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6. 28. 09:12ㆍ구약 BIBLE/이사야
<이사야 32장 줄거리>
1. 의로운 통치
9. 환난에 대한 예언
15. 정의와 평화
<이사야 32장 개역개정>
1. 보라 장차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정의로 다스릴 것이며
2.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
3. 보는 자의 눈이 감기지 아니할 것이요 듣는 자가 귀를 기울일 것이며
4. 조급한 자의 마음이 지식을 깨닫고 어눌한 자의 혀가 민첩하여 말을 분명히 할 것이라
5. 어리석은 자를 다시 존귀하다 부르지 아니하겠고 우둔한 자를 다시 존귀한 자라 말하지 아니하리니
6. 이는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은 것을 말하며 그 마음에 불의를 품어 간사를 행하며 패역한 말로 여호와를 거스르며 주린 자의 속을 비게 하며 목마른 자에게서 마실 것을 없어지게 함이며
7. 악한 자는 그 그릇이 악하여 악한 계획을 세워 거짓말로 가련한 자를 멸하며 가난한 자가 말을 바르게 할지라도 그리함이거니와
8.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하나니 그는 항상 존귀한 일에 서리라
9. 너희 안일한 여인들아 일어나 내 목소리를 들을지어다 너희 염려 없는 딸들아 내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10. 너희 염려 없는 여자들아 일 년 남짓 지나면 너희가 당황하리니 포도 수확이 없으며 열매 거두는 일이 이르지 않을 것임이라
11. 너희 안일한 여자들아 떨지어다 너희 염려 없는 자들아 당황할지어다 옷을 벗어 몸을 드러내고 베로 허리를 동일지어.다
12. 그들은 좋은 밭으로 인하여 열매 많은 포도나무로 인하여 가슴을 치게 될 것이니라
13. 내 백성의 땅에 가시와 찔레가 나며 희락의 성읍, 기뻐하는 모든 집에 나리니
14. 대저 궁전이 폐한 바 되며 인구 많던 성읍이 적막하며 오벨과 망대가 영원히 굴혈이 되며 들나귀가 즐기는 곳과 양 떼의 초장이 되려니와
15. 마침내 위에서부터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숲으로 여기게 되리라
16. 그 때에 정의가 광야에 거하며 공의가 아름다운 밭에 거하리니
17.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요 공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18. 내 백성이 화평한 집과 안전한 거처와 조용히 쉬는 곳에 있으려니와
19. 그 숲은 우박에 상하고 성읍은 파괴되리라
20. 모든 물 가에 씨를 뿌리고 소와 나귀를 그리로 모는 너희는 복이 있느니라
<이사야 32장 성경주석>
(이사야 32:1) 보라 장차 한 왕이...정의로 다스릴 것이며.
예루살렘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그 도성을 공격하려던 대적들(앗수르)은 몰살되는 반면 그 도성은 영속성을 보장받게 되는데(31:4-9), 선지자는 계속해서 장차 그 도성에서 시행될 참되고 의로운 통치에 대해서 서술한다. 그 통치는 새로운 왕과 방백들, 즉 새로운 정부의 출현과 더불어 시작된다. 이제 동참할 '한 왕과 방백들'은 눌려 도망가는 '앗수르의 왕(반석)과 그 방백들'과 대비된다(31:9). 저들은 역사의 무대에 잠깐 나왔다가 사라지는 엑스트라들에 불과한 것이다. 여기서 언급된 '왕'은 아마도 종교 개혁을 통해 여호와 신앙을 부흥시킨 히스기야 왕을 가리킬 것이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장차 오실 메시야의 모형이다. 선지자의 시선은 당대를 넘어 먼 미래에 미치며 그의 예언은 메시야 시대에 이르러 궁극적으로 성취되어진다.
(이사야 32:1) 공의로...정의로 다스릴 것이며.
