 살육하다'란 뜻의 동사 '자바흐'에서 유래한 말로서 '제사', '헌물'(제물)을 의미한다. 어느 종교에서건 제사 의식은 종교 생활의 핵심 중 하나이다. 더욱이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이 제사의식은 유일신 여호와 신앙으로 전민족을 결집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따라서 희생제사 요청, 그것도 민족적 대이동을 수반해야 하는 이 요청이 강퍅한 애굽 왕에게 받아들여질리 만무했다. 따라서 결국 이 요청은 바로를 시험하기 위함이었을 뿐이다.
(출애굽기 3:18) 사흘길
이스라엘 백성들의 거주지인 고센 지역으로부터 제사를 위해 하나님의 현현 장소인 시내산까지 이를 수 있는 거리를 말한다. 동시에 애굽의 속박과 추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거리를 지칭한다.
(출애굽기 3:19) 아노니.
'확신하다'로 번역됨이 더 낫다(KJV, 'be sure'). 시공을 초월하신 하나님은 출애굽 과정에서 겪게 될 우여곡절을 이미 알고 계셨다.
(출애굽기 3:19) 강한.
'정복하다'는 말에서 파생된 말로서 상대의 어떤 공격에도 굴하지 않고 기필코 이겨낼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암시한다.
(출애굽기 3:19) 손.
신인 동형 동성론적 표현으로서 '하나님의 손'은 주로 당신의 권능을 상징한다(7:4;15:9).
(출애굽기 3:19) 허락하지.
이 말 속에는 '보내다'란 뜻도 포함하고 있어 문맥상 의미를 더 명확하게 해준다. 애굽의 경제와 사회는 노예에 의해 유지된다고 할 정도로 노예의 가치는 대단했다. 그들은 농사와 건축 등에서 무한정한 노동력을 쏟아내었으므로 바로에게는 굉장한 재산이었다. 그러한 노예들 중 상당수를 차지했던(약60만명, 민1:46) 히브리인들을 그 땅에서 내어보낸다는 것은 하나님의 위대한 권능의 손에 의하지 않고는 압제자 바로에게 있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출애굽기 3:20) 내가 내 손을 들어.
하나님의 구체적인 개입을 시사하는 표현이다. 하나님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12절)과 더불어 그 약속을 반드시 실현시키실 것을 이런 표현을 통해 확증하셨다.
(출애굽기 3:20) 이적.
'경이롭다'는 뜻인 '팔라'에서 유래한 말로서 하나님의 놀라운 초자연적 권능을 강조하는 말이다. 반면에 '모페트'(욜2:30), '오트'(민14:11)등은 두드러진 '표징'으로서의 의미가 강하다. 한편, 본문의 이적은 구체적으로 피 재앙(7:20), 개구리 재앙(8:6), 이 재앙(8:17), 파리재앙(8:21), 악질 재앙(9:3), 독종 재앙(9:10), 우박 재앙(9:23), 메뚜기 재앙(10:13), 암흑 재앙(10:22), 장자의 죽음(12:29) 등 열 가지 재앙으로 나타났다.
(출애굽기 3:20) 친.
'때리다', '벌주다'란 뜻이다. 이는 애굽에 임한 재앙은 악의 세력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심판)이란 측면을 강조한다.
(출애굽기 3:20) 보내리라.
'포기하다', '내던지다'는 의미로서 마지못해 혹은 엉겁결에 떠나 보낸다는 뜻이다. 실제로 바로는 출애굽 소식을 듣자마자 곧장 추격에 나섬으로써 히브리인들에 대한 노예화 정책을 끝내 떨치지 못했음을 나타내었다(14:5).
(출애굽기 3:21) 은혜.
'아랫사람에게 호의로 몸을 굽히다', '긍휼히 여기다'란 의미의 동사 '하난'에서 유래하였다. 따라서 이 말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비와 관련하여 많이 사용되었다(창6:8; 삼하15:25; 시84:11). 본문에서 이 은혜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할 때에 노예처럼 쫓겨날 것이 아니라, 귀한 손님처럼 극진한 대접을 받은 후 온갖 재물을 지니고 나갈 것을 가리킨다. 이는 창15:14에 나타난 예언의 성취이다. 또한 이것은 이스라엘이 쫓겨난 자가 아니라 마치 정복자처럼 당당한 모습으로 출애굽하게 됨을 강조하고 있다. 사실 출애굽은 노예 상태로부터의 탈출인 동시에 가나안 복지 정복을 위한 첫 걸음이었다. 한편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닫는다 (1)하나님은 모든 역사를 당신의 주관 아래 두시고 각 개인과 민족에게 합당한 보상과 억울함을 해결해 주시는 공평한 분이시다. (2)하나님은 애굽과 이스라엘 민족 사이에 위상을 새롭게 정립하심으로써 당신의 백성이 궁극적으로 영광과 승리를 얻게 될 것을 보이셨다. (3)더욱이 광야의 회막 건축에 필요한 각종 준비물을 미리 준비시키신 하나님의 풍성하신 경륜을 깨달을 수 있다(35장).
(출애굽기 3:22) 이웃 사람.
고센 땅에서 히브리인과 함께 거주하던 애굽인들을 가리킨다.
(출애굽기 3:22) 자기 집에 거류하는 여인.
Living Bible에서는 이를 '애굽인 주인의 아내'(her Egytian master's wife)로 옮겼는데 타당성이 있다. 당시 히브리인들 중에는 물질과 권세가 월등했던 애굽인의 집에서 하인 또는 그 아내로 우거했던 자들도 있었을 것이다.
(출애굽기 3:22) 구하여.
'빌다'(KJV, 'borrow')보다는 '요구하다'(RSV, 'ask')가 더 합당한 번역이다. 애굽은 오랜 기간 동안 이스라엘을 노예로 부려먹었기 때문에, 이제 하나님께서 그에 대한 정당한 보수를 당당히 요구하라 하신 것이다.
'구약 BIBLE > 출애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출애굽기5장 성경주석 (0) | 2022.07.25 |
---|---|
출애굽기4장 성경주석 (0) | 2022.07.25 |
출애굽기2장 성경주석 (0) | 2022.07.22 |
출애굽기1장 성경주석 (0) | 2022.07.22 |
출애굽기 미리보기 (0) | 2022.07.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