'의'(*체데크)와 '공평'(*미쉬파트)은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중요한 통치 규범이다(1:21, 27). '의'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통제된 올바른 행동의 원리라면, '공평'은 그 원리의 구현이라 할 수 있다. 이 시점에서 선지자는 전자를 왕의 덕목에, 후자를 방백들의 덕목에 각각 적용시킨다.
(이사야 32:2) 광풍을 피하는 곳...같으리니.
악한 정부의 통치가 백성을 괴롭히는 '광풍'과 '폭우'그리고 '마른땅'과 '곤비한 땅'과 같다면, 선한 정부의 통치는 그것들로부터의 백성을 보호해주는 '가리는 것'(*마하베), '덮는 것'(*세테르), '시냇물'(*펠레그), '무거운 바위의 그늘'(*첼 셀라-카베그)과 같을 것이다. '광풍-폭우'와 '마른땅-곤비한 땅'은 팔레스틴 땅의 여행객들을 위협하는 대표적인 자연 재해들로서, 전자는 큰 비를 동반한 폭풍을, 후자는 뜨거운 햇볕으로 사람의 목을 타게 만드는 무서움을 가리킨다. 이와 유사한 표현으로 4:6;25:4을 보라.
(이사야 32:3) 보는 자의 눈이...기울일 것이며.
공의로운 통치가 가져오는 유익은 비단 외적인 측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내면적인 변화까지도 유발된다. 선지자는 이것을 육체적인 질병의 치유에 비유하여 설명한다. 이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여 소경같고 귀머거리 같았던 자들이 다시 시력과 청력을 회복하게 된다(29:18,19). 이 약속은 전에 선지자가 들었던 것(6:9,10)이고 백성들에게 주어졌던 경고(29:10)와 대조된 것이다. '듣는자의 귀가 기울어진다'는 말은 '주의 깊게 경청한다'(*카솨브)는 뜻이다.
(이사야 32:4) 조급한 자의 마음이...말을 분명히 할 것이라.
급하게 서두르며 초조하고 분주하여 헛된 일에 집착하던 '조급한 자'(*님하람)의 마음이 사물의 본성을 파악하는 참된 지식과 통찰력을 갖게 된다. 또 하나님의 진리에 대하여는 '어눌한 자'(일김)가 되어 혀를 잘 놀 놀리지 못하던 자들이 이제는 세련되고 적절한 언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된다. '일김'은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종교를 경멸하는 자'를 빗된 말(28:11 참고, Knobel, Drechsler)이라기보다는 영적인 세계에 대해 무지한 자들을 가리킨다.(Delitzsch, Alexander).
(이사야 32:5) 어리석은 자를...존귀한 자라 말하지 아니하리니.
이와 같은 영적인 명징(明澄)함의 결과로, 가치가 전도되어 참과 거짓이 뒤바뀌고 악덕과 미덕이 혼동되던 시대에 상습적으로 자행되어졌던 잘못된 일들이 바로잡아질 것이며 모든 일이 올바른 질서 위에서 시행되어짐을 의미한다. '어리석은 자'(*나발)는 '사악한 자'로도 번역 가능하다. '궤휼한 자'라 번역된 '킬라'는 '간교하다'는 뜻을 가진 '네킬라'의 단축형(Gesenius) 혹은 '낭비하다'는 뜻을 가진 '칼라'에서 파생된 말(Hitzig)로 설명되기도 하니 확실하지는 않다.
이사야 32:6,7 본문은 '왜냐하면'(*키)이라는 말로 시작된다. 선지자는 '어리석은 자'와 '궤휼한 자'가 전에 그들에게 부여되었던 명예로운 칭호(관직)을 상실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그들의 본성과 관련해 설명한다.
(이사야 32:6) 어리석은 자는...없어지게 함이며.
성경에서 '어리석음'은 머리의 둔함에 관련된 말이 아니라 마음의 완악함에 관계되는 말이다(신32:6;시14:1;74:22).어리석은 자는 먼저 하나님을 거슬러 죄악을 범하고 다음에는 동료 인간들에 대하여 악행을 저지른다. 이는 하나님께 대한 잘못된 관계에서 옳지 못한 인간 관계가 배태(胚胎)됨을 보여주는 것이다. "주린 자의 '심령(*네페쉬)을 비게 한다"는 말은, 굶주린 자를 먹이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그의 양식을 빼앗아 생존할 수 조차 없게 한다는 말이다. 하나님을 부정하고 죄악을 밥먹듯 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어느 정도까지 악해질 수 있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이사야 32:7) 악한 자는...그리함이거니와.
'궤휼한 자'는 재물과 이권을 획득하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어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불법을 저지르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주된 먹이는 스스로를 보호할 줄 모르는 '가련한 자'(*아니윔)와 '빈핍한 자'(*에브욘)이다.
(이사야 32:8) 존귀한 자는...서리라.
'고명한 자'(*나디브)는 외부적인 요인엥서가 아니라 그 내면에서 우러나는 자발적인 동기에서 어려운 이웃을 돌보고 힘쓰는, 천성적으로 성품이 너그럽고 관대한 사람이다. 그는 궤휼한 자가 끊임없이 악한 계책을 도모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항상 고귀하고 덕스러운 일을 생각하고, 또한 생각한 그것을 반드시 실천에 옮기려고 애쓴다. 이러한 그의 덕행은 시간이 지난다 하여도 변하지 않으며 어떤 장애가 가로막을지라도 중단되지 않는다. '서리라'(*쿰)는 말은 '자라나다', '견고히 서다'는 뜻이다(40:8).
(이사야 32:9) 너희 안일한 여인들아...너희 염려 없는 딸들아.
본문은 추수 절기에 춤을 추는 유다의 여자들에 대해서 말한다(삿21:20 이하, G.E Wright). 선지자는 그들을 '안일한 부녀', '염려 없는 딸들'이라 부른다. 왜냐하면 이들은 풍족한 수확의 기대와 즐거움에 도취되어 다가올 재난에 대해서는 전혀 예상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재난의 때는 어김없이 임할 것이다. 예루살렘 부녀의 허영과 교만을 그린 3:16-4:1과 본문을 비교하라.
(이사야 32:10) 너희 염려 없는 여자들아...너희가 당황하리니.
직역하면 '너희 자신 만만하고 두려워할 줄 모르는 여자들아 너희가 몸을 떨것이라(즉, 두려움에 전율할 것이다)'이다. 극히 대조되는 앞말과 뒷말의 결합을 통하여 선지자는 충격을 가중시킨다.
(이사야 32:11,12) 옷을 벗어 몸을...가슴을 치게 될 것이니라.
이제 선지자는 재난의 때에 그들이 취해야 될 마땅한 태도를 설명한다. 평상복을 벗고 가슴을 치는 행위는 고대 근동에서 큰 재난을 당했을 때 슬픔을 나타내는 관습화 된 것이다(3:24,15:3;22:12;욜1:13;나2:7).
(이사야 32:12) 좋은 밭...포도나무로 인하여.
이전에 풍성한 곡식을 산출했던 좋은 밭과 열매 많던 포도나무가 재난으로 황폐하게 변해버리는 것, 곧 삶의 터전을 상실하는 것이 그들이 애통한 이유인 것이다(16:7-11).
(이사야 32:13) 내 백성의 땅에 가시와 찔레가 나며.
'내 백성의 땅'과 '가시와 찔레'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단어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해 특별히 선택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기름진 땅(출3:8,17;13:5;33:3)에서 어떻게 '가시와 찔레'가 나리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만약 이 생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백성들의 죄악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1:7;5:6;7:23).
(이사야 32:13) 희락의 성읍...나리니.
본문은 불변사 '키'로 시작되는데 여기서 그것은 앞의 사상을 확대, 설명하는 '...까지도'로 해석함이 무난하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저주에서 야기되는 황폐함이 땅에 만이 아니라 심지어 희락의 성읍, 기쁨이 넘치는 집들까지도 미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Calvin). 이것은 다음절에서 확인된다.
(이사야 32:15) 마침내 위에서부터...부어주시리니.
본문을 직역하면 '영이 위에서부터 우리에게 부어질 때까지'이다. 성령을 부어서 백성들의 마음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특별한 개입이 있기까지 재난은 지속된다. 그때가 언제일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 시간은 반드시 도래한다. 그때가 되면 모든 것이 모든 것이 변화될 것이다. 영을 부어주시는 역사는 하나님의 왕권 확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런 일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곳에서만 일어난다. 인간이 스스로 주인이 될 때 거기에는 무력함과 불의만이 판을 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인이 되어 인생을 다스리실 때 비로소 이 땅은 풍요함을 되찾고 집집마다 희락이 찾아 들며 나라 전체에 평안이 깃들게 될 것이다.
(이사야 32:15)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여기게 되리라.
성령을 부어 주심으로써 야기되는 복스러운 변화는 먼저 땅에서부터 나타난다. '광야' 곧 곡식이 자랄 수 없는 불모의 땅이 '아름다운 밭' 곧 경작된 땅으로 변한다. 그러나 그 곳에서 거둔 소출도 나중에 산출될 그 풍성함에 비추어 보면 야생 숲으로 여겨질 정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사야 32:16) 정의가...거하리니.
물질의 풍요로움은 축복의 서장에 지나지 않는다. 선지자는 변화된 땅에 거할 변화될 백성들의 영적 특성에 주목한다. '곡식을 산출하는 비옥한 밭이나 경작되지 않는 목초지에도 의와 공평이 거한다'는 말은, '으와 공평이라는 새 시대의 규범들이 온 땅 위에 편만해질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의'(*체다카)와 '공평'(*미쉬파트)은 '하나님을 높임'과 '다른 사람의 권리를 존중함'이라는 율법의 두 기본적인 의무 조항들과 밀접하게 관련되는 말이다(Calvin, Kissane).
(이사야 32:17) 공의의 열매는...평안과 안전이라.
참된 평화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서만 주어짐을 역설한 말이다. 이를 신약의 언어로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롬5:1)
이사야 32:18 본문은 그 의미상 13절과 대조된다. 한 때 희락과 기쁨이 감돌던 곳이었으나 하나님의 심판으로 가시와 찔레가 자라던 '내 백성'의 집에 하나님의 의로부터 발출되는 참된 평화가 깊이 스며들 것이다. '화평한 집'과 '안전한 거처' 그리고 '조용히 쉬는 곳'은 모든 이들이 꿈꾸는 곳이겠거니와 이러한 곳에서 거할 수 있는 축복은 오직 하나님의 통치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경건한 성도들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다(요14:27 참고).
(이사야 32:19) 그 숲은...파괴되리라.
본문은 세 가지로 해석 가능하다. (1)'그리고 삼림은 철저히 가라앉고 성읍은 전적으로 황폐해지리라'(RSV). (2)'그때에는 삼람 비탈이 서늘하겠고 성읍은 평화롭게 될 것이다'(NEB). (3)'비록 우박이 삼림에 쏟아져 내리고 성읍은 평지처럼 될지라도'(NIV). 문맥상 세번째가 가장 무난하겠다(G.W Grogan).
(이사야 32:20) 모든 물 가에...너희는 복이 있느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편안하게 농사 짓는 행복한 전원시적인 분위기로 본장은 마감된다. 물기 마를 염려 없는 땅, 곧 '물가'에서는 농부가 뿌린 씨앗마다 풍성한 수확으로 결실한다. 소와 나귀 등 가축들을 씨뿌린 밭에서 몰아내는 것이 상례임에도 여기에 나오는 농부는 오히려 가축을 이끌어 일찍 나온 잎들을 뜯어먹게 한다. 왜냐하면 땅이 너무나 비옥하여 곡식이 속히 자라기 때문이다. 이 같은 풍성한 생산력은 성경에서 언제나 하나님의 복주심의 결과로서 묘사된다. 30:23-25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